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이지만, 정치적 올바름을 잘 갖추고자 노력하신 이과 전공자분들 중에 "여성혐오가 존재하는건 사실이고 - 메갈/워마드/트위터 페미니스트 걔네 말이 틀린말은 아니지 않느냐"는 로직으로 간단하게 결론내고 자꾸 흡수-재생산하고 한남 같은 단어도 헬조선처럼 자조적으로 직접 쓰시는 남자분들이 꽤 있던데 참 보기 힘들었다고 지인에게 토로한 적이 있다.


솔직히 이 의구심이 지금도 별로 사라지진 않았다. 내 주변에도 이공계가 더 이런다. 엊그제 "지금 박근혜-최순실 욕하는 주장 99%가 여자라서 욕하는 거 아니냐"는 개소리를 페이스북 '헬조선 번역기' 페이지가 어그로로 취급했더니, '바람계곡의 페미니즘' 페이지가 또 나서서 99%라는 표현은 쏙 빼놓고 언급하지 않고 "암탉 드립등 여자라서 욕하는 표현이 있는건 사실 아니냐" 루트로 단일결론 내놓고는 '헬조선 번역기' 페이지 운영자를 '진보ㅆㅊ'이다는 식으로 폭격중이더라. 


그리고 그걸 이공계 친구가 공유해놨길래 짜증이 나서... 아, 어쩌면 얘네가 인문사회과학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인문사회과학은 인간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통계수치로만 들이대선 안되겠고 수많은 것중에 예외적 하나에 불과한 케이스도 당사자에겐 전체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니까 그 자체로 특수성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할수도 있다. 그런 서사의 역할을 하는 쪽이 사회과학과 대비되는 인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인문과학이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과학적 방법론에 의해 어느정도의 보편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근데 이분들은 자기들은 그렇게 과학적 방법론으로 공부해놓은 주제에 인문학 전공자들이 뇌내망상해서 그걸 막 일반화해서 팩트로 만들고 있는 것들을 방관하거나 문제의식을 못느낀다.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시비걸면 (실수한 뇌내망상자들이 말하는 것과 똑같이) 너도 한남충이지 오타쿠지 정도로 결론내기 일쑤고. 그래서 이제는 그자들이 "문과는 이래야한다"는 오리엔탈리즘의 사고방식이 있는게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뇌내망상 서사가 인문과학의 본질이라 여기는 것인지 그런 개소리에는 존경과 지지를 보내고, 직관이나 내뇌망상에 의존하지 않고 통계나 자료에 근거하려는 시도가 보이면 욕한다. 어? 기준 정해놓고 자기한테 맞으면 지지하고 벗어나면 욕하고... 이거 어디서 본 개념 설명 아닌가? 바로 그자들이 그렇게 평소에 부르짖던 미소지니의 원리다. 


좀 짜증이 난다. 소위 개발자라는 사람들, 탈조선이 쉬운 이공계 엘리트에 속한 사람들이 이런 함정에 너무 얽혀드는걸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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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작성일 16.5.1


대학교 다니려고 상경하고 나서 몇년 지나고 느낀게 있었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지방을 너무 모른다는 거였죠. 압구정 영등포 지명만 알고 그게 강남인지 강북인지도 몰랐던 저야, 살면서 할수없이 서울에 대해 알게 된거다 쳐도 그럴 필요도 가능성도 없는 사람에게는 낯선 지방에 대한 정보가 가치가 있을리가 없긴 했습니다. 비록 평생 서울을 가지 않을 삼남지방 토박이도 매일아침마다 뉴스로 원효대교가 막히는지 안막히는지 서울의 출근길 교통정보를 강제로 들어야만 하지만요.  


저는 이 문제의식을 하나의 문화적 혹은 사회적인 부분에서만 생각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그당시 꾸준히 궁금했던건 왜 사람들이 집값이 비싸다면서, 평생 부동산의 수혜를 받을수도 없으면서 수도권을 뜨지 않을까 였습니다. 극단적으로 독일차 한대 값이면 지방에선 아파트에서 사는데. 어쩌면 서울을 나가면 지는거라는 의식 때문은 아닐까? 같은 곱지 않은 의심을 했었죠. 시간이 지나서 인맥의 문제, 아는 사람이 서울에 있으니까 그렇겠구나 했고, 더 나중에야 수도권 밖에는 일자리가 없다는걸 알았죠. 


개인적으로 이사를 자주 다녔고, 매사 적극적이거나 사교적인 성격은 못되지만, 아니 오히려 그 반대지만 어디 딴데 가서 산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덜합니다. 대한민국 멀어봤자 비행기탈것도 아니고 버스 기차타면 금방아닙니까. 게다가 지방출신은 어차피 대학때문이라도 1번 이상 활동무대를 옮겨야하니까요. 그런점에서 서울에서 평생 나고 자란 사람은 타지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과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하다못해 인천이나 위성도시 가는것도 큰 결단이 필요해 보일때가 있더군요. 근데 그 공포가 과한걸 과하다고 감히 말할수가 없는 것이, 객관적으로도 서울이 더 나으니까요. 개개인이 놓인 상황을 제하더라도 일단 지방으로 가면 젊은이가 없고, 편의시설이 없고, 대중교통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좋은 일자리라는 혁신도시 공기업에 취업해도 많은 이들이 다시 돌아갑니다. 


근데 최근들어 이게 사회문제나 개인의 경제문제가 아니라 정치문제가 되더라는걸 느꼈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에 청년층의 투표율이 올라가면서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졌고, 그중에 제 눈에 띈게 지방에서의 몰표에 대한 혐오인식이었습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한다는 안경을 끼신 분들은 몰표라고 까고, 지역이슈에 대한 결벽증이 있는 분들은 지역이기주의라고 까고... 과정이나 근거가 문제가 아니라 결과가 문제가 되더군요. 그때도 이건 좀 그런데 싶었지만 이번 총선에서 호남가지고 터진걸 보니 문제가 좀 심각한거 같아요. 지역주의는 한국정치만의 망국병이라는 서사를 만들어낸 것은 2000년대의 특정 정치집단이었죠. 세상에 땅따먹기 안하는 선거가 없다는 진실, 미국 대선을 저보다 훨씬 많이 접하고 보셨을 분들이 그런 거짓신화를 퍼뜨리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는게 짜증이 나지만 이것과 근래 성토되는 시골의 전근대성의 발견 서사가 합쳐지니까 좀 위험해졌습니다. 


근래에 트위터에서 귀농하지마라 농촌의 실태 뭐 이런게 퍼져서 페이스북에도 옮겨온 적이 있었습니다. 현상적으로는 다 맞는 말이고, 사실 지방출신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그게 싫어서 의식적으로 지방을 뜨고 돌아가지 않는 사람도 꽤 있죠) 평소에도 얘기해오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갑자기 에베레스트를 발견한 것처럼 "놀라워진"거에요. 거기에 이번 선거 결과가 붙으니 난리가 난거죠. 농촌의 실태 그 자체에 대해 얘기하자면 결국 시골의 정이나 그런 정서는 시골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주장한게 아닙니다. 하나도 내세울게 없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는 수준이죠. 오히려 시골 출신으로 상경한 50-60대 전후세대들이 갖는 환상이 기원이죠. 지금은 본인이 서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만든 환상을 가지고 진퉁 서울 사람인 자녀들이 반박하며 성토를 하고 있는 겁니다. 


시골의 전근대성. 이건 저개발이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최저임금 문제에서 근래에 자주 나오는 얘기가 금액의 인상도 인상이지만 지방에서의 최저임금 준수 문제입니다. 지방에선 지키는 케이스가 오히려 일반적이지 않을 정도죠. 만약 이걸 가지고 준법정신이나 덜 배운 사람 취급하면 어떨까요? 지역의 구매력이 그정도로 수도권과 차이가 나 있는거죠. 그 상황에서는 그냥 미개하다고만 하고 넘어갈수는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타개하기 위해서 투자가 필요하겠네요. 행정력을 동원해야겠죠. 이런 투자는 최저임금이 아니더라도 다른 문제에서도 필요하겠죠. 그런데 그런 생각조차 지역이기주의라고 하는 겁니다. 


여튼 서글플 사이도 없이 좀 기가막히더군요. 차라리 개발격차의 역사가 한 100년 됐으면 모르겠습니다. 불과 3-40년 차이로, 지금도 수도권 사는 노인들이라고 지방 사는 노인들과 정서가 큰 차이가 나는가 생각하면 아니거든요. 그 3-40년간 근대화 도시화를 거치면서 소위 미개한 인식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밖으로 발현되지 못하는 구조를 구축했느냐 못했느냐의 차이인거죠. 이런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민도 없이 지방주민들의 지역발전의 욕망에 대해서는 인구비례와 효율성 논리로 윤리적 비난을 가하고, 낮은 단계의 근대화로 발생한 현상에 대해서는 미개하다고 열심히 성토합니다. 더 나아가선 어치피 인구재생산이 안될테니 소멸하도록 포기하는게 맞다고 생각(주장)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긴 모 당 수도권 지지자들이 "잘됐다. 호남 버리고 전국정당 가자!"는 식의 얘기가 정당의 노선이 아니라 정부정책의 방향으로 다루면 딱 그 얘기기도 하죠. 


아무튼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그런 순수한 폭력성을 지닌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머릿수도 많으니 자신있게 그 목소리를 내세우는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전주 출신인 제 지인은 끊임없이 민주당의 지금까지의 실패와 배신에 대해 얘기했지만 그건 관심없고 그냥 문재인이 부산사람이고 김종인이 국보위라 그 사람들이 싫어할 것이다로 통설 내려놓고 망상중이더군요. 잘 모르면 들어야 할텐데 오히려 자기들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고 가르치려듭니다. 화가 나더군요. 압축적 근대화와 개발격차의 역사적 맥락을 알만한 이촌향도 세대의 의식적인 망각과, 서울에서 자고 나라 열심히 젠더문제 인권문제를 말하고 있는 분들의 의도적인 외면이.  


솔직히 새누리당이 특권층을 위한 당이다 뭐다 하는데 그래도 강원 충북 영남에 기반이 있어서 이명박 이후로는 대놓고 그런 의도가 있다는 티는 안냈어요. 서울시장으로 압도적으로 대통령된 이명박조차도 형이 지역구 국회의원이라 그 색이 덜했구요. 근데 더민주가 이렇게 하향식도 아니고 상향식으로 수도권 몰빵으로 가겠다는 티를 낸다면 고민할 사람 많이 생길겁니다. 관습헌법느님 덕분에 지역균형정책의 큰그림이 좌절된 이후에 서울에 안 붙으면 지금까지 시혜성으로 주던것도 주지 않겠다는 식의 으름장이 되버리는거죠. 세대투표에서만 인구구조의 문제가 영향력을 주는게 아닙니다. 전국민의 과반수가 (지역색이 없다고 믿는)서울 사람인 시대에서 어떤 치유될수 없을 갈등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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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작성일 16.7.14


모 기업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자꾸 아재가 뭐 핫하다느니 미화를 하는게 보이는데 그것도 한두번이지 작작하자. 강남스타일 한번 떴다고 전세계인이 한국노래 듣는 타령하네. 뭐 부탁하는 말 하나를 못해서 쭈뼛쭈뼛 자기 손아랫사람이 말하지 않으면 직접적으로 자기혼자 말도 못하고, 자기가 눈치주는데 누구 딴사람이 안해주면 혼자 삐져가지고 꿍해있다가 나중에 이상한 걸로 딴지걸고 오기부리고 이게 진짜 아재속성 아닌가 ㅋㅋㅋㅋ 


혼자 뭐좀 하라고 놔두면 밥도 못챙겨먹어 물건도 못챙겨 1인분 사람구실도 못하고. 자기 할일도 안하면서 어련히 알아서 할 남의 일에는 오지랖부리고. 그게 통제하고 관리하는 권위자로서의 역할이라고 착각하고. 난 교수, 장군, 목사 이런 사람들만 그런줄 알았는데 그런 아재 많드만. 암튼 아재개그니 호감형이라느니 이런 이미지는 30대 초중반 기준인데 4-50대 부장님들이 "요새 아재가 핫하다며? 허허허" 하고 착각의 늪에서 댄스추고 계실까 저 페이지의 활동이 보기 참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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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작성일 16.8.4 

(아 티스토리 글 과거로 시간설정 불가능하게 한거 진짜 극혐이다)


모 대학교 학생들의 시위 방법에 대해서 기성 세대들이 보이는 껄쩍찌근한 반응을 보니 내 표정도 함께 껄쩍찌근하다. 외부인을 철저히 배제한, 학내 구성원에 의한 학내 문제에 대한 비폭력 시위. 80년대의 "넥타이 부대"에 대해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려는 사람은 그닥 없을텐데, 이 새로워 보이는 "모바일로 형성된 시위대"에는 뭐 그리 껄끄럽게 생각하는건지. 벌써부터 극단적 개인주의의 발로라는 둥, 공동체적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는둥... 명절날 조언만큼이나 기도 안차는 말들이 나오는 듯하다. 촛불집회류 가두집회나 광화문-시청 시위에는 거품물며 칭송하던 모 성향 언론계통 종사자들도 이 학교 시위를 다루는 거 보면 껄쩍지근하다. '젊은이들이 생각만 하던' 방식을 저렇게 구현할수 있는것 자체부터 대단한거 아닌가. 설령 그 모델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환상일지라도. 만약 시위 주체가 여대가 아닌 서울대였어도 이런 반응일까? 아니 만약 운동권이 주축이었으면 저렇게 할수 있었을까? 애초에 고대 같은 데서는 저런게 가능이나 할까? 머릿속에 의문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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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작성일 16.9.24




장면1  

<서울을 경험한 사람들은 왜 지방에 가서 살지 못하는가>를 주제로 페이스북에서

나 : 객관적으로 서울이 더 살기 좋은 곳이고, 자기 출신 지역 떠나라고 강요할수도 없다

상대 : 그렇다. 일자리만의 문제는 아닌것 같다. 그런 점을 지자체들이 고려해야할텐데 

나 : 지자체가 왜 그걸 고민하나 고민한다고 해결이 되는것도 아닌데. 지금도 동남권 신공항 낭비라고 반대하는거 못봤나. 단순한 효율성 논리로 지방에 자원배분하는 데에 반대하는 수도권 주민들의 목소리가 크고 다수이기 때문에 지자체에 재정 투입하는 것은 앞으로 더 가로막힐것 

상대 : 말씀하신대로 어차피 중앙에서 안할테니 지자체라도 해야한다는것. (중간에 좋은 일자리 제공에도 인구이탈이 극심한 지방 혁신도시 및 공공기관 이야기가 나옴) 인구유출의 원인이 일자리가 아니면 문화적인 측면에선 지자체가 할수 있는게 있지 않겠느냐 

나 :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영양실조 걸린 사람한테 메뉴개발하라고 하면 창조성이 발휘됩니까. 지자체는 그냥 그지역을 떠나지 않을 지방대학 및 해당연고 출신들로만 (혁신도시 공공기관 등의)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식으로 나갈수밖에 없습니다.

나 : 개인적으론 서울이 비교대상인것도 가혹합니다. 전세계에 서울만한 도시가 어딨습니까. 지방의 익명성 없고 끼리끼리 인맥문화에 스트레스 받는거 맞는데 그걸 해소하려면 외지인 유입을 늘리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지방에서 살겠다는 유인이 있어야겠죠. 신안 섬노예 같은것도 좁은 사회가 문제면 행정력 투입하거나 연륙교건설 같은게 실질적 해결방안으로 나오는거 아닙니까. 근데 지방이 문화적으로 낙후됐다고 단순히 비난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사회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지방에 갖추어야 할 사회적 기반구축이나 비용 얘기 나오면 입을 싹 닦아요" 






장면2 

<만약 수도권에 원전이 있어도 이번 지진에 대한 보도가 이런식이었을까요? 그런 의문이 드네요(영남권 거주자로 추측)> 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

상대 : 수도권하고 거긴 인구밀도가 다르죠 

나 : 동남권을 인구밀도 가지고 부족하다 할거면 막말로 이나라가 평양인민공화국이랑 뭐가 다릅니까? 

상대 : 아 동남권을 말한게 아니라 고리 월성 지역을 말한겁니다 

나 : 그렇다고 하시니 믿고 넘어갑니다만 김포나 파주 같은데에 원전 있었으면 해당 읍면 인구밀도만 세셨을 건가요? 여기서 말하는게 그런식인게 아니죠




장면3 

<해남군의 출산장려금 정책 출산율은 높아졌지만 전출로 인해 인구는 줄어 - 한경 기사> 에 대한 트위터 반응

상대 : 유출 무서워서 안된다는 논리 어디서 많이 본거 같지 않나? 사람에 투자하는거 아끼면 안된다 계속해야한다 새는 손해를 능가할 정도로 계속해야 성공하는게 사람에 대한 투자임. 우리도 그렇게 교육에 투자해서 고성장한것. 

나 : 정책 측면에서 구체적인 출산장려책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은 알겠다만 행위자 측면에서는 국가정책으로 시행한것도 아니고 지방재정 털어서 한건데 인구유출의 결과면 누가봐도 손해고 모럴해저드 사안인데 어떻게 계속하라는거냐

상대 : 모럴해저드는 거기 사용하는 단어가 아닌데? 그리고 지자체의 존속은 그 조직에게나 상위가치일뿐이다 

나 : 정책이 구체적 목표가 있을텐데 출산장려책에서 인구증가를 가지고 평가 안하면 대체 뭘로 평가해야한다는건지, 지역은 떠났지만 한국에서 살 사람한테 썼으니 괜찮다고? 그럼 한국정부는 자산 다 팔아서 세계빈국 국민들 지원해줘야겠네 

(중략)

상대 : 그리고 장기적으로 지방이 소멸하리라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결국 통폐합될텐데 투자가 다른데 새는거보다 사람을 향하는게 맞지 않느냐 

나 : 그래, 나도 회생불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근데 "니들은 어차피 이래하나 저래하나 못살아나니 어차피 서울로 떠날자들 돈이나 계속 쥐어줘라" 이게 할 말이냐? 

(그는 이에 대해 표현을 좀더 부드럽게 할수 있었겠다고 말했다. 
표현의 문제일뿐 가치체계나 발화의도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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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제에 대해 겪은 것들을 토대로 하면, 국고로 추진되는 지출규모는 대단히 높게 평가하면서(국고낭비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짐), 또 지자체의 재정수준은 대단히 건전한줄 앎. 물론 재정 낭비도 많은건 사실인데 그 본질은 못먹던시절 명절에 과식해서 설사하는 딱 그상황으로 이해하면 맞다. 그동안 <수도권, 진보>로 분류되는 분들의 이런 문제의 해결 방안에서 지자체가 변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며 핵심 해결주체가 되는거 숱하게 많이 들었다. 

나에게 이걸 지자체의 문제냐 정책의 대상이 될 사람의 문제냐 묻는다면 난 후자에도 강한 의구심이 든다. 어제겪은 세번째 사례가 진짜 기막힌데 종합하면 "이래하나 저래하나 너희 시골은 소멸할 확률이 높은데 출산장려정책은 고귀하니 중앙정부라 쓰고 수도권이라 읽을 주체에 출산장려책을 압박하기 위해선 계속 떠날 사람들에게 돈이나 쥐어주는걸 용기를 가지고 계속하라" 정도. 이게 정상 사고인가? 정상이다. 슬프게도 생각을 정리해서 모으면 이런 식으로 이어질 '논리적인' 사람이 적지 않다. 난 이런 논리나 사고방식이 극소수의 특별한 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방의 실태에 대한 무지야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문제는 또래 고학력층으로 가면 "중앙정책은 지역변수에서 가치중립적" 이라는 명제를 추호도 의심치 않고 굳게 믿는 자들이 절대다수에 가깝다. 진보정당및 그 정치세력들. 차라리 조직세가 작아서 신경을 못쓴다고 하면 모를까, 자기들이 수도권 일부지역과 공업지역에서만 그림이 나오는 이유를 계급의식의 문제니 하며 계급배반투표 따위에 몰두한 전통이 벌써 몇십년인지. 지금 인터넷상에서 등장하는 지방의 낙후된 문화, 집단주의적 문화,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을 넘어 나오는 미개-혐오 발언들이 그때 했던 착각과 전혀 관계가 없다 장담할수 있나? 하긴 진보정당만의 문제일까. 호남 털어내고 전국정당 간다고 신난 모 정당 지지자들이 설치던게 불과 몇달 전인데. 이게 시대흐름이고 내가 이상하고 모난 사람일 뿐인걸. 

지금껏 재원 마련은 알아서 하고 지자체가 해결하란 식의 "지방 문제는 지방에서 알아서 하라" 소리가 한두명이 한 소리가 아닌데 이제는 또 "지원금 받고 튀는사람 생겨도 나갈 사람에게 돈은 계속 줘야한다"는 얘기를 보게 되니 흥분안할수가 없었다. 그러게. 그동안 우리는 정부 왜 욕했나? 그저 내 노력이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했던게 아닌가? 당신이 살기 힘든 문제도 당신들 알아서 해야지, 왜 헬조선 운운하며 불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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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2016.07.02 01:26 from 책/발췌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문학동네, 2015


이 책을 살거라고 했을때 지인은 "그걸 네가 굳이 살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뭐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겠지만 매상 올려주고 책꽂이에 전시하려고 산다"고 했다. "그게 아이돌 팬이 음반사는거랑 뭐가 다름?ㅋ" 그러네. 별로 다른게 없네. 뭐 아무튼 요즘 무거운 책 읽을 기운이 안나서 샀다.

몇몇 부분은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거나 지인과 실제로 있었던 대화였어서, 아 내가 굳이 안움직여도 이런 글이 있구나 싶은 느낌을 주었다. 다만 거창한 제목에 비해 내용은 뒤로 갈수록 좀 부실하다는 느낌이.... 애초에 글 자체가 하나의 테마를 쥐고 쓴 글이라기보단 단상 조각글의 모음집이라 그런지. 



pp.23-24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중고등학교 대 지루하게 배우던 로크, 밀, 몽테스키외, 루소 등의 이름과 함께 나오는, 지금의 서구식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다는 그 개인주의 말이다. 무슨 시대착오적인 소리냐, 19세기 얘기를 21세기에 하고 있냐는 반문이 나올 것이다. 글로벌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악의 근원이라며 앞에 '포스트' 내지 '후기'가 붙은 길고 복잡한 대안을 얘기하는 이들을 볼때마다 떠오르는 의문은 이거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이전에 구자유주의라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 사회일까? 자본주의 후의 대안을 모색하기 전에 제대로 된 자본주의라도 해본적이 있나? 근대적 의미의 개인을 존중해본 경험 없이 탈근대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 아닐까?


pp.62-64

가장 두려운 것은 지나치게 빠른 평균수명 연장이다. 생물학적 수명과 사회학적 수명이 불일치하는 대책없는 고령화시대를 맞아 미래의 언젠가 무기력하게 방구석에서 종일 사극 재방송만 반복해서 보며 식구들에게 잔소리만 하게 되기 전에, 기력 있을때 주변정리하고 마지막 날까지 지구의 오지들을 걷는 여행을 떠나 길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계곡으로 떠나는 코끼리처럼. 이 얘기를 비장하게 했더니 마눌님이 가려면 혼자 가라고 그러시더라.

상상의 날개를 더 펴보자. 최후의 오지 여행을 하며 유서처럼 페이스북에 일기를 쓰는데 이게 또 어떻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중계방송 보듯 찾아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기사화되더니 팬덤 형성. 응원의 메시지에, 따라 걷는 순례자들이 속출하며 일이 커진다. 어느새 그런 관심에 중독되어 신경안쓴척 실제로는 엄청 신경쓴 사진과 감동적인 한마디를 페이스북에 올리며 세상의 반응을 즐기기에 이른 노인이 삶에 대한 의욕이 과다 충전된 나머지 '고독의 끝에서 생의 의지를 발견하다' 어쩌고 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리를 하며 도시로 복귀. 그동안 적은 글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여 돈도 벌고 멘토 행세하다가 선생님 선생님 하며 따르는 미모 여대생과 눈이 맞아 이태리 멋쟁이 노인 흉내를 내며 스키니진 입고 스카프 두르고 데이트 다니다가 민족정론 디스패치에 대서특필. '늙으면 죽어야지' '지랄도 풍년'이라는 어제의 팬들의 댓글 러시속에 이혼당하고 무일푼으로 전락. 그러고는 독거노인이 되어 <대장금> 재방송을 무한반복 시청하며 수명만 대책없이 연장해놓은 과학자와 의사들을 저주....


pp.153-154

좋은 단편을 찾아 읽는 것은 쇠약해진 '문학 근육' 단련에 좋은 듯하다. 문학적 감수성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법관에게는 더더욱 필요하다. 심리학이든 다른 어떤 학문이든 결국 인간의 여러 특성 중 범주화할수 있는 보편성을 추출해서 보여준다. 문학은 그보다 훨씬 풍부하게 인간의 개별성, 예외성, 비합리성을 체험하게 해준다. 후자에 대한 이해 내지 상상력 없이 이루어지는 재판은 침대 길이에 맞춰 인간의 신체를 절단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전락할 수 있다.


pp.251-252

(전략) 전통적으로 이 나라들과 대비되는 집단주의 문화권에 속해왔고 개발독재 시대에 압축성장을 이룩한 경험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세대가 아직도 많은 우리 사회는 여전히 다른 모델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식 개인주의는 우리 전통과 맞지 않는다, 나라마다 맞는 문화가 따로있다, 서양이 오히려 동양의 지혜를 배우려 한다는 등의 입장이다. 여기서 더 나가면 이런 논리가 등장한다.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분별한 자유를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나라가 잘살아야 개인도 잘사는 거다, 국익을 침해하고 국론 분열을 낳는 표현의 자유는 규제되어야한다, 옛날이 좋았다... (...) 현재 우리 사회의 근본 사회계약인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토대로 현대적 복지국가 원리를 조화시키고 있음에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내면화되지 못한 우리 사회에는 언제든 이런 시대착오적인 논리가 등장할 위험이 있다.


pp.268-269

감히 가정하는 것조차 죄스럽고 조심스러워서 망설여지는 이야기지만, 세월호 사고 초기에 선장이나 해경 현장 지휘자가 모든 승객에게 당장 구명조끼 입고 바다로 뛰어들라고 명령했다면 어땠을까. 분명히 많은 생명을 구할수 있었겠지만 그 경우에도 일부의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은 있다.

이 경우 우리 사회가 최선의 결단을 했다며 격려해주었을 것이라고 확신할수 있을까. 너무 성급한 조치였다, 구조선과 더 유기적으로 협조했어야 한다, 구명정을 차례로 내렸어야 한다 같은 비난이 난무하지는 않았을까.

우리사회는 '결과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물론 이런 가정이 무의미할 정도로 현실에서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자들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런 문화가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책임자를 결정장애와 도피심리로 몰어넣는 측면이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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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일각에서 꾸준히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왔고 이 때문에 한자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찬반론이 있었는데, 현재는 철회되었지만 작년 한때 교육부는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이 방침은 그다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가독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한자와 한글이 섞여있는 텍스트는 한글로만 되어있는 텍스트에 비해 읽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이는 학습자의 학습의욕을 저하시킬 개연성이 있다. 어느 정도 독해속도가 형성된 성인도 법학 관련 서적 등 한자가 섞인 텍스트를 읽으면 급격하게 읽는 속도가 떨어지게 되는데, 초등학생에게 이런 국어교과서를 읽게 한다는 것은 마치 정철의 <관동별곡>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들게 할 것이다. 


  두 번째로 학생의 학습부담을 과중시키는 비교육적인 처사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우 한자를 혼용해서 쓰는 사회이므로 원활한 언어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2천자 가량의 상용한자를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학습부담을 감안하여 어린이들이 접하는 교과서나 잡지 등의 매체는 소리나는 대로 읽는 히라가나로만 쓰여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와 반대로 한글 전용 사회여서 성인들은 한글을 전용하면서도, 막 학습을 시작하는 단계인 초등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에게 한자를 병기한 문장으로 학습하게 한다면, 이런 정책은 비교육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의 두 근거는 한자병기라는 구체적 방법에서 비롯되는 문제점과 비판점이다. 일단 교육부는 현재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침에 대해서는 철회하고, 학습자에게 한자를 친숙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검토중인 상황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한자교육 강화 주장이 나오는 것에는 "한자를 아는 것이 적어도 한국어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한자교육이 강화되어야 하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한자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의 판단으로 귀결된다.




  과거 한문/한자의 구분없이 필수교육화 해야한다고 필요성을 강조했던 질낮은 주장들과 달리, 최근 추진되는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의 한자 병기와 같은 한자교육 문제를 다룬 주장은 ‘한국어 하에서의 한자’로 범위를 한정하여 한자교육을 국어교육의 범위에 포함시키겠다는 의도로써 한층 진일보한 주장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한자의 모양과 뜻을 아는 것이 한국어능력/언어능력과 깊은 관계가 있는지, 관계가 있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우선순위에 놓여야 하는 것인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한자와 한국어의 관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어휘능력과 그 응용능력에 있다. 흔히 나오는 한국어 어휘의 70%가 한자어이고,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한자의 뜻을 앎으로써 생소한 한자어에 대한 이해가 용이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한국어 어휘 중 한자어라고 지칭되는 것의 대부분은 서구 근대의 개념어를 번역하는데 쓰인 것들이다. 이런 단어들의 뜻은 개별 한자의 뜻을 안다고 해서 이해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수학, 생물학과 같은 단순한 경우에는 수(數)나 생물(生物)의 뜻을 안다면 그 파악이 한층 수월하겠지만, 이정도의 단순한 규칙은 현행 수준의 한국어교육으로도 대다수가 알 수 있다. 추상적(抽象的), 구체적(具體的)과 같은 단어 또한 한자를 알게 한다고 그 단어의 이해가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한글로 자주 쓰는 단어이기 때문에 학습자들이 충분히 그 뜻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회(社會), 자연(自然), 자유(自由)와 같은 경우에는 한자의 뜻 탐구에 함몰되면 오히려 바른 이해를 해치게 된다. 이들은 각각 society, nature, liberty의 번역어로 선택된 것들인데 모일 사, 모일 회, 스스로 자, 그러할 연 등의 한자를 안다고 단어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자연이란 단어는 nature의 번역어로 선택되기 전부터 도가에서 사용된 개념이었는데 한자의 뜻으로 유추하여 nature의 번역어 자연을 혼동해서 이해하면 많은 오류가 발생한다. 근대 일본의 자연주의 문학은 이런 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이며[각주:1], 이런 문제는 오히려 한자에서 벗어나 영어에 친숙해진 지금 세대는 빠지지 않는 함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앞에서 언급한 한자를 통한 어휘 응용방법이 해당되지 않는 단어들이 오히려 학습자의 언어능력이나 지적세계를 구성하는 주요한 어휘라는 것이 한자교육 강화론이 갖는 맹점이다. 즉 한자를 아는 것이 도움만 되는 것은 아니고 방해가 될 수 있으며, 한자교육 강화론에서 주장하는 어휘습득에 도움이 되는 응용방법은 모든 단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선택적으로 기능하기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고, 그 해당하는 단어의 범위가 지적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영역이 아닌 부수적인 영역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한국어 능력을 넘어선 국민교육 차원의 문제이다. 의무교육 차원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느냐 선택 혹은 교양과목으로 지정하느냐의 차이는 그 영역의 효용성과 효율성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분명 한자를 아는 것이 반강제적으로 요구되는 영역은 존재한다. 불문학을 전공하는 자에게 불어능력이 필요하듯이 국문학, 국사학, 중문학, 한문학 등의 학습을 위해서는 한자능력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유로 한자를 전 국민에게 필수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세상에 배워서 나쁠 학문은 없다. 그러므로 한자를 일반교육에 필수로 넣기 위해서는 단순히 배워서 좋다고 해서는 곤란하고, 일반인 학습자를 기준으로 해당 과목의 학습에 투입될 시간과 노력, 그 효용과 효율을 따져야 함이 당연하다. 단순히 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의무교육 편입의 필요성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내 생각엔 한자의 효용에 있어 필수적인 분야는 어휘를 가지고 조합하며 놀 수준이 되는 고도의 한국어능력을 갖춘, 한국어 문학을 다루는 이들만이 해당될 뿐이고, 각종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적 지식을 얻는 데에 필요한 것은 한자보다는 영어이다. 심지어는 한자교육 강화의 주된 근거로 제시되는 한자어조차도, 개별 한자의 뜻을 탐구하는 것보다 그 단어에 대응하는 외국어 단어를 대응시키고 그 단어의 사용례를 확인하는 방법이 적절한 경우가 많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서구에서 만들어진 단어를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니 일반인에게 있어 한자는 선택적 교양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효율성에 있어서 타당한 귀결일 것이다.


  한자는 다른 외국어에 비해서는 한국어와 맺는 뿌리가 깊고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중요성은 독보적으로 특별한 게 아니고 위상은 과대평가되었다.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그 어원에 해당되는 라틴어 전통의 규칙을 아는 것은 하나의 응용방법이나 배경지식의 확장방법은 될 수 있으나 그것이 영어를 익히는 데 있어 필수 과정일 필요는 없듯이, 한국어에서 한자가 차지하는 위상도 이와 같다 할 것이다. 특히 (일본식) 한자어가 근대 서구 학문을 수입하면서 번역의 도구로서 기능하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앞서 언급한대로 한자를 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해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반인의 개념어 이해는 해당 개념어를 구성하는 한자에 기댄 어휘능력이 아니라 단어가 쓰이는 맥락을 파악하는 본질적인 논리력, 추론능력에 우선순위가 있어야 하고 전공자 이상이라면 더더욱 번역의 도구인 한자보다는 개념의 발상지인 유럽 언어에서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다만 완전히 한자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므로 한자 학습의 흥미를 제공하는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시험평가요소에서 제외하고 학습자의 참고를 위해 일반사회 과목에서 사회과부도로 지도책을 제공하듯이 국어과목의 일부로 별책이나 부록 정도로 수록하여 어휘 응용의 흥미를 유도하는 것은 검토할 만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한자는 개인의 필요에 의해 학습되는, 제2외국어와 같은 교양과목의 영역에 있어야 함이 마땅하다.



  1. 각종 서구 개념어들의 번역과정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해프닝과 태생적 문제점을 다룬 책으로 야나부 아키라의 <번역어 성립사정>이 있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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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과거 수준은 항상 과대평가되었으며, 우리의 문제개선과 변화 속도는 항상 과소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68738_19482.html "1997년"에 보도된 기사다. 기사의 마무리를 읽어보시길. 이게 20년 전 한국의 모습이다. 


흑산도에서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서 염전노예에 이어 또 화제가 되고있다. 신안드레아스 드립 등 해당 지역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오고, 지역드립 치지 말라는 얘기도 반대편에선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특수성과 전근대에 머무른 정체현상이 실체가 있기 때문에 성급한 일반화라는 소리도 못하겠다.


섬이 그렇다. 친구가 친척이고 친척이 처가가 된다. 내또래 춘천 진주 원주 순천 등 25만-30만 되는 중소도시에서 살아온(나름 도에서 상위 위계에 속하는 도시인데도) 자들이 상경해서 만나서 서울이 좋은 점에 대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거긴 두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이라 답답하다'이다. 중소도시도 그러한데 군면 단위는 말할것도 없다. 그런데 거기에 섬을 끼얹으면?


밀양에서 일어난 사건 피해자는 밀양의 지역주민들에게 지역 이미지를 떨어뜨렸다고 온갖 욕을 먹었고 그들은 매장시도도 했다. 그것도 2004년 일이다. 밀양은 KTX도 다니는 동네다. 도가니의 배경이 된 광주의 일도 그렇고, 결국 일반화를 하려면 지방 전체를 일반화해야할 것이다.


한편 서울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으면 지역드립이 나왓을까? 란 반문이 있다. 나름 일리가 없는건 아니다. 서울이 그랬으면 지역드립보단 헬조선 드립이 나왔겠지. 그런데 사건이 있고선 조직적 은폐가 적극적으로 발생하고, 그것이 굉장히 우발적이거나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일상적인 수준에서 약간 더 나아간게 아닌가 의심될수 있는 경우라면 그 지역의 특수한 문제라고 생각해도 할말없다.


그럼 서울이나 대도시는 그런 사건이 없었나? 있었을 것이다. 다만 과거에. 산업화 시대에 서울로 수도권으로 떠난 이들은 그들의 과거를 잊고, 그들의 자녀가 모르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그들은 헬조선의 현재를 구성하는 서울을 기준으로 하여 살아간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는지. 미개하다고 난리치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 왜 지금 서울은 이런데 지방은 이러냐는 우문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서울이나 지방이나 거기서 거기였던 시절이었다. 30년 40년간 한쪽은 몰빵의 기운으로 앞으로 내달려 세계적인 세계도시가 된 것이고, 한쪽은 계속 정체되었다. 수백년간 태생이 문명이었고 태생이 미개한 것이 아니다. 지역간 인식문화의 차이가 가시적으로 보이는게 100년은 된거라면 모르겠는데 고작 한세대만에 빠르게 근대화하면서 벌어진 차이로 나타난 것을, 그 변화와 차이의 주역이면서도 자랑스럽게 잊은 자들의 자녀들이 준엄하게 성토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수십년간 변하지 않은 것, 그들의 책임 맞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터전도 바로 그수준에서 변한 곳이다. 그리고 그 변함의 공이 오롯이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의 앞세대가 태생적으로 잘나서인 것도 아니다. 


나도 마음같아서는 저기 다 소개령 내리고 육지로 이주시켜 찢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들이 가지고 있을 텃세와 같은 사회적 자본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고양시 행신동 옆에 능곡 화전이라고 있다. 행신동이 1세대 신도시로 개발되기 전부터 산 여기 사람들, 생각하는거나 말하는거 보면 무안 사람들이랑 다를바가 없지만, 그런 시골스러움이 잘 감춰진 형태로 살고 있다. 또 신안 출생이지만 육지에 터를 잡은 사람들도 잘 살고 있다. 개발이라는게 그렇고, 섬의 특수성이라는게 그렇다.


그동네가 문제인것 아니냐는 얘기에 전라도 욕하는 걸로 발전할 가능성을 우려해 일반화하지 말것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 그동네의 문제 맞다고 생각한다. 내가 들은게 있고 본게 있다. 그사람들이 어떻게 결혼했고 누가 누구와 무슨 관계인지 같은 구조들. 네가 뭘 아냐고 물으면 아버지 고향을 대겠다. 그리고 섬의 문제를 넘어 더 나아가면 정체된 지방의 문제라고도 생각한다. 그럼 또 니가 목포사람이니 경상도 밀양을 끌어들여 물타기 하는게 아니냐고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면 난 어머니 고향을 대겠다.


다시 돌아가, 2010년대 서울이 기준이라는게 어떤 측면에서는 가혹할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 근래 들어 발견되는 일에 대한 순수한 경악이, 그 순수함이 난 껄끄럽다. 자신들의 과거를 모르는듯 아예 없었다는 듯 생각하는 대도시 기성세대의 순수함이 껄그럽고, 같은 나라이지만 이렇게나 차이가 날수 있고 차이가 있다는걸 상상조차 못하는 청년층의 순수함이 껄그럽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절대 지금 서울 수준 이대로 만족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현실성의 문제이고 과거를 기억하는 문제를 얘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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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에서 범행의 본질이 여성혐오에 있는가 다른 것에 있는가란 질문은 무의미하다. 두가지 이유가 나올수 있는데, 본질이 여성혐오라는게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라는 주장이 첫번째. 개별 사건의 성격이 그것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현상의 성격을 규정지을수는 없기 때문에가 두번째.

나는 첫번째는 제쳐두고 두번째 이유로 그 질문이 별로 좋은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수사기관을 제치고 그것을 갑론을박하며 따지고 앉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광우병 괴담이 괴담이냐 아니냐는 당시 촛불집회의 성격과 의미를 규정하는데 영향을 줄 수 없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잌을 먹으면 된다고 말했는지 진위여부는 당시 사회현상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못한다.

추모를 누가 주도했는가. 혹은 어떤 불순 집단이 그 행동에 동참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도 무의미한 질문이다.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공감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이정도의 참여가 발생한 것이고, 그들이 이걸 자신들의 성과라고 여기고 자화자찬한다고 해도 시민들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사한 메시지의 반응과 행동에 대해 일부의 불순의도를 집어내겠다는, 순수한 행위와 불순행위를 가려내서 판단해야한다는 생각은 오만한 시도가 되고, 불순한 그들에게 이용당하거나 했다는 식의 해석이 되어 불특정 다수에 대한 폭력이 될수 있다.

이런식으로 문제제기가 되었으면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할지를 생각하고 얘기하면 된다. 그나저나 내가 격한 반응을 본게 아니고 담담한 무풍지대에서 지내고 있어서 이런 싸한 글을 쓸수 있는것 같기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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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체적인 역사인식이나 역사교육 문제에 대해 이제는 별로 하고싶은 말이 없다.

안중근을 아느냐 모르느냐 같은 문제에서 그것도 모르냐고 질책하는 사람부터 그건 결과론이고 근본적으로 역사 취급을 잘했어야한다는둥 꿋꿋이 얘기하지만 이런 분들도 저런 분들도 다른 영역에서는 역사적 접근을 못한다.

정치 사회 문제에서 논객이란 사람들도 오피니언 리더라는 사람들도 5년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만 생각하면 바로 반박될 말을 거리낌없이 내놓고 많은 이들이 이런 주장에 동조한다.

나는 한동안 왜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운 과거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아니 없는 일처럼 뻔뻔하게 생각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면 그때랑 지금은 뭐가 다른지, 그때와 지금이 비슷하다면 어떤점이 비슷하고 지금 우리는 어떠해야 할것인지에 대한 (공유할만한) 생각이 없다. 아예 그런 개념의 존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나는 이게 양심, 일관성 같은 윤리의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떳떳하고 당연하다. 이건 무지와 무감각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양적인 접근으로 해결해서 이 문제를 '잡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시간표에 역사 시수를 더 늘린다면 안중근을 아는 사람은 조금 늘수도 있다. 사학과에 돈 더 대주면 사학과가 사라지진 않고 우러러볼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그게 사회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이 다들 기억하려 하질 않는데 무엇을 얼마나 가르치고 알아야 하는지 논하는게 무슨 소용일지. 그 문제는 다음 문제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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