번역과 일본의 근대

2015.01.21 03:50 from 책/발췌




번역과 일본의 근대, 가토 슈이치/마루야마 마사오 지음, 임성모 옮김, 2000, 이산




pp. 18-20

마루야마 : 일본은 운이 좋았다고 하는 해석은 국제정치를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식입니다. 동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가 본격화 되기 직전에 세계는 서로 전쟁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특히 크림전쟁과 남북전쟁이 결정적이죠. 크림전쟁은 영국·프랑스와 러시아의 차르가 거국적으로 일으킨 대대적인 전쟁이었고 남북전쟁의 사상자도 엄청났습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할 처지가 못되었던 겁니다. 그 두가지 사정 때문에 일본에 대한 압력이 급격히 감소했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겠죠.



p. 50

마루야마 : (전략) 모리는 모리대로 <일본의 교육>이라는 유명한 책을 출간했습니다. Series of Letters, 곧 그의 서간문 시리즈인데, 뉴욕 애플턴 출판사에서 1873년 1월에 나왔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모리는 '영어를 국어로 삼자'고 하는 유명한 주장을 폈지요. 야마토 말에는 추상어가 없기 때문에, 야마토 말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서양문명을 일본 것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차라리 영어를 국어로 채용하자는 주장이지요. 거기에 대한 반박이 이 바바의 서문인 겁니다. 이 글은 무척 재미있습니다. 만약 일본에서 영어를 채용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상류계급과 하층계급 사이에 말이 전혀 통하지 않게 되고 말 것이다라는 의견을 바바는 개진하고 있습니다.


가토 : 그거 대단하군요. 지금도 인도가 안고 있는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계급간의 깊은 골이지요. 그 첫번째 요인은 경제적 격차이고, 두번째 요인이 언어입니다.


마루야마 : 굉장하지요. 바바는 인도의 예를 적확하게 증거로 삼아야 상층이든 하층이든 국민은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pp. 53-55

마루야마 : (전략) 야스오카 씨(安岡 章太郎, 야스오카 쇼타로)의 견해입니다만, 번역으로 읽는 쪽이 더 급진적이라는 거에요.(웃음) 인텔리의 급진주의는, 그의 표현으로는 자유민권이나 사회주의 관련 책자를 번역본으로 읽었던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 지적이 틀렸다고만 할수 없는 예가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의 <사회정학(Social Statics)>이지요. 마쓰시마 쓰요시가 <사회평권론>이라 번역했는데, 이 번역은 좀 이상합니다. statics란 표현은 dynamics와 반대되는 말로서 '정태학;이라는 의미인데 '평권론'이라고 번역해 놓으면 마치 '평등주의'인양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래서 스펜서의 Social Statics는 자유민권운동가의 성전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것은 제목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와 관계가 깊습니다. 스펜서는 나중에는 더 보수적이 됩니다만 그 당시에도 결코 급진적이진 않았습니다. 스펜서의 사회학은 모두 균형론이기 때문에 탈콧 파슨스(Talcott Parsons, 1907~1979)의 선구자라고 할수 있는 인물이죠. 그런데도 제목을 '평권론'이라고 번역해 놓으니 성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번역이라는 데는 생각지도 못한 효과가 있는 거지요.




pp. 82-84

마루야마 : 그런데 앞서 말했던 야노 후미오(矢野文雄)의 <역서독법>으로 되돌아가 보면, 그 가운데서 책의 분류가 아주 중요하다고 하면서, 동양의 분류는 조잡하다고 말합니다. 서양의 도서관 분류처럼 좀더 치밀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지요. 

(중략)


가토 : 그건 어느정도 보편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중략)

첫번째는 원인론적인 관계, 곧 인과율입니다. 예를 들어서 번역 문장에서는 '무엇 때문에' '왜냐하면' 식의 말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대개 일본에서는 적어도 메이지 이전의 문장에서는 because에 해당하는 말이 그리 자주 나오질 않습니다. 

(중략)

두번째는 지금 이야기한 '분류'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류를 할 것인가? 일본에서는 가사(歌)를 분류하든 시를 분류하든 예전부터 나열된 분류 항목의 내용이 겹쳐 있어요. 상호배타적이지 않죠. 글너 분류 방식은 서양인이 싫어하는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분류에서 보자면 이상한 겁니다. (중략) 그러한 엄밀한 분류 원칙과 상반되는 것이 어떤 식으로 처리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겠지요.

세번째는 일반화, 또는 수의 표현방식입니다. '모두의'와 '약간의' '하나의' '어떤 하나의'라는 말을 영어에서는 관사를 사용해서 상당한 정도까지 표현할수 있고 또 all이나 some같은 말로도 표현하지요. 그런데 일본어에서는 대개 그런 말을 쓰지 않습니다. '에도 시대의 몇명의 사무라이가...' 라거나 '모든 사무라이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지요. 그저 '사무라이는....' 이라고 합니다. 관사가 없기 때문에 알수 없는거죠. 이걸 번역에서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이 문제는 아주 흥미로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마루야마 : 아니, 꼭 번역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 경험을 말하는게 좀 뭐하긴 합니다만, 대학분쟁때 전공투 학생이 '학생은....'이라고 말하길래 "자네가 말하는 학생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건가?" 하고 물었습니다. 야스다 강당에 농성중인 사람들인가, 다른 학부에서 농성하고 있는 반대파인가, 아니면 불참한 정치적 무관심층을 말하는가 하고 말이죠. 좀 심술궂은 도발이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겁니다.




pp. 90-91

가토 : 유럽 정치사상에서는 인권이 있기 떄문에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두가지를 연결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그것이 나누어졌지요. 인권 쪽이 자유와 연결되고 민권 쪽이 평등과 연결되는 식으로 말입니다. 말하자면 자유로부터 분리된 평등과 인권으로부터 분리된 민권이 생겨났던 셈이죠. 그러나 일종의 평등주의는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마루야마 : 일군만민이라는 평등주의지요. 주군만은 예외지만 나머지는 귀족이든 평민이든 모두 평등하다는 겁니다. (중략) 익찬회 시대에는 천황과 인민 사이에 끼여 방해하는 자를 '막부적 존재'라고 말하는게 유행이었습니다만, 천황만 제외하면 평등사상은 각별했습니다.


가토 : 현행 헌법에서 인권과 평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착도가 강한 것은 평등이죠. 그건 전통적으로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미국이 강요하지 않았다고 해도 처음부터 인권 쪽은 없었으니까요.(웃음) 익찬회 운동을 민주주의적 위장이라고 한다면 나치가 바로 그렇습니다. 개인적 자유는 제로에 가깝지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갈등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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