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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

2015.03.10 19:52 from 책/발췌


칼 포퍼, 필 바빈 지음, 이화여대 통역번역연구소 옮김, 아산정책연구원, 2015




칼 포퍼

저자
필 파빈 지음
출판사
아산정책연구원 | 2015-01-3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이 책에서는 우선 포퍼의 생애와 연구에 대해 전반적으로 짚어본다...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p.63-65

포퍼는 과학에 대한 이런 귀존의 이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가 제시한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그는 귀납법의 철학적 논리적 토대, 즉 "어떤 관찰 명제가 사실이라면 그것에서 추론한 이론 역시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라는 논리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포퍼는 "아무리 반복되는 현상일지라도 관찰에서 추론한 일반화가 진실임을 보증할 수 있는 규칙은 어디에도 없다."라고 반박한다. 

(...)

이 주장으로 포퍼는 급진적 결론에 도달했다. 구체적인 사건이나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자연법칙을 도출해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오랜 견해가 잘못됐고 소용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귀납주의의 문제가 '어떤 이론도 절대 과학적으로 증명될수 없으며 오직 반증될 뿐'임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백조는 하얗다'라는 명제는 아무리 많은 하얀 백조를 관찰해도 증명될 수 없으며, 그저 한 마리의 하얗지 않은 백조를 관찰함으로써 확실히 반증될 수 있다. '그 요새는 난공불락이다'라는 주장은 침입이 실패한 경우를 아무리 많이 끌어와도 증명될 수 없다. 단 한번의 침입으로 확실히 반증될 뿐이다. 아즈텍 사람들이 믿었듯 '태양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태양이 뜨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론은 제물을 제대로 바친 수많은 예로는 증명될 수 없으며, '제물을 바치지 않았는데도 태양이 뜬다'는 사실로 확실히 반증된다. (...) 이 반증된 명제는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포퍼에게 이론의 반증은 축복하고 높이 평가해야 할 과학적 지식의 진정한 진보다. 어떤 이론이 진실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무엇이 진실인가, 혹은 진실일수 있는가'를 향한 중요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반면 쓸모없는 이론은 반증이 불가능한 이론들이다. (후략)



pp.78-79

(전략) 사회과학적 연구 역시, 시작은 사회 정치문제를 파악하는 것이며, 추측과 반증의 시행착오를 거쳐 기존의 이론과 관행, 타인들이 제시하는 가설적 해결 방법에서 오류를 제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역사의 향후 진로에 대해 장기적이고 보편적인 예언을 하는 것은 사회 이론의 역할이 아니다.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문제를 타인이 비판하고 검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 이미 시행 중인 해결책, 그리고 사회 정치제도와 사회적 관행이 이미 포함된 방책들이 과연 옳은가를 확인하는 것이 사회 이론의 역할이다. (...)

포퍼는 이처럼 물리학과 사회과학의 특징은 '방법의 통일'이라고 주장했다. 즉, "모든 이론적 과학, 혹은 보편적 과학은 그것이 자연과학이건 사회과학이건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기존의 사상, 이론, 관행을 비판적 합리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구성원들이 기존 문제에 대해 반증 가능한 가설을 추론하고 반증하는 시행착오 과정은 어디에서나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와 사회 문제에 관한 이론들은 자연과학의 문제에 관한 이론들처럼 반증할 수 있어야 한다. 포퍼는 또한 물리학 영역에서 과학적 이론과 비과학적 이론을 구분하는 제대로 된 기준이 반증 가능성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과학을 위시한 다른 분야에서도 반증 가능성은 진짜와 사이비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포퍼는 과학적이라고 칭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많은 이론들의 취약점이나 비과학적인 특징을 밝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론의 세가지 예가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다. 포퍼는 이 이론들의 문제가 정확한 반증이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고 봤다. 반론이 불가능한 것이다. 포퍼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자, 프로이트주의자, 아들러주의자 모두 각 이론의 해석하는 힘에 매료된 것이다. 실제로 "이 이론들은 자신들의 영역 내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p.79

(전략) 포퍼는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같은 개인의 이론이 거짓임이 증명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과학적 이론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뉴턴의 만유인력과 역학이론도 아인슈타인에 의해 반증됐다. 하지만 그런 아인슈타인조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나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혹은 마르크스주의는 반증하지 못했을 것이다.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하에서는 환자가 한두가지 억압도니 충동의 조합으로는 자신의 행동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느껴도, 그들은 그저 '부인'하고 있으므로 치료가 더 필요한 사람이라고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계급 투쟁이나 공산주의의 필연적 탄생을 거부한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은 그저 '허위의식'을 앓고 있는 것이므로, 마르크스주의 독단적 신념을 더 교육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질 뿐이다.



pp.93-94

하지만 포퍼는 이미 많은 독자들이 눈치챘을지도 모르는 지점을 지적한다. 과학적 방법에 대한 역사주의자들[각주:1]의 비판은 사실 포퍼가 그렇게 무너뜨리고자 했던 전통적, 귀납주의적 과학관에 대한 비판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사회 이론의 소위 '과학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결론적으로 포퍼는, (물리학의 방법을 사회과학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 역사주의자들이 사실은 과학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바람에 "과학적 방법을 사회 연구에 적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천착하고 있다고 봤다. 포퍼가 보기에 역사주의자들의 문제는 귀납적 모델이 사회 연구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 핵심에서 잘못된 결론을 끌어냈고, 잘못된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귀납적 방법이 물리적 자연적 현상을 연구하는 데는 분명 적합하지만 사회적 현상을 연구하는 데는 부적합하다는 것이 역사주의자들의 주장이었음을 기억하라. 논리실증주의자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주제별, 방법론별로 학문 분야를 분리하려 했던 것이고, 이에 포퍼는 강경하게 반대했다. 역사주의자들은 귀납적 방법이 물리학에서 차지하는 절대 우위를 의심의 여지없이 인정했다. 자연과학자들은 그들 본분의 일을 하고, 사회과학자들은 그들 본분의 일을 하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에 포퍼는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다. 귀납적 모델이 사회 연구에 적합치 않다고 포퍼가 주장한 이유는 귀납적 모델이 그 무엇을 연구하기에도 적절치 않기 때문이었다. '사회과학자들은 귀납적 모델을 폐기해야 한다'는 역사주의자들의 주장에 포퍼가 동의하기는 했지만, 역사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해도 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더 일관성 있는 개념의 과학과 과학적 방법이 등장해야 한다는 점에서였다.




  1. 칼 포퍼가 말하는 역사주의적 전통을 지닌 이들로는 플라톤, 헤겔, 루소, 콩트 등을 들고 있으나, 이 대목에서는 '사회과학 영역에 적용할 과학적 방법'의 문제에서의 하버마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등 현대의 비판 이론가들의 논리가 주 타겟이 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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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만 말하는 언론, 김기종 말하지 않으려는 진보 세력

[옥인동 샤우팅]80년대 열혈 운동권은 왜 불행한 개인이 되었나



후반부는 그냥 개나 주는 걸로 하고, 전반부에 있는 글쓴이의 문제의식이 그나마 덜 식상해서 링크해둔다.



-


솔직히 그렇다. 내게 미국 대사가 대낮에 칼부림을 당했다는 사실만큼이나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범인을 '낯선 광인'으로 대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진심어린 시선이었다. 그 사람, 김기종씨의 주장과 논리체계가 그렇게 낯선가? 시대에 뒤떨어진 극단적 민족주의자라 평하는 것은 적어도 현재시점만 떼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도 저사람의 생각이 극단적 민족주의자였나? 이런 질문을 해보는 사람이 없다는데에 난 충격을 먹었다.


그래서 난 링크한 글이 흥미롭긴 하다만 동의 못한다. 링크한 글은 저 사람의 생각이 과거에 비해 극단적으로 되어 문제가 된 것이고, 그 과정이 어떤 것일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난 그렇게 생각 않는다. 저 사람의 생각이 극단적인 것이 되도록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우리 사회가 무슨 사건을 어떻게 거치며 바뀌어왔는지 왜 저런 자들의 생각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 그냥 흐르는대로 유행따라 오다보니 저런 낙오자가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다행스럽게도 유행에 탑승하여' 일반의 사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사회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 진보세력이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하는 의식적인 거리두기를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일반적인 대중이었던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손쉬운 망각, '애초에 우리는 그런 극단적 민족주의를 가졌던 적이 없었다'는 식의 묘한 자신감. 난 여기서 소름이 돋는다.


분명 우리는 전보다는 나아졌고, 방향은 맞게 가고 있는것 같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바뀌었고, 임나일본부설에 맞서 삼한 분국설같은 똥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윤영관 교수한테 미국은 자국의 이익만을 내세워서 문제라고 따지던 운동권 학생의 모습에서, 이제는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달려가다 생긴 낙오자를 미친놈으로 단죄하는 걸 보니, 대한민국은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만 낙오자를 만들어내는게 아니라 사상 차원에서도 낙오자를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진심으로 두려운 마음이 든다.



"우리도 중딩때 퍼킹 유에스에이 불렀던거 알고 있잖아? 사회현상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그걸 기억 못한단 말야?"

"너나 나같은 20대 후반에게는 그런건 운동권에 관심있는 사람 외엔 굳이 인상깊지 않은 거야"

"그럼 그때 대학생이었던 우리보다 다섯 살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도 똑같아"

"그럼 우리보다 열 살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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