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5.02.25 신 없는 사회
  2. 2015.02.14 여백의 미
  3. 2015.02.08 스크린도어 공해
  4. 2015.02.03 사회학이 뭐냐는 질문에 대하여

신 없는 사회

2015.02.25 09:05 from 책/짧은 리뷰


신 없는 사회, 필 주커먼 지음, 김승욱 옮김, 마음산책, 2012




신없는 사회

저자
필 주커먼 지음
출판사
마음산책 | 2012-04-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신 없는 사회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들이 만드는 현실 속 유토피아근...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인류학적 민족지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술술 읽히기도 하면서, 여러가지 사례들을 참고하기에는 괜찮은 책이었다.



"덴마크인과 스웨덴인은 대부분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덴마크인 중 82퍼센트가 인간의 진화에 대한 다윈 이론의 증거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이는 서구 세계에서 진화론을 믿는 인구 비율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숫자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대부분의 덴마크인과 스웨덴인은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성경의 신성함을 거부하고, 예수를 믿지 않고, 죄악이나 구원이나 부활도 믿지 않고, 심지어 하느님도 믿지 않으면서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다니. 나는 1년간의 연구에서 이 의문을 반복적으로 파고 들었다"(p.26)



본인을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로 규정하는 저자는 열성적인 기독교적 메시지가 가득한 미국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 미국 사회학자에게 있어서 1년여간의 덴마크/스웨덴 생활은 신선한 충격과 즐거움을 선사했을 것이다.



적지 않은 덴마크, 스웨덴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례들을 보자.

- 동정녀, 부활에 대한 질문 -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다

- 교회를 정기적으로 다니는가 - 그렇지 않다. 하지만 교회세를 낸다. 견진성사를 받고 교회에서 결혼을 한다. 그것이 우리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종 취급을 받는다. 

- 종교적인 것에 대해 백지상태. 평소에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 그런 질문은 성적인 것보다 더 사적이고 개인적인 질문으로 취급받는다.

- 교회도 안가고 신도 믿지 않지만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성서는 지혜의 보고로서 읽을 가치가 있으며, 기독교인의 의미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예의바른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런 부분을 문화적 종교라고 명명하며 그 특징을 세가지 정도로 요약했다. 

1. 교회라는 건축물과의 관계 : 긍정적인 건물이다. 공동체의 기념물이자 문화적 유산으로 간주된다. 교회에 가진 않아도 교회 건물을 좋아하며, 그곳에서 결혼하기를 바란다.

2. 성서와의 관계 : 성서는 본질적으로 신성하지 않다. 그러나 그 책은 좋은 책이며, 고대로부터 내려온 품위있는 도덕과 가치관의 저장고이자 지혜와 통찰력으로 가득찬 중요한 이야기들을 모은 훌륭한 책, 역사서로 생각한다.

3. 정체성의 문제 : 대부분 기독교인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며, 무신론자로 규정하는 것을 매우 꺼린다. 무신론자는 부정적이고 전투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한편 한국은 통계적으로 봤을때 미국보다는 덴마크/스웨덴에 가까운 세속적인 사회에 가까운 결과다. 저자도 지속적으로 일본과 한국을 종교색이 옅은 세속적인 속성을 공유하는 나라들의 예로 지목하고 있다. 처음엔 이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판단이 크게 봤을때는 맞는것 같다. 적어도 일부 개신교인들 외에는 미국처럼 공개석상에서 신의 은총, 저주 운운하지 않으며 정치문제보다도 종교문제에 대한 대화를 더 꺼리고 있다. 번역자 후기를 보면, 한국인 독자들에게는 덴마크보다도 미국의 현실이 더 인상깊지 않을까 라는 촌평을 달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덴마크에서 미국을 1년 경험한, 저자와는 정반대의 경험을 한 모르텐의 이야기로 책을 끝맺는다.


덴마크에서의 인터뷰(2005) : 하느님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더 큰 무언가가 있다고는 생각한다. 어릴적엔 기도도 했엇고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그게 뇌의 착각일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은 든다.


미국에서의 인터뷰(2007) : 종교적인 믿음을 개인적으로 간직하지 않고 자기 신앙심을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게 놀랍다. 자동차 범퍼에, TV와 라디오에 노골적으로 나오는 메시지들을 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정치인들도 문제가 생겼을때 하느님께 기도한다는 식으로 답변하는 건 충격적이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난 하느님을 믿는 기독교인이었지만, 덴마크식 기독교인이었지. 성경에는 말이 안되는 이야기가 아주 많아. 그래도 나는 하느님이 저 위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규칙도 만들려고 애쓴다고 들었어. (...) 그런데 여기 와서 사람들이 전부 노골적으로 나서서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고 동정녀에게서 났다고 말하는 걸 본거야. 그런걸 죽 보며 내린 결론이, 내가 기독교인이 되려면 이런걸 다 믿어야 하는구나 였지. (...) 내가 믿어야 하는 주장들 중 겨우 10퍼센트 밖에 믿을수 없다면 나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생각할수 없잖아. (...) 그래서 이제는 귀국을 앞두고 적어도 불가지론자가 됐다고 말할수는 있을 것 같아. 어쩌면 무신론자가 된 건지도 모르지만 (웃음)"


"덴마크에서 누군가가 미국의 종교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거야. 당신은 내 말을 안 믿겠지만 미국 사회는 정치며 언론 매체에서 벌어지는 토론이며 모든 것의 바탕에, 모든 사람이 아주 헌신적인 기독교인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그러니까 공개적인 자리에서 하느님을 믿는다고 분명히 말하고, 문장을 말할 때마다 하느님의 축복을 비는 말을 집어넣지 않으면, 공직에 앉을 수도, 대통령이 될 수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우리 덴마크인들은 미국이 우리한테 전쟁을 같이 나가자고 권유하거나 아니면 무엇이 됐든 함께 일을 하자고 권유할때 아주, 아주 조심해야 한다고 말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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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미

2015.02.14 14:50 from 내 글/단문


여백의 미라는 말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 개념 자체가 싫다기 보다는 쓰이는 방법 때문에 싫어진 경우다. 우리 조상들은 옛부터 여백의 미를 알아서... 로 시작되는 연설은 원칙과 이상처럼 진행할수 없는 '현실적'인 고충으로 마무리된다.

이 말은 보통 서구 근대의 기본 전제인 상호배타적 분류를 거부하거나, 이말도 맞고 저말도 맞고 하는 애매한 해석을 내릴 때 나온다. 그렇게 딱딱 칼같이 끊어지는게 현실이 아니야 어린 친구! 마치 '서구 근대'의 모순을 지적한 것마냥 뿌듯한 풍부한 인생의 지혜를 과시하면서.


뭐 말은 좋다 이거야. 근데 그런 분들은 실제로는 정말 모 아니면 도여야 하는 부분, 예를 들면 돈 문제, 법 문제 같은 것들에서 굉장히 유연하시다. 반대로 주변인들이 자기 마음에 안들거나 개인의 자유, 창의성 문제로 가면 갑자기 중간영역이 사라진다.

여백 같은건 없고 자기가 설정한 범위의 밖은 다 틀린 것이 된다. 웅장하다고 생각한 것을 쓰세요 라는 초등학교 시험문제에 "엄마 뱃살"이라고 쓰면 틀린 것이 된다. 정치 사회분야에서 너는 어느나라 사람이냐? 투표 안하는 놈은 매국노 이런 말을 서슴없이 쏟아낸다.


한반도엔 여백의 미를 만들어 낸 호랑이 부모는 있어도, 그것을 개똥처럼 쓰고 있는 개자식이 있다. 회색과 개인은 나쁜 의미이면서, (근대 합리성)의 여백을 꿋꿋이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여백의 미는 개똥같은 소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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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도어 공해

2015.02.08 02:00 from 내 글/중문


자기계발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기로 유명한 공군 비행단의 생활에 비해 같은 공군 소속이지만 여가에 있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전방부대 병사들을 위해 전 사령관이 추진했던 사업 중 하나가 있다. 이른바 "병영생활 성공 STORY"라고 하는, 군생활동안 1인 1목표 달성을 계획하고 그 성취에 따라 포상휴가를 받는 제도였다. 가령 토익 점수 850점을 목표로 하였을때 그 목표를 달성하면 해당 토익 성적표를 제출함으로써 포상휴가를 받는 식이었다.


고의로 쉬운 목표를 설정해서 휴가를 따내지 않게 하기 위해 다소 양적인 제한기준을 두었는데, 예를 들면 토익점수는 몇점 이상이어야 한다든지, 한국사 같은 자격증의 경우는 1급이어야 한다든지, 책읽기라면 50권 이상이어야 한다(무조건 이 50이란 숫자가 기준이었다) 미친... 내가 대학생일때 중도에서 빌려서 읽은 책이 1년에 50권이 안되었을텐데... 아무튼 이런 기준을 세웠음에도 많은 친구들이 특별한 목표를 세우기 곤란했는지 책읽기 50권이라는 무지막지한 목표를 세웠다.


하루는 이 제도에 대한 모럴 해저드 사례를 가지고 얘기하는데 주임원사가 시 50편을 기준으로 삼아서 포상휴가를 나간 친구들이 많다고 해서, "시 50편"이 가능해요? 했더니 보시겠습니까 하고 내미는데... 한두장 보면서 참 뭐라 말해야 할지... 내가 평소 '글'이라는 것에 굉장히 이상적인 가치를 투여하고 있는, 순진한 사람이었구나 생각을 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지하철 플랫폼에 서있을때마다 스크린도어를 부셔버리고 싶게 만드는 저질 텍스트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이다. 도대체 이 멍청한 아이디어를 누가 냈는지 모르겠다. 왜 게시되었는지도 모르겠는 (서울 시민의 작문 수준이 이정도로 형편없습니다 하는 의도?) 병신같은 텍스트들이 수백개의 역 플랫폼마다 게시되어있는 꼴을 보자면, 차라리 일본처럼 사채광고로 도배되는게 낫겠다 싶은 생각마저 든다. 최소한 상업적인 이득을 위했다는 합리적인 이유가 하나라도 있을 테니까.


우리가 한번쯤 봐야 할 가치 있는 텍스트가 얼마나 많은가? 필부필부의 어거지같은 글을 보느니 차라리 릴케, 엘리엇, 랭보의 시를 싣든지, 한국의 시를 싣든지, 저작권이 문제라면 신인 작가들의 시를 돈을 주고 게시한다든지 적어도 이것보다 상식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주요 언론 주간지며 일간지 기사 수준이 낮아서 차라리 공짜로 인터넷으로 보겠다는 사회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하다못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제휴해서 대중가요 가사를 붙여놔도 이것보단 나을 것이다. 3호선 학여울역 8-2 플랫폼에 어느 아저씨의 서울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키치스러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저질시 대신 링딩동 링딩동 링디기딩디기딩딩딩 같은게 7개언어로 적혀 있어봐라. 외국인들 떼로 와서 사진찍고 난리 날거다.


수유역에는 모유수유의 유익함, 남성역에는 페미니즘의 역사, 국회의사당역에는 대한민국 헌법. 남영역에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개요. 전철 기다리면서 관심있는 사람이 잠깐 볼만한 내용은 얼마든지 있다. 오늘도 전철을 기다리며 어김없이 붙어있는 100% 확률의 지뢰 텍스트. 그것들을 인쇄하는 재료에 쓰인 자원과 그것들을 붙인 누군가의 에너지, 그 지뢰를 잠깐이라도 읽어보는 이용객들의 시간과 독해에 쏟는 에너지 낭비를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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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말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사회학이 뭐냐는 질문이다. 처음 부대 전입했을때 이래로 다시금 많이 듣는 질문인데, 아마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아서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다들 대학도 나오신 분들이 대학생때는 관심이 없었던건지 다같이 내숭쟁이였는지. 이렇게 직접적으로 묻는게 공자가 얘기했던 모르는걸 모른다고 하는 성숙한 배움의 자세인지 그냥 예의없는 질문인건지. 무슨 교과서 개론 첫째줄을 읊어달라는양, 아니 라디오스타 게스트에게 던지는 공식 질문처럼 "어웅에게 사회학이란?" 이런 느낌으로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요즘 하나 만들어놨다. "니들이 정치라고 생각하는게 다 사회학이라"고. 정치학은 딱딱해보여 공부 못하겠고, 보수반동적이라 생각하는 일련의 사람들이 다 사회학 수업을 듣더라.


뿐만 아니다. 딴에는 정치 문제라고 열심히 논평을 하는데 죄다 자신이 지지하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그냥 정치영역을 해석한 것에 불과하더라는 것이다. 나부터가 정치학 전공자가 아니니 전공부심이 아니라 이렇게 말할수가 있다. 자칭 정치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분들은 다들 사회학 영역에 들어갈 문장을 구사하고 계시더라.


물론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고 해서 그분들이 사회학이 그런거였어? 하실거 같지는 않다. 되려 그럼 그게 사회학이면 정치학은 뭔데? 이럴것 같다. 그래서 또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 아니 그래도 한두번쯤 그렇게 대답해볼 생각이다. 그래야 돌아오는 반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생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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