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작성일 16.8.4 

(아 티스토리 글 과거로 시간설정 불가능하게 한거 진짜 극혐이다)


모 대학교 학생들의 시위 방법에 대해서 기성 세대들이 보이는 껄쩍찌근한 반응을 보니 내 표정도 함께 껄쩍찌근하다. 외부인을 철저히 배제한, 학내 구성원에 의한 학내 문제에 대한 비폭력 시위. 80년대의 "넥타이 부대"에 대해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려는 사람은 그닥 없을텐데, 이 새로워 보이는 "모바일로 형성된 시위대"에는 뭐 그리 껄끄럽게 생각하는건지. 벌써부터 극단적 개인주의의 발로라는 둥, 공동체적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는둥... 명절날 조언만큼이나 기도 안차는 말들이 나오는 듯하다. 촛불집회류 가두집회나 광화문-시청 시위에는 거품물며 칭송하던 모 성향 언론계통 종사자들도 이 학교 시위를 다루는 거 보면 껄쩍지근하다. '젊은이들이 생각만 하던' 방식을 저렇게 구현할수 있는것 자체부터 대단한거 아닌가. 설령 그 모델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환상일지라도. 만약 시위 주체가 여대가 아닌 서울대였어도 이런 반응일까? 아니 만약 운동권이 주축이었으면 저렇게 할수 있었을까? 애초에 고대 같은 데서는 저런게 가능이나 할까? 머릿속에 의문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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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작성일 16.9.24




장면1  

<서울을 경험한 사람들은 왜 지방에 가서 살지 못하는가>를 주제로 페이스북에서

나 : 객관적으로 서울이 더 살기 좋은 곳이고, 자기 출신 지역 떠나라고 강요할수도 없다

상대 : 그렇다. 일자리만의 문제는 아닌것 같다. 그런 점을 지자체들이 고려해야할텐데 

나 : 지자체가 왜 그걸 고민하나 고민한다고 해결이 되는것도 아닌데. 지금도 동남권 신공항 낭비라고 반대하는거 못봤나. 단순한 효율성 논리로 지방에 자원배분하는 데에 반대하는 수도권 주민들의 목소리가 크고 다수이기 때문에 지자체에 재정 투입하는 것은 앞으로 더 가로막힐것 

상대 : 말씀하신대로 어차피 중앙에서 안할테니 지자체라도 해야한다는것. (중간에 좋은 일자리 제공에도 인구이탈이 극심한 지방 혁신도시 및 공공기관 이야기가 나옴) 인구유출의 원인이 일자리가 아니면 문화적인 측면에선 지자체가 할수 있는게 있지 않겠느냐 

나 :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영양실조 걸린 사람한테 메뉴개발하라고 하면 창조성이 발휘됩니까. 지자체는 그냥 그지역을 떠나지 않을 지방대학 및 해당연고 출신들로만 (혁신도시 공공기관 등의)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식으로 나갈수밖에 없습니다.

나 : 개인적으론 서울이 비교대상인것도 가혹합니다. 전세계에 서울만한 도시가 어딨습니까. 지방의 익명성 없고 끼리끼리 인맥문화에 스트레스 받는거 맞는데 그걸 해소하려면 외지인 유입을 늘리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지방에서 살겠다는 유인이 있어야겠죠. 신안 섬노예 같은것도 좁은 사회가 문제면 행정력 투입하거나 연륙교건설 같은게 실질적 해결방안으로 나오는거 아닙니까. 근데 지방이 문화적으로 낙후됐다고 단순히 비난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사회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지방에 갖추어야 할 사회적 기반구축이나 비용 얘기 나오면 입을 싹 닦아요" 






장면2 

<만약 수도권에 원전이 있어도 이번 지진에 대한 보도가 이런식이었을까요? 그런 의문이 드네요(영남권 거주자로 추측)> 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

상대 : 수도권하고 거긴 인구밀도가 다르죠 

나 : 동남권을 인구밀도 가지고 부족하다 할거면 막말로 이나라가 평양인민공화국이랑 뭐가 다릅니까? 

상대 : 아 동남권을 말한게 아니라 고리 월성 지역을 말한겁니다 

나 : 그렇다고 하시니 믿고 넘어갑니다만 김포나 파주 같은데에 원전 있었으면 해당 읍면 인구밀도만 세셨을 건가요? 여기서 말하는게 그런식인게 아니죠




장면3 

<해남군의 출산장려금 정책 출산율은 높아졌지만 전출로 인해 인구는 줄어 - 한경 기사> 에 대한 트위터 반응

상대 : 유출 무서워서 안된다는 논리 어디서 많이 본거 같지 않나? 사람에 투자하는거 아끼면 안된다 계속해야한다 새는 손해를 능가할 정도로 계속해야 성공하는게 사람에 대한 투자임. 우리도 그렇게 교육에 투자해서 고성장한것. 

나 : 정책 측면에서 구체적인 출산장려책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은 알겠다만 행위자 측면에서는 국가정책으로 시행한것도 아니고 지방재정 털어서 한건데 인구유출의 결과면 누가봐도 손해고 모럴해저드 사안인데 어떻게 계속하라는거냐

상대 : 모럴해저드는 거기 사용하는 단어가 아닌데? 그리고 지자체의 존속은 그 조직에게나 상위가치일뿐이다 

나 : 정책이 구체적 목표가 있을텐데 출산장려책에서 인구증가를 가지고 평가 안하면 대체 뭘로 평가해야한다는건지, 지역은 떠났지만 한국에서 살 사람한테 썼으니 괜찮다고? 그럼 한국정부는 자산 다 팔아서 세계빈국 국민들 지원해줘야겠네 

(중략)

상대 : 그리고 장기적으로 지방이 소멸하리라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결국 통폐합될텐데 투자가 다른데 새는거보다 사람을 향하는게 맞지 않느냐 

나 : 그래, 나도 회생불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근데 "니들은 어차피 이래하나 저래하나 못살아나니 어차피 서울로 떠날자들 돈이나 계속 쥐어줘라" 이게 할 말이냐? 

(그는 이에 대해 표현을 좀더 부드럽게 할수 있었겠다고 말했다. 
표현의 문제일뿐 가치체계나 발화의도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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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제에 대해 겪은 것들을 토대로 하면, 국고로 추진되는 지출규모는 대단히 높게 평가하면서(국고낭비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짐), 또 지자체의 재정수준은 대단히 건전한줄 앎. 물론 재정 낭비도 많은건 사실인데 그 본질은 못먹던시절 명절에 과식해서 설사하는 딱 그상황으로 이해하면 맞다. 그동안 <수도권, 진보>로 분류되는 분들의 이런 문제의 해결 방안에서 지자체가 변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며 핵심 해결주체가 되는거 숱하게 많이 들었다. 

나에게 이걸 지자체의 문제냐 정책의 대상이 될 사람의 문제냐 묻는다면 난 후자에도 강한 의구심이 든다. 어제겪은 세번째 사례가 진짜 기막힌데 종합하면 "이래하나 저래하나 너희 시골은 소멸할 확률이 높은데 출산장려정책은 고귀하니 중앙정부라 쓰고 수도권이라 읽을 주체에 출산장려책을 압박하기 위해선 계속 떠날 사람들에게 돈이나 쥐어주는걸 용기를 가지고 계속하라" 정도. 이게 정상 사고인가? 정상이다. 슬프게도 생각을 정리해서 모으면 이런 식으로 이어질 '논리적인' 사람이 적지 않다. 난 이런 논리나 사고방식이 극소수의 특별한 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방의 실태에 대한 무지야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문제는 또래 고학력층으로 가면 "중앙정책은 지역변수에서 가치중립적" 이라는 명제를 추호도 의심치 않고 굳게 믿는 자들이 절대다수에 가깝다. 진보정당및 그 정치세력들. 차라리 조직세가 작아서 신경을 못쓴다고 하면 모를까, 자기들이 수도권 일부지역과 공업지역에서만 그림이 나오는 이유를 계급의식의 문제니 하며 계급배반투표 따위에 몰두한 전통이 벌써 몇십년인지. 지금 인터넷상에서 등장하는 지방의 낙후된 문화, 집단주의적 문화,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을 넘어 나오는 미개-혐오 발언들이 그때 했던 착각과 전혀 관계가 없다 장담할수 있나? 하긴 진보정당만의 문제일까. 호남 털어내고 전국정당 간다고 신난 모 정당 지지자들이 설치던게 불과 몇달 전인데. 이게 시대흐름이고 내가 이상하고 모난 사람일 뿐인걸. 

지금껏 재원 마련은 알아서 하고 지자체가 해결하란 식의 "지방 문제는 지방에서 알아서 하라" 소리가 한두명이 한 소리가 아닌데 이제는 또 "지원금 받고 튀는사람 생겨도 나갈 사람에게 돈은 계속 줘야한다"는 얘기를 보게 되니 흥분안할수가 없었다. 그러게. 그동안 우리는 정부 왜 욕했나? 그저 내 노력이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했던게 아닌가? 당신이 살기 힘든 문제도 당신들 알아서 해야지, 왜 헬조선 운운하며 불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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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2016.07.02 01:26 from 책/발췌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문학동네, 2015


이 책을 살거라고 했을때 지인은 "그걸 네가 굳이 살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뭐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겠지만 매상 올려주고 책꽂이에 전시하려고 산다"고 했다. "그게 아이돌 팬이 음반사는거랑 뭐가 다름?ㅋ" 그러네. 별로 다른게 없네. 뭐 아무튼 요즘 무거운 책 읽을 기운이 안나서 샀다.

몇몇 부분은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거나 지인과 실제로 있었던 대화였어서, 아 내가 굳이 안움직여도 이런 글이 있구나 싶은 느낌을 주었다. 다만 거창한 제목에 비해 내용은 뒤로 갈수록 좀 부실하다는 느낌이.... 애초에 글 자체가 하나의 테마를 쥐고 쓴 글이라기보단 단상 조각글의 모음집이라 그런지. 



pp.23-24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중고등학교 대 지루하게 배우던 로크, 밀, 몽테스키외, 루소 등의 이름과 함께 나오는, 지금의 서구식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다는 그 개인주의 말이다. 무슨 시대착오적인 소리냐, 19세기 얘기를 21세기에 하고 있냐는 반문이 나올 것이다. 글로벌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악의 근원이라며 앞에 '포스트' 내지 '후기'가 붙은 길고 복잡한 대안을 얘기하는 이들을 볼때마다 떠오르는 의문은 이거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이전에 구자유주의라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 사회일까? 자본주의 후의 대안을 모색하기 전에 제대로 된 자본주의라도 해본적이 있나? 근대적 의미의 개인을 존중해본 경험 없이 탈근대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 아닐까?


pp.62-64

가장 두려운 것은 지나치게 빠른 평균수명 연장이다. 생물학적 수명과 사회학적 수명이 불일치하는 대책없는 고령화시대를 맞아 미래의 언젠가 무기력하게 방구석에서 종일 사극 재방송만 반복해서 보며 식구들에게 잔소리만 하게 되기 전에, 기력 있을때 주변정리하고 마지막 날까지 지구의 오지들을 걷는 여행을 떠나 길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계곡으로 떠나는 코끼리처럼. 이 얘기를 비장하게 했더니 마눌님이 가려면 혼자 가라고 그러시더라.

상상의 날개를 더 펴보자. 최후의 오지 여행을 하며 유서처럼 페이스북에 일기를 쓰는데 이게 또 어떻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중계방송 보듯 찾아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기사화되더니 팬덤 형성. 응원의 메시지에, 따라 걷는 순례자들이 속출하며 일이 커진다. 어느새 그런 관심에 중독되어 신경안쓴척 실제로는 엄청 신경쓴 사진과 감동적인 한마디를 페이스북에 올리며 세상의 반응을 즐기기에 이른 노인이 삶에 대한 의욕이 과다 충전된 나머지 '고독의 끝에서 생의 의지를 발견하다' 어쩌고 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리를 하며 도시로 복귀. 그동안 적은 글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여 돈도 벌고 멘토 행세하다가 선생님 선생님 하며 따르는 미모 여대생과 눈이 맞아 이태리 멋쟁이 노인 흉내를 내며 스키니진 입고 스카프 두르고 데이트 다니다가 민족정론 디스패치에 대서특필. '늙으면 죽어야지' '지랄도 풍년'이라는 어제의 팬들의 댓글 러시속에 이혼당하고 무일푼으로 전락. 그러고는 독거노인이 되어 <대장금> 재방송을 무한반복 시청하며 수명만 대책없이 연장해놓은 과학자와 의사들을 저주....


pp.153-154

좋은 단편을 찾아 읽는 것은 쇠약해진 '문학 근육' 단련에 좋은 듯하다. 문학적 감수성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법관에게는 더더욱 필요하다. 심리학이든 다른 어떤 학문이든 결국 인간의 여러 특성 중 범주화할수 있는 보편성을 추출해서 보여준다. 문학은 그보다 훨씬 풍부하게 인간의 개별성, 예외성, 비합리성을 체험하게 해준다. 후자에 대한 이해 내지 상상력 없이 이루어지는 재판은 침대 길이에 맞춰 인간의 신체를 절단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전락할 수 있다.


pp.251-252

(전략) 전통적으로 이 나라들과 대비되는 집단주의 문화권에 속해왔고 개발독재 시대에 압축성장을 이룩한 경험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세대가 아직도 많은 우리 사회는 여전히 다른 모델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식 개인주의는 우리 전통과 맞지 않는다, 나라마다 맞는 문화가 따로있다, 서양이 오히려 동양의 지혜를 배우려 한다는 등의 입장이다. 여기서 더 나가면 이런 논리가 등장한다.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분별한 자유를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나라가 잘살아야 개인도 잘사는 거다, 국익을 침해하고 국론 분열을 낳는 표현의 자유는 규제되어야한다, 옛날이 좋았다... (...) 현재 우리 사회의 근본 사회계약인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토대로 현대적 복지국가 원리를 조화시키고 있음에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내면화되지 못한 우리 사회에는 언제든 이런 시대착오적인 논리가 등장할 위험이 있다.


pp.268-269

감히 가정하는 것조차 죄스럽고 조심스러워서 망설여지는 이야기지만, 세월호 사고 초기에 선장이나 해경 현장 지휘자가 모든 승객에게 당장 구명조끼 입고 바다로 뛰어들라고 명령했다면 어땠을까. 분명히 많은 생명을 구할수 있었겠지만 그 경우에도 일부의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은 있다.

이 경우 우리 사회가 최선의 결단을 했다며 격려해주었을 것이라고 확신할수 있을까. 너무 성급한 조치였다, 구조선과 더 유기적으로 협조했어야 한다, 구명정을 차례로 내렸어야 한다 같은 비난이 난무하지는 않았을까.

우리사회는 '결과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물론 이런 가정이 무의미할 정도로 현실에서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자들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런 문화가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책임자를 결정장애와 도피심리로 몰어넣는 측면이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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