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nate.com/view/20140125n02815

이미지에 지친 사람들은 타인의 진짜 인성, 밑바닥 성격을 들여다보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쟁이 아니며 전쟁 같아져서도 안된다. 극한의 상황에서 정신력이 좋은사람을 칭송하기전에 전시가 아닌 평시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것인가, 어떤 환경을 만들어야 많은 평범한 개인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현할수 있을지 고민해야 맞다.


<더 지니어스>나 <정글의 법칙>에서 나오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정말 그 사람의 밑바닥이며 그 모습은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것이 뭐 어쨌단 말인가? 그것 또한 인공적으로 꾸며진 '특정한' 문화적 환경 안에서의 진실일 뿐이다. (내가 루스 베네딕트를 제대로 읽었다면) 무엇은 허용되고, 무엇은 금지되는 그러한 룰이 바로 문화적 환경이며 문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칭송받는 선배가 미국에선 쓰레기가 될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 프로그램들이 조성한 특정한 환경(사회)에서의 A로, 다시 원래의 사회(한국사회)에서 살아갈 A를 평가해선 안된다.


사회(군 바깥의 표현) 부적응자가 군 부적응자가 될 가능성은 높으나, 군 부적응자가 반드시 사회 부적응자는 아니며, 군 적응자가 반드시 사회 적응자라고 할수도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그만큼 군 조직보다는 한국의 일반 사회가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수 있는 성숙한 사회라는 것을 뜻한다.


"군 생활을 잘해야 밖에서도 잘해" 극한 스트레스 내성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딱 이수준의 생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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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캠프 출연으로 모 동양철학 박사의 과거 발언 "노숙자들은 좀비처럼 수치심을 모르는 존재"비유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 사실 인문학 전공자라고 해서 인간에 대해 더 긍정적이거나 따뜻하게 봐야할 필요는 없다. 돌려 말하면 자연과학이나 공학 전공자들이 인문학 전공자들보다 전혀 비인간적이지 않은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나는 저 발언이 저 사람이 인문학자이기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인문학 전공자들은 그런 같잖은 우월감으로 연명할 거면 차라리 그냥 망해가는게 좋을 것이다. 현실과 전혀 맞지않는 고정관념이나 맹신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령 교육학 전공자들의 교육에 대한 이해는 실상은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는 사실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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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안병길, 2010, 동녘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저자
안병길 지음
출판사
동녘 | 2010-03-0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저항하라! 참여하라!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다!이 책은 ‘자유민...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무려 추천사가 이준구 교수와 임혁백 교수… 이 대목에서 이미 구매의사 50%는 넘겼다고 봐야.

알라딘 중고서적에서 5분만에 ‘오늘은 이만 됐다’ 하고 나오게 한 책이다. 이걸 6천원에 사다니 행복해요.



pp.19-20

(….) 둘째로, 사람들이 별로 친절하지 않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손님을 무시하는 듯한 택시 기사의 말투, 혼잡한 거리에서 어깨를 툭 치며 지나면서도 미안한 기색이 없는 행인,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을 밀치는 승객, 손님의 취향을 무시하는 식당 종업원의 서비스 등 그 예는 이루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런 광경들이 놀랍기도 했고, 기분이 약간 상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p.22

(….) 저는 2008년부터 이준구 교수님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활동했는데, 최근 이 교수님의 댓글에서 저와 같은 문제의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교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주의자가 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야. 자유와 권리가 조금이라도 침해된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용기를 갖고 있어야 해. 자신의 자유와 권리뿐 아니라 남의 자유와 권리까지도. 내가 우리 사회에서 자유주의자들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것은 그들이 ‘엉터리’ 자유주의자들이기 때문이야. 말로만 자유주의를 부르짖을 뿐 실제로는 민주적 원칙에 대한 존경심이 별로 없는 위선을 비웃는 것이지.”


p.33

우리 초등, 중등, 고등학교 도덕/윤리 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공동체주의를 주로 가르치고 있다. 자유와 권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것이 아닌데,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는 자유와 권리가 오히려 사회불안의 요인이 되는 것처럼 설명한다. 그런 교과서 내용으로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 교육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도덕과 윤리 교과서 내용을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p.37

이상에서 살펴봤듯이, 우리나라의 대국민 자유민주주의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내용도 매우 부실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는 이타주의와 공동체를 강조한다. 건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자윰니주주의를 활성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토양이라는 설명을 교과서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애매모호한 공동체 잣대를 들이밀면서 착하게, 바르게, 관용을 베풀면서, 전체를 위해 살 것을 가르친다.


p.52

(….) 이런 자유주의의 진수를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아라, 고운 말 해라, 거짓말하지 마라”는 식으로 절대적 도덕 가치를 기준으로 교육하는데, 그것보다는 자유민주주의 내부 원리를 제대로 가르쳐서, 왜 그렇게 살아야 자신에게 더 이로운지 깨우치게 해줘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단연코 도덕무장 이념이 아니다. 필자는 인터넷에서 익명이든, 실명이든 욕설을 하지 않는다. 착해서 그럴까?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고, 응징 받기 싫어서 그렇다. 즉, 착하고 악한 도덕적 잣대가 아니고, 좋고 싫은 호오의 합리성 잣대이다.


pp.83-84 

어떤 작가가 성년이 된 딸의 사생활 이야기가 포함된 수필을 신문에 기고했다고 하자. 그 작가는 헌법 제21조가 보장한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행사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작가의 딸이 자신의 사생활 이야기가 신문에 덜렁 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헌법 제17조가 규정한 사생활 비밀 유지의 자유가 침해된 사례에 든다. 헌법 속의 두 자유가 박치기한 것이다.

사생활 비밀 유지는 불가침에 해당되는 기본권이다. 따라서 만약 딸이 저항했다면(사생활 이야기 공개에 반대했다면), 그 작가가 방종을 저지른 것으로 자유주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다. 위에 인용한 제21조 4항에서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유주의에서는 딸도 타인이다.

그런데 작가의 딸이 자신의 사생활이 공개되는 것을 바라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는 이상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 작가는 신문에 수필을 기고하기 전에 반드시 딸의 자유의사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헌법상의 자유와 자유 박치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작가 가정의 분위기가 자유롭다면 딸은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표현할 자유를 행사할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분위기라면 작가의 희망이 딸에게 비쳐서 나타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더 위험한 것은 작가가 딸의 선호를 마음대로 추정해서, 당연히 신문에 실어도 딸이 찬성할 것으로 생각하는 데 있다. 자유주의에 어긋나지 않으려면 당사자인 딸이 자유의사로 명시적인 확인을 하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p.151

전선이 잘못되었다. 공공의 적은 권위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헌법에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대못을 박아 놓았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권위주의가 우리 국민의 적이다. 좌파, 우파, 보수, 진보가 아니다. 정치판에서 각자 세력을 넓히려고 상대편을 깎아내리는 정치적 조작 측면은 이해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발상을 할 때가 되었다. 아직 남아있는 과거 독재/권위주의 잔영을 청소해야 한다.


p.196

자유는 말 그대로 자유이지, 공동체를 위해서 희생을 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는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열심히 사는 것이 자유주의의 모습이다.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자유주의의 정답이다. 만약 그것을 공동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언어의 유희이다. 독자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시기 바란다. 그렇게 해도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정답이 될 수 있는 것이 자유주의다. 어설프게 국가 공동체를 위한다든지,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든지, 국가이익을 위한다든지, 우리는 운명 공동체! 따위의 주장으로 무장하여 가스통을 들고 설치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긍정적이고 건설적이다.


pp.206-207

자유민주주의는 전형적으로 장기 합리성을 추구한다.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는 잘될 것이다. 필자는 그렇게 믿는다. 잘되려면, 국민이 스스로 자유와 권리를 지키려는, 투쟁하는 정신자세를 지녀야 한다.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 줘야 자유주의에서는 평화가 온다. 로마의 전략가 베제티우스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가 그 뜻이다. 우리 국민은 쓸데없는 곳에 너무 관용을 베풀고, 귀차니즘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려야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한다. 공짜가 어디 있는가, 자유는 포근한 엄마 가슴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pp.259-260

2008년 여름, 박태환 선수가 올림픽 수영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박 선수의 경기가 모두 끝났지만, 박 선수는 귀국하지 못하고 있었다. 개별로 입국하면 전체 환영 행사에 지장이 생긴다는 대한체육회의 설명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주의적 사고방식이었다. 필자는 이런 권위주의적 발상이 없어져야 자유민주주의가 더 뿌리를 내릴 것으로 진단한다. 편협한 이기주의는 멀리해야겠지만, 건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토양으로 봐야 한다.


p.274

먼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유명한 격언의 의미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어떤 누리꾼이 마음이 약해서 상대방의 도발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굴복하는 타입이라면 평화를 보장하기 어렵다. 상대방은 나약한 누리꾼이 저항하지 않는 것을 알고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상대방의 도발을 적절하게 응징하는 누리꾼에 대해서는 조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응징을 당하면 자신도 괴로워지므로 도발을 자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도발할 가능성이 있는 상대에게 자신이 세다tough는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이뤄지는 평화는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가능하다. 나약하게 대응하는 타입이라면 가능하지 않은 평화이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상대방이 나를 우습게 여기면 도발을 막을 수 없고, 상대방이 나를 만만찮게 여기면 도발을 막아서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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