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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26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
  2. 2013.08.14 낯뜨거운 전력난
  3. 2013.08.08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

저자
칼 구스타프 융 지음
출판사
부글북스 | 2013-01-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82세 노(老)심리학자가 갈등을 빚는 인류를 향해 던진 메시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 칼 구스타프 융 지음, 김세영 옮김, 2013



p.22

통계적 방법은 이상적인 평균이라는 측면에선 사실들을 보여주지만, 경험적 현실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그림도 제시하지 못한다.



pp.24-25

경우에 따라서 인류학과 심리학에서 인간이 하나의 평균적인 단위로 추상적으로 그려지는데, 이 평균적인 단위는 모든 갱니적 특성들을 배제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식으로 배제된 그 특성들이다. 만일 어느 개인을 이해하길 원한다면, 나는 완전히 새롭고 편견이 없는 태도를 취하기 위해 평균적인 인간에 대한 모든 과학적인 지식들을 옆으로 제쳐둠과 동시에 모든 이론까지 버려야 한다. 이렇게 한 뒤에야 자유롭고 열린 마음으로 개인적인 인간 존재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p.55

0을 아무리 많이 더해도 절대로 하나의 단위를 만들 수 없는 것과 똑같이, 하나의 공동체의 가치는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정신적 및 도덕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공동체로부터는 그 환경의 암시적인 영향을 능가하는 것은 어떤 것도 기대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개인들의 내면에서 진정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한 변화들은 오직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개인적 접촉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pp.65-66

교회들은 전통적이고 집단적인 확신을 대표하는데, 교회의 추종자들 중 많은 이들에게 이 확신은 더 이상 그들 자신의 내면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고 분별없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 분별없는 믿음이란 것은 사람들이 그 믿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순간 쉽게 사라져버리는 것으로도 이름이 높다. 믿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기만 하면, 그 믿음의 내용이 지식과 충돌을 빚게 되며, 믿음의 비합리적인 면이 지식의 추론에 결코 맞서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믿음은 내면적인 경험을 절대로 대체할 수 없으며, 내면적인 경험이 부재하는 곳에서는 은총의 선물로 기적처럼 생겨난 강한 믿음조차도 생겨날 때와 똑같이 기적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pp.133-134

학습능력은 또한, 인간이 자신의 본능적 토대에서 점진적으로 멀어짐에 따라, 말하자면 무의식을 희생시키면서 의식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의식적인 지식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함에 따라 생기는 무수한 정신적 장애와 어려움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 결과 현대인은 자신을 아는 범위 안에서만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아는 능력은 환경적인 조건과 지식에 대한 욕망에 크게 좌우되며, 그 능력에 대한 통제는 현대인의 본래의 본능적 성향을 변화시키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의 의식은 주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관찰하고 조사함으로써 스스로 적응해 나간다. 그러면 현대인은 그 의식의 특성에 맞춰 자신의 정신적 자원과 기술적 자원을 적응시켜야 한다. 이 일이 매우 힘들긴 하지만 그 성취에 따르는 이점이 매우 크기 때문에 현대인은 그 과정에서 자신을 망각해버린다. 자신의 본능적 본성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존재 대신에 자기 자신에 대한 개념을 앞세우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대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개념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가는데, 개념의 세계에선 그의 의식적인 활동의 산물들이 현실을 점진적으로 대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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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뜨거운 전력난

2013.08.14 23:00 from 내 글/단문



90년대 중후반의 화두는 환경문제여서, 88올림픽 준비 시절 개장국을 영양탕으로 바꾼 수준을 넘어서 항상 싱가포르와 일본의 거리를 비교하며 길거리의 쓰레기를 없앱시다, 껌뱉지 말자는 식의 캠페인이 들려왔었다. 

학교에서는 연일 환경보호를 강조하며 산불위험이 높은 식목일에 나무심기 운동을 벌이고 연약한 아이피부들에게 머리를 감을땐 샴푸를 쓰면 안되고 빨래비누를 써야 하며, 린스를 쓰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외제품 이용자급의 허영심에 물든 작저가 되기때문에 식초를 써야하고, 쌀뜨물은 개수대에 버리지 말고 여느 서민집에선 키우지도 않는 화초에 주자는 얘기를 신세기를 살아갈 선진국국민으로서의 생활상식으로 배웠다. 

"이시절 참 촌스럽지 않았나요. 그땐 그랬죠" 라고 이틀전에 선배랑 동료와 밥먹으면서 얘기를 했었다. 근데 오늘 보니 "불필요한 하드 용량을 줄이면 연간 몇천원 전기세 절약"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이네. 00년대생들이 30년대에 그때 우리 왜그렇게 유치하고 촌스러웠죠? 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줄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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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 What the Internet is Doing to Our Brains), 2010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주요 내용 요약

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요지는 뇌의 구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 신경가소성, 말 그대로 우리 뇌는 조직 구조 자체를 스스로 적응하기 위해 변화시킨다는 얘기다. 무엇을 자주 하느냐에 따라 구조 자체가 그에 적응하여 특정 부위가 발달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습관은 우리의 뇌를 멀티태스킹 능력과 단시간의 선택능력을 발달시키도록 만들지만, 빠르게 빠르게 정보의 바다의 흐름에 감각을 내던지기만 할 뿐, 그 정보를 쌓아두지 못하게 만든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인터넷 공간의 행동 원칙은 멀티태스킹과 빠른 판단의 능력만 요구할 뿐, 느긋한 적막 속에서 장기기억으로 정보를 쌓아두는 능력은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느긋함과 소란스럽지 않음을 주지 않는 이 상황은, 정보의 축적과 암기를 방해할 뿐더러, 그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창조적 능력을 거세시킨다.



이제부턴 내맘대로 파생적 글쓰기

어떠한 능력에 대한 필요를 느끼거나 특정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그 외의 능력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감퇴하게 된다. 나는 평소 집중력에 대한 남다른 환상과 집착이 있어서 내가 충분히 집중하지 못하는 환경이라 여기면 막무가내다 싶을 정도로 완전한 휴식을 추구하여 살아왔다. 집중이 덜 된 상태에서 읽은 책은 읽지 않은 것으로 여겼고, 스쳐지나치듯이 행동한 것은 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이런 집착 때문에, 집중이 잘 되지 않은 상태에서 쉬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나에게는 최대의 고통이자 스트레스였다. (어른이 될수록 이런 종류의 갈등은 잦아져서 좀 불안해 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누가 중간에 집중이 안된다며 자고 있는 상황을 좋게 보겠는가. 집중해서 일을 하고 쉬는것보다 주어진 시간에 적당한 집중으로 적당히 일을 처리하는 것이 성실하게 평가된다.)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쉽게 아무데서나 잠들수 있냐 묻는다면, 막무가내로 답하자면 집중력이 좋아서 라고 대답할수도 있겠다.



인공지능

심심이 같은 프로그램, 심지어 그 프로그래밍 과정을 직접 본 사람들도 내가 대화하고 있는 상대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닌 인격을 가졌길 희망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그 상대에 맞추어 대화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란 없다. 그렇게 판단하도록 만든 개발자의 지능의 일부가 있을뿐. 인공지능을 지능이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지능이 딱 그 수준이 된다. 공략집대로 레벨업을 하여 최단시간 내 최고클래스로 전직시키려 노력하는 우리의 어머니들. 인간의 삶과 성장을 베낀 게임의 스테이터스. 그 시스템으로 인간을 평가하고 있다.



언어 생산 방식

몇 달 전 나는 몇 년 전에 읽었던 파우스트의 구절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자신의 연모의 감정을 파우스트처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고 유행가 가사를 읊는 것으로 표현하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는 그레텐의 모습. 그 당시엔 교양의 부재로 부끄러웠던 일이지만 현재 우리는 그레텐과 같은 행위를 하면 오히려 허세가 넘친다고 비아냥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버지 세대의 연애편지를 보면서 그 세대의 문학적 창작능력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면서도 누군가 그것을 시도하면 오글거린다고 한다.

하이퍼링크로 대표되는 정보습득 방식은, 중간 중간의 의문점을 그때그때 즉시 해소할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정보를 더 많이 습득하고 지식이 풍부해진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긴 문장을 읽었을 경우, 책을 통해 페이지를 따라가며 문장을 읽었을 때에 비해 독해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실제로 내 글쓰기가 신선하다고 하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시대를 잘 타고난 것이 아닌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시대에 적응한 결과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지금 이 독후감마저도 군데군데 영감이 떠오르는 구절에서 내 생각을 뻗쳐 나가는 나뭇가지 구조를 이루고 있지, 하나의 목적성을 향해 문장과 문장이 치밀하게 이어지는 구성이 아니지 않은가. 전통적인 독후감이라면 하나의 글에 하나의 주제의식이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


갑자기 생각난 개드립이지만, 어쩌면 한낱 영상물을 볼때도 오프닝을 참지 못하고 구간선택 기능 사용을 선호하고 3분짜리 음악을 듣는 사람보다는, 20분짜리 클래식을 천천히 처음부터 느끼면서 듣는 습관을 가지는 쪽이 성생활에도 도움이 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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