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발췌'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16.07.02 개인주의자 선언
  2. 2015.06.08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3. 2015.03.10 칼 포퍼
  4. 2015.01.21 번역과 일본의 근대
  5. 2014.10.20 순수의 시대
  6. 2014.09.27 인간 실격
  7. 2014.09.21 일본의 영토분쟁
  8. 2014.01.01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9. 2013.10.09 고민하는 힘
  10. 2013.09.20 보수의 유언

개인주의자 선언

2016.07.02 01:26 from 책/발췌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문학동네, 2015


이 책을 살거라고 했을때 지인은 "그걸 네가 굳이 살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뭐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겠지만 매상 올려주고 책꽂이에 전시하려고 산다"고 했다. "그게 아이돌 팬이 음반사는거랑 뭐가 다름?ㅋ" 그러네. 별로 다른게 없네. 뭐 아무튼 요즘 무거운 책 읽을 기운이 안나서 샀다.

몇몇 부분은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거나 지인과 실제로 있었던 대화였어서, 아 내가 굳이 안움직여도 이런 글이 있구나 싶은 느낌을 주었다. 다만 거창한 제목에 비해 내용은 뒤로 갈수록 좀 부실하다는 느낌이.... 애초에 글 자체가 하나의 테마를 쥐고 쓴 글이라기보단 단상 조각글의 모음집이라 그런지. 



pp.23-24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중고등학교 대 지루하게 배우던 로크, 밀, 몽테스키외, 루소 등의 이름과 함께 나오는, 지금의 서구식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다는 그 개인주의 말이다. 무슨 시대착오적인 소리냐, 19세기 얘기를 21세기에 하고 있냐는 반문이 나올 것이다. 글로벌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악의 근원이라며 앞에 '포스트' 내지 '후기'가 붙은 길고 복잡한 대안을 얘기하는 이들을 볼때마다 떠오르는 의문은 이거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이전에 구자유주의라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 사회일까? 자본주의 후의 대안을 모색하기 전에 제대로 된 자본주의라도 해본적이 있나? 근대적 의미의 개인을 존중해본 경험 없이 탈근대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 아닐까?


pp.62-64

가장 두려운 것은 지나치게 빠른 평균수명 연장이다. 생물학적 수명과 사회학적 수명이 불일치하는 대책없는 고령화시대를 맞아 미래의 언젠가 무기력하게 방구석에서 종일 사극 재방송만 반복해서 보며 식구들에게 잔소리만 하게 되기 전에, 기력 있을때 주변정리하고 마지막 날까지 지구의 오지들을 걷는 여행을 떠나 길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계곡으로 떠나는 코끼리처럼. 이 얘기를 비장하게 했더니 마눌님이 가려면 혼자 가라고 그러시더라.

상상의 날개를 더 펴보자. 최후의 오지 여행을 하며 유서처럼 페이스북에 일기를 쓰는데 이게 또 어떻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중계방송 보듯 찾아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기사화되더니 팬덤 형성. 응원의 메시지에, 따라 걷는 순례자들이 속출하며 일이 커진다. 어느새 그런 관심에 중독되어 신경안쓴척 실제로는 엄청 신경쓴 사진과 감동적인 한마디를 페이스북에 올리며 세상의 반응을 즐기기에 이른 노인이 삶에 대한 의욕이 과다 충전된 나머지 '고독의 끝에서 생의 의지를 발견하다' 어쩌고 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리를 하며 도시로 복귀. 그동안 적은 글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여 돈도 벌고 멘토 행세하다가 선생님 선생님 하며 따르는 미모 여대생과 눈이 맞아 이태리 멋쟁이 노인 흉내를 내며 스키니진 입고 스카프 두르고 데이트 다니다가 민족정론 디스패치에 대서특필. '늙으면 죽어야지' '지랄도 풍년'이라는 어제의 팬들의 댓글 러시속에 이혼당하고 무일푼으로 전락. 그러고는 독거노인이 되어 <대장금> 재방송을 무한반복 시청하며 수명만 대책없이 연장해놓은 과학자와 의사들을 저주....


pp.153-154

좋은 단편을 찾아 읽는 것은 쇠약해진 '문학 근육' 단련에 좋은 듯하다. 문학적 감수성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법관에게는 더더욱 필요하다. 심리학이든 다른 어떤 학문이든 결국 인간의 여러 특성 중 범주화할수 있는 보편성을 추출해서 보여준다. 문학은 그보다 훨씬 풍부하게 인간의 개별성, 예외성, 비합리성을 체험하게 해준다. 후자에 대한 이해 내지 상상력 없이 이루어지는 재판은 침대 길이에 맞춰 인간의 신체를 절단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전락할 수 있다.


pp.251-252

(전략) 전통적으로 이 나라들과 대비되는 집단주의 문화권에 속해왔고 개발독재 시대에 압축성장을 이룩한 경험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세대가 아직도 많은 우리 사회는 여전히 다른 모델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식 개인주의는 우리 전통과 맞지 않는다, 나라마다 맞는 문화가 따로있다, 서양이 오히려 동양의 지혜를 배우려 한다는 등의 입장이다. 여기서 더 나가면 이런 논리가 등장한다.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분별한 자유를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나라가 잘살아야 개인도 잘사는 거다, 국익을 침해하고 국론 분열을 낳는 표현의 자유는 규제되어야한다, 옛날이 좋았다... (...) 현재 우리 사회의 근본 사회계약인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토대로 현대적 복지국가 원리를 조화시키고 있음에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내면화되지 못한 우리 사회에는 언제든 이런 시대착오적인 논리가 등장할 위험이 있다.


pp.268-269

감히 가정하는 것조차 죄스럽고 조심스러워서 망설여지는 이야기지만, 세월호 사고 초기에 선장이나 해경 현장 지휘자가 모든 승객에게 당장 구명조끼 입고 바다로 뛰어들라고 명령했다면 어땠을까. 분명히 많은 생명을 구할수 있었겠지만 그 경우에도 일부의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은 있다.

이 경우 우리 사회가 최선의 결단을 했다며 격려해주었을 것이라고 확신할수 있을까. 너무 성급한 조치였다, 구조선과 더 유기적으로 협조했어야 한다, 구명정을 차례로 내렸어야 한다 같은 비난이 난무하지는 않았을까.

우리사회는 '결과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물론 이런 가정이 무의미할 정도로 현실에서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자들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런 문화가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책임자를 결정장애와 도피심리로 몰어넣는 측면이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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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저자
정관용 지음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 2009-11-2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양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서 소통의 중재자로 살아온 정관용...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정관용 지음, 2009, 위즈덤하우스



p.15


(....)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자아갈등'이 아닐까 한다. 명백한 사실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서로 다르게 알고 있다든가, 서로 간의 가치관이 달라서 오는 갈등은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든가, 서로 간에 일정한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그조차도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아갈등, 즉 자존심의 싸움이 아니던가. 나는 그것이 결국엔 '카타르시스 커뮤니케이션(내가 많이 쓰긴 하지만 학문적으로 정립된 용어는 아니다)'에 머물고 만다고 생각한다. 즉, 자신과 자신의 진영만을 만족시키는 거꾸로의 일방적 소통일 뿐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상대에 대한 적대감으로까지 연결된다면 토론의 정당성은 사라지고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 손석희 당시 성신여대 교수의 추천사 中




pp. 130-132


소설가 김훈 선생은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의 언어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기 때문에 언어가 소통이 아니라 단절로 이르게 된다. 이것은 지배적 언론이나 담론들이 당파성에 매몰돼 그것을 정의, 신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언어의 모습은 돌처럼 굳어지고 완강해 무기를 닮아가고 있다." 또 "우리 사회, 우리 젊은이들은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정서적, 이념적으로 인식한다.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사실일 아니라 '내편이냐 아니냐', '내게 유리하냐 아니냐'로 인식한다"라고도 했다.


(...)


김훈 선생은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위에 정의를 세울 수는 있어도 정의 위에 사실을 세울 도리는 없다. 나는 신념이 가득 찬 자들보다는 의심이 가득 찬자들을 신뢰한다."





pp. 136-138


우리 국민들에게 "당신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합니까, 진보라고 생각합니까?" 라고 물으면 대답은 아래 <그림1>과 같은 정상분포곡선을 그린다. 소위 단봉낙타형이다.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고, 보수, 진보의 양 극단으로 갈수록 소수가 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찬반이 대립되는 구체적 현실 쟁점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를 물으면 <그림2>와 같은 응답이 나온다. 중간적 입장보다는 보수, 진보 양쪽으로 치우친 입장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소위 쌍봉낙타형을 나타낸다.


자기 스스로 중도적 성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구체적 현실 쟁점에 대해서는 양쪽으로 치우친 입장을 갖는 현상, 이것을 김호기 교수는 이중성이라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단봉낙타형을 나타내는 주관적 이념 성향이 일종의 착시현상일 수 있다고 했다. 정말로 착시현상인지 아닌지는 좀 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이중적 이념구도를 나타낸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국민 여론의 양극화 현상은 분명히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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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

2015.03.10 19:52 from 책/발췌


칼 포퍼, 필 바빈 지음, 이화여대 통역번역연구소 옮김, 아산정책연구원, 2015




칼 포퍼

저자
필 파빈 지음
출판사
아산정책연구원 | 2015-01-3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이 책에서는 우선 포퍼의 생애와 연구에 대해 전반적으로 짚어본다...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p.63-65

포퍼는 과학에 대한 이런 귀존의 이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가 제시한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그는 귀납법의 철학적 논리적 토대, 즉 "어떤 관찰 명제가 사실이라면 그것에서 추론한 이론 역시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라는 논리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포퍼는 "아무리 반복되는 현상일지라도 관찰에서 추론한 일반화가 진실임을 보증할 수 있는 규칙은 어디에도 없다."라고 반박한다. 

(...)

이 주장으로 포퍼는 급진적 결론에 도달했다. 구체적인 사건이나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자연법칙을 도출해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오랜 견해가 잘못됐고 소용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귀납주의의 문제가 '어떤 이론도 절대 과학적으로 증명될수 없으며 오직 반증될 뿐'임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백조는 하얗다'라는 명제는 아무리 많은 하얀 백조를 관찰해도 증명될 수 없으며, 그저 한 마리의 하얗지 않은 백조를 관찰함으로써 확실히 반증될 수 있다. '그 요새는 난공불락이다'라는 주장은 침입이 실패한 경우를 아무리 많이 끌어와도 증명될 수 없다. 단 한번의 침입으로 확실히 반증될 뿐이다. 아즈텍 사람들이 믿었듯 '태양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태양이 뜨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론은 제물을 제대로 바친 수많은 예로는 증명될 수 없으며, '제물을 바치지 않았는데도 태양이 뜬다'는 사실로 확실히 반증된다. (...) 이 반증된 명제는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포퍼에게 이론의 반증은 축복하고 높이 평가해야 할 과학적 지식의 진정한 진보다. 어떤 이론이 진실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무엇이 진실인가, 혹은 진실일수 있는가'를 향한 중요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반면 쓸모없는 이론은 반증이 불가능한 이론들이다. (후략)



pp.78-79

(전략) 사회과학적 연구 역시, 시작은 사회 정치문제를 파악하는 것이며, 추측과 반증의 시행착오를 거쳐 기존의 이론과 관행, 타인들이 제시하는 가설적 해결 방법에서 오류를 제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역사의 향후 진로에 대해 장기적이고 보편적인 예언을 하는 것은 사회 이론의 역할이 아니다.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문제를 타인이 비판하고 검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 이미 시행 중인 해결책, 그리고 사회 정치제도와 사회적 관행이 이미 포함된 방책들이 과연 옳은가를 확인하는 것이 사회 이론의 역할이다. (...)

포퍼는 이처럼 물리학과 사회과학의 특징은 '방법의 통일'이라고 주장했다. 즉, "모든 이론적 과학, 혹은 보편적 과학은 그것이 자연과학이건 사회과학이건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기존의 사상, 이론, 관행을 비판적 합리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구성원들이 기존 문제에 대해 반증 가능한 가설을 추론하고 반증하는 시행착오 과정은 어디에서나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와 사회 문제에 관한 이론들은 자연과학의 문제에 관한 이론들처럼 반증할 수 있어야 한다. 포퍼는 또한 물리학 영역에서 과학적 이론과 비과학적 이론을 구분하는 제대로 된 기준이 반증 가능성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과학을 위시한 다른 분야에서도 반증 가능성은 진짜와 사이비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포퍼는 과학적이라고 칭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많은 이론들의 취약점이나 비과학적인 특징을 밝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론의 세가지 예가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다. 포퍼는 이 이론들의 문제가 정확한 반증이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고 봤다. 반론이 불가능한 것이다. 포퍼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자, 프로이트주의자, 아들러주의자 모두 각 이론의 해석하는 힘에 매료된 것이다. 실제로 "이 이론들은 자신들의 영역 내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p.79

(전략) 포퍼는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같은 개인의 이론이 거짓임이 증명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과학적 이론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뉴턴의 만유인력과 역학이론도 아인슈타인에 의해 반증됐다. 하지만 그런 아인슈타인조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나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혹은 마르크스주의는 반증하지 못했을 것이다.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하에서는 환자가 한두가지 억압도니 충동의 조합으로는 자신의 행동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느껴도, 그들은 그저 '부인'하고 있으므로 치료가 더 필요한 사람이라고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계급 투쟁이나 공산주의의 필연적 탄생을 거부한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은 그저 '허위의식'을 앓고 있는 것이므로, 마르크스주의 독단적 신념을 더 교육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질 뿐이다.



pp.93-94

하지만 포퍼는 이미 많은 독자들이 눈치챘을지도 모르는 지점을 지적한다. 과학적 방법에 대한 역사주의자들[각주:1]의 비판은 사실 포퍼가 그렇게 무너뜨리고자 했던 전통적, 귀납주의적 과학관에 대한 비판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사회 이론의 소위 '과학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결론적으로 포퍼는, (물리학의 방법을 사회과학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 역사주의자들이 사실은 과학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바람에 "과학적 방법을 사회 연구에 적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천착하고 있다고 봤다. 포퍼가 보기에 역사주의자들의 문제는 귀납적 모델이 사회 연구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 핵심에서 잘못된 결론을 끌어냈고, 잘못된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귀납적 방법이 물리적 자연적 현상을 연구하는 데는 분명 적합하지만 사회적 현상을 연구하는 데는 부적합하다는 것이 역사주의자들의 주장이었음을 기억하라. 논리실증주의자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주제별, 방법론별로 학문 분야를 분리하려 했던 것이고, 이에 포퍼는 강경하게 반대했다. 역사주의자들은 귀납적 방법이 물리학에서 차지하는 절대 우위를 의심의 여지없이 인정했다. 자연과학자들은 그들 본분의 일을 하고, 사회과학자들은 그들 본분의 일을 하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에 포퍼는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다. 귀납적 모델이 사회 연구에 적합치 않다고 포퍼가 주장한 이유는 귀납적 모델이 그 무엇을 연구하기에도 적절치 않기 때문이었다. '사회과학자들은 귀납적 모델을 폐기해야 한다'는 역사주의자들의 주장에 포퍼가 동의하기는 했지만, 역사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해도 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더 일관성 있는 개념의 과학과 과학적 방법이 등장해야 한다는 점에서였다.




  1. 칼 포퍼가 말하는 역사주의적 전통을 지닌 이들로는 플라톤, 헤겔, 루소, 콩트 등을 들고 있으나, 이 대목에서는 '사회과학 영역에 적용할 과학적 방법'의 문제에서의 하버마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등 현대의 비판 이론가들의 논리가 주 타겟이 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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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일본의 근대

2015.01.21 03:50 from 책/발췌




번역과 일본의 근대, 가토 슈이치/마루야마 마사오 지음, 임성모 옮김, 2000, 이산




pp. 18-20

마루야마 : 일본은 운이 좋았다고 하는 해석은 국제정치를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식입니다. 동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가 본격화 되기 직전에 세계는 서로 전쟁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특히 크림전쟁과 남북전쟁이 결정적이죠. 크림전쟁은 영국·프랑스와 러시아의 차르가 거국적으로 일으킨 대대적인 전쟁이었고 남북전쟁의 사상자도 엄청났습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할 처지가 못되었던 겁니다. 그 두가지 사정 때문에 일본에 대한 압력이 급격히 감소했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겠죠.



p. 50

마루야마 : (전략) 모리는 모리대로 <일본의 교육>이라는 유명한 책을 출간했습니다. Series of Letters, 곧 그의 서간문 시리즈인데, 뉴욕 애플턴 출판사에서 1873년 1월에 나왔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모리는 '영어를 국어로 삼자'고 하는 유명한 주장을 폈지요. 야마토 말에는 추상어가 없기 때문에, 야마토 말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서양문명을 일본 것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차라리 영어를 국어로 채용하자는 주장이지요. 거기에 대한 반박이 이 바바의 서문인 겁니다. 이 글은 무척 재미있습니다. 만약 일본에서 영어를 채용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상류계급과 하층계급 사이에 말이 전혀 통하지 않게 되고 말 것이다라는 의견을 바바는 개진하고 있습니다.


가토 : 그거 대단하군요. 지금도 인도가 안고 있는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계급간의 깊은 골이지요. 그 첫번째 요인은 경제적 격차이고, 두번째 요인이 언어입니다.


마루야마 : 굉장하지요. 바바는 인도의 예를 적확하게 증거로 삼아야 상층이든 하층이든 국민은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pp. 53-55

마루야마 : (전략) 야스오카 씨(安岡 章太郎, 야스오카 쇼타로)의 견해입니다만, 번역으로 읽는 쪽이 더 급진적이라는 거에요.(웃음) 인텔리의 급진주의는, 그의 표현으로는 자유민권이나 사회주의 관련 책자를 번역본으로 읽었던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 지적이 틀렸다고만 할수 없는 예가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의 <사회정학(Social Statics)>이지요. 마쓰시마 쓰요시가 <사회평권론>이라 번역했는데, 이 번역은 좀 이상합니다. statics란 표현은 dynamics와 반대되는 말로서 '정태학;이라는 의미인데 '평권론'이라고 번역해 놓으면 마치 '평등주의'인양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래서 스펜서의 Social Statics는 자유민권운동가의 성전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것은 제목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와 관계가 깊습니다. 스펜서는 나중에는 더 보수적이 됩니다만 그 당시에도 결코 급진적이진 않았습니다. 스펜서의 사회학은 모두 균형론이기 때문에 탈콧 파슨스(Talcott Parsons, 1907~1979)의 선구자라고 할수 있는 인물이죠. 그런데도 제목을 '평권론'이라고 번역해 놓으니 성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번역이라는 데는 생각지도 못한 효과가 있는 거지요.




pp. 82-84

마루야마 : 그런데 앞서 말했던 야노 후미오(矢野文雄)의 <역서독법>으로 되돌아가 보면, 그 가운데서 책의 분류가 아주 중요하다고 하면서, 동양의 분류는 조잡하다고 말합니다. 서양의 도서관 분류처럼 좀더 치밀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지요. 

(중략)


가토 : 그건 어느정도 보편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중략)

첫번째는 원인론적인 관계, 곧 인과율입니다. 예를 들어서 번역 문장에서는 '무엇 때문에' '왜냐하면' 식의 말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대개 일본에서는 적어도 메이지 이전의 문장에서는 because에 해당하는 말이 그리 자주 나오질 않습니다. 

(중략)

두번째는 지금 이야기한 '분류'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류를 할 것인가? 일본에서는 가사(歌)를 분류하든 시를 분류하든 예전부터 나열된 분류 항목의 내용이 겹쳐 있어요. 상호배타적이지 않죠. 글너 분류 방식은 서양인이 싫어하는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분류에서 보자면 이상한 겁니다. (중략) 그러한 엄밀한 분류 원칙과 상반되는 것이 어떤 식으로 처리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겠지요.

세번째는 일반화, 또는 수의 표현방식입니다. '모두의'와 '약간의' '하나의' '어떤 하나의'라는 말을 영어에서는 관사를 사용해서 상당한 정도까지 표현할수 있고 또 all이나 some같은 말로도 표현하지요. 그런데 일본어에서는 대개 그런 말을 쓰지 않습니다. '에도 시대의 몇명의 사무라이가...' 라거나 '모든 사무라이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지요. 그저 '사무라이는....' 이라고 합니다. 관사가 없기 때문에 알수 없는거죠. 이걸 번역에서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이 문제는 아주 흥미로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마루야마 : 아니, 꼭 번역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 경험을 말하는게 좀 뭐하긴 합니다만, 대학분쟁때 전공투 학생이 '학생은....'이라고 말하길래 "자네가 말하는 학생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건가?" 하고 물었습니다. 야스다 강당에 농성중인 사람들인가, 다른 학부에서 농성하고 있는 반대파인가, 아니면 불참한 정치적 무관심층을 말하는가 하고 말이죠. 좀 심술궂은 도발이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겁니다.




pp. 90-91

가토 : 유럽 정치사상에서는 인권이 있기 떄문에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두가지를 연결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그것이 나누어졌지요. 인권 쪽이 자유와 연결되고 민권 쪽이 평등과 연결되는 식으로 말입니다. 말하자면 자유로부터 분리된 평등과 인권으로부터 분리된 민권이 생겨났던 셈이죠. 그러나 일종의 평등주의는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마루야마 : 일군만민이라는 평등주의지요. 주군만은 예외지만 나머지는 귀족이든 평민이든 모두 평등하다는 겁니다. (중략) 익찬회 시대에는 천황과 인민 사이에 끼여 방해하는 자를 '막부적 존재'라고 말하는게 유행이었습니다만, 천황만 제외하면 평등사상은 각별했습니다.


가토 : 현행 헌법에서 인권과 평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착도가 강한 것은 평등이죠. 그건 전통적으로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미국이 강요하지 않았다고 해도 처음부터 인권 쪽은 없었으니까요.(웃음) 익찬회 운동을 민주주의적 위장이라고 한다면 나치가 바로 그렇습니다. 개인적 자유는 제로에 가깝지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갈등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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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2014.10.20 00:28 from 책/발췌




순수의 시대

저자
이디스 워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8-07-1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오만하고 우아한 옛 뉴욕을 무대로 펼쳐지는 사랑과 회한의 이야기...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민음사, 2008.



pp.26-27

그녀가 말했다. "아, 너무 많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난 죽어서 땅에 묻힌 것이 틀림없나 봐요. 이 정든 옛 고향은 천국이고."

이유는 확실히 짚이지 않았지만, 이 말은 뉴랜드 아처에게 뉴욕 사회를 불경스럽게 묘사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p.148

아처는 올렌스키 백작의 비난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품고 그녀와 헤어졌다. 아내의 과거에서 '비서'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은 아마도 그녀를 탈출시키면서 뭔가 자기 몫의 보상을 챙겼을 것이다. 그녀는 말로 표현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참기 어려운 상황에서 도망쳤다. 그녀는 젊었고, 겁에 질려 있었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 자신을 구해 준 사람에게 감사의 정을 느꼈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딱하게도 법과 세상은 그녀가 느낀 감사를 가증스러운 남편과 똑같은 눈으로 보았다. 아처는 책임을 맡은 이상 그녀에게 이를 이해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틀림없이 그녀는 더 큰 관용을 기대했겠지만, 그는 순진하고 따듯한 뉴욕이야말로 그녀가 가장 자비를 바라기 어려운 곳임을 확실히 이해시켰다.

이 사실을 그녀에게 분명히 알려 주고, 그녀가 이를 체념하고 감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에게 참을 수 없이 괴로운 일이었다. 그는 그녀가 말없이 과오를 자인하여 자신을 그의 처분에 내맡김으로써 초라하나 매력적인 모습이 된 듯이, 질투와 동정이 뒤섞인 모호한 감정으로 그녀에게 끌리는 것을 느꼈다.



pp.228-229

아처는 레퍼츠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의 신성한 예식에서 얼마나 많은 결점을 찾아냈을지 궁금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한때는 자기도 그런 문제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의 일상을 지배했던 그런 소소한 문제들이 이제는 우스꽝스러운 아이들 장난이나,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형이상학적 용어들을 놓고 중세의 신학자들이 벌이는 언쟁처럼 느껴졌다. 결혼식 직전까지 결혼 선물들을 '보여 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격론이 벌어져 분위기를 어지럽혔다. 버젓한 성인들이 이렇게 시시한 문제들을 놓고 흥분해서 소동을 벌이고, 웰랜드 부인이 분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차라리 기자들이 내 집을 마음껏 드나들게 하는 편이 낫겠어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보여 주지 않는 쪽으로 문제가 결판난 것이 아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때는 아처도 이런 모든 문제에 확고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했고, 자기가 속한 작은 부족의 관습과 예절 하나하나가 온 세상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문제라고 믿었다.

그는 생각했다. '우리가 그렇게 복닥거릴 동안에도 어딘가에 진짜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진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을 거야.....'




pp.354-358

그녀의 어조는 자연스럽다 못해 무심하게 들려서, 아처의 동요하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다시 한번 그녀는 단순한 대응을 통해 그가 인습을 내팽개치고 있다고 여겼던 바로 그 순간에도 어리석게 인습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당신처럼 솔직한 여자는 만나 본 적이 없어요!" 그가 외쳤다.

"아, 아니에요. 하지만 가장 까다롭지 않은 여자들 축에는 낄 수도 있겠네요." 그녀는 웃음을 담아 대답했다.

"표현이야 좋을 대로 해요. 당신은 뭐든 있는 그대로 보는군요."

"아, 그래야만 했어요. 난 고르곤[각주:1]을 보아야만 했어요."

"흠, 그것이 당신을 눈멀게 하지는 못했소! 당신은 고르곤이 별 볼일 없는 늙은 요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던 거지."

"고르곤은 아무도 눈멀게 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람들의 눈물을 말려 버리죠."


(....)


잠시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속삭이듯 물었다.

"실현될 거라고 믿는다니 무슨 뜻인가요?"

"당신도 알고 잇어요. 그렇지 않소?"

"당신과 내가 함께 있게 되는 당신의 꿈 말인가요?" 그녀가 갑자기 미친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할 장소를 잘도 골랐군요."

"내 처의 브루엄[각주:2]을 타고 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 그럼 나가서 얘기할까요? 눈을 좀 맞아도 괜찮겠소?

그녀는 다시 이번에는 좀 더 부드럽게 웃었다. "아니에요. 나가서 걷지는 않겠어요. 전 되도록 빨리 할머니께 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내 옆에 앉아서 꿈 말고 현실을 보세요."


(....)


"그럼 당신 생각은 내가 당신의 정부가 되어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요? 당신의 아내는 될 수 없으니." 그녀가 물었다.

(...) 그녀의 질문에 그는 갑자기 허를 찔린 듯 허둥거렸다.

"내가 바라는건....., 난 어떻게든 그런 말, 그런 구분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세계로 당신과 함께 떠나고 싶소.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삶의 전부가 되는, 인간 대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곳. 그밖의 어떤 것도 중요치 않을 그런 곳으로."

그녀는 다시 깔깔대고 웃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 당신, 그런 나라가 어디에 있나요? 그런 곳에 가 본 적이 있어요?"


(...)

"그래, 고르곤이 당신의 눈물을 말려 버렸군요." 그가 말했다.

"흠, 고르곤은 내 눈을 띄워 주기도 했어요. 고르곤이 사람들을 눈멀게 한다는 얘기는 틀린 말이에요. 그 반대죠. (후략)"




p.412

(...)아처는 이제야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다. 그들은 아직 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수단을 써서 그와 불륜 상대자를 성공적으로 갈라 놓았다. 이제 일족 전체가 그런 내막은 알지도 못하고 상상해 본적도 없다는 듯이 시침 뚝 떼고, 메이 아처가 단지 친구이자 사촌에게 애정을 담아 작별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에 접대 행사를 마련했을 뿐이라는 묵계에 따라 그의 아내 주위에 모여든 것이다.

그것이 '피를 흘리지 않고' 목숨을 빼앗는 옛 뉴욕의 방식이었다. 질병보다 추문을 더 두려워하고, 용기보다 체면을 중히 여기고, 소동을 일으킨 사람들의 행동을 제외하면 '소동'보다 더 교양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방식이었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자, 아처는 자신이 무장한 군대 한가운데 있는 죄수같이 느껴졌다.




pp.435-437

"저기, 아버지, 올렌스카 부인은 어떤 분이었나요?"

아처는 아들의 뻔뻔스러운 시선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자, 솔직히 털어놔 보세요. 아버지랑 그분은 보통 사이가 아니었지요? 그렇게 아름다운 분이었나요?"

"아름답다고? 모르겠다. 그녀는 달랐어."

"아, 바로 그거였군요! 항상 그런식으로 사랑이 시작되는거죠. 척 보니 다르더라.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라도. 제가 패니한테 바로 그런걸 느꼈거든요."

(...)

"나의 패니였다고...?"

"그 왜,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버려도 좋을 여자 말이에요. 물론 아버진 그렇게 하지는 않으셨지만." 사람을 기절초풍시킬 아들의 말이었다.

"그러지 않았지." 아버지가 엄숙한 투로 그 말을 받았다.

"예. 아시다시피 아버지는 시대에 뒤떨어졌다고요. 하지만 어머니 말씀이......"

"네 어머니 말이냐?"

"예. 돌아가시기 전날이었죠. 저만 곁에 부르셨을 때 말이에요. 기억나시죠?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안심할 수 있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라고 하셨어요. 왜냐하면 옛날에 아버지가 어머니의 청에 따라 가장 원하는 것을 포기하신 적이 있기 때문이래요."

아처는 이 이상한 이야기를 말없이 들었다. 그는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그린 네모에 멍한 눈길을 박은채로 있었다. 마침내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네 어머니는 내게 한번도 청한 적이 없었다."

"예, 저도 잊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신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그렇죠? 그저 앉아서 서로를 쳐다보고 그 밑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 짐작하셨을 따름이죠. 사실 귀머거리에 벙어리들 수용소 같았달까.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보다, 부모님 세대가 서로의 은밀한 속마음을 더 많이 알고 계셨다고 생각해요. 아버지...."



pp.441-443

"아버지, 6시가 다 됐어요." 아들이 마침내 그에게 상기시켰다.

아버지는 나무 아래 빈 벤치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저기 좀 앉아야겠구나" 그가 말했다.

"왜요, 어디가 편치 않으세요?" 아들이 소리쳤다.

"아니, 말짱하다. 그저 너 혼자 올라갔으면 한다."

댈러스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 올라가지 않겠다는 말씀이세요?"

"나도 모르겠다" 아처가 느릿느릿 대꾸했다.

"올라가지 않으시면 백작 부인이 이해못하실 거에요."

"가렴, 애야. 뒤따라가마"

(...)

"좋아요. 아버지가 너무 구식이라 승강기를 싫어하셔서 5층까지 걸어오신다고 할게요"

아버지는 다시 웃음을 지었다. "내가 구식이라고 해라. 그거면 충분해"

(...)

"올라가는 것보다 여기 있는 편이 내게는 더 현실 같지." 그는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그는 짙어가는 어스름 속에서 발코니에 눈을 고정시킨 채 오랫동안 벤치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나왔고, 잠시 후 하인이 발코니로 나와 차양을 걷고 덧문을 닫았다.

그것이 마치 기다리던 신호이기라도 한 듯, 뉴랜드 아처는 천천히 일어나 호텔로 혼자 걷기 시작했다.




  1.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머리카락은 뱀이며 이를 본 사람은 돌로 변한다. [본문으로]
  2. 19세기 말-20세기 초의 4륜 마차의 한 종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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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2014.09.27 09:46 from 책/발췌



인간 실격

저자
다자이 오사무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2-04-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인간 사회의 위선과 잔혹성을 한 개인을 통해 거울처럼 보여준 작...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2012, 민음사


p.93

세상이란 게 도대체 뭘까요. 인간의 복수[각주:1]일까요.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무조건 강하고 준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여태껏 살아왔습니다만, 호리키가 그렇게 말하자 불현듯 "세상이라는 게 사실은 자네 아니야?"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는 게 싫어서 도로 삼켰습니다.


'그건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서하지 않는 거겠지'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이 그냥 두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자네겠지'

'이제 곧 세상에서 매장당할거야'

'세상이 아니라 자네가 나를 매장하는 거겠지'

'너는 너 자신의 끔찍함, 기괴함, 악랄함, 능청맞음, 요괴성을 알아라!'


갖가지 말이 가슴속에서 교차했습니다만, 저는 다만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진땀 나네, 진땀" 하고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이후로 저는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p.99


(...) 도시락 통에 먹다 남긴 밥알 세 알. 천만 명이 하루에 세 알 씩만 남겨도 쌀 몇 섬이 없어지는 셈이 된다든가 혹은 하루에 휴지 한 장 절약하기를 ㅊ너만 명이 실천하면 얼마만큼 펄프가 절약된다는 따위의 '과학적 통계'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위협을 느끼고, 밥알 한 알 남길 때마다 또 코를 풀 때마다 산더미 같은 쌀과 산더미 같은 펄프를 낭비하는 듯한 착각 때문에 괴로워하고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어두운 마음을 가져야만 했는지.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과학의 거짓' '통계의 거짓' '수학의 거짓'이며 밥알 세 알을 정말로 모을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곱셈 또는 나눗셈 응용문제라고 쳐도 정말이지 원시적이고 저능한 테마로서 전등을 안 켠 어두운 화장실에서 사람들은 몇 번에 한 번쯤 발을 헛디뎌서 변기 구멍 속으로 떨어질까 혹은 전차 문과 플랫폼 사이의 틈새에 승객 중 몇명이 발을 바뜨릴까 같은 확률을 계산하는 것만큼 황당한 얘기인 것입니다. 그런 일은 정말 있을 듯하지만 제대로 발을 걸치지 못해서 화장실 구멍에 빠져 다쳤다는 얘기는 들은 적도 없고, 그런 가설을 '과학적 사실'이라 배우고 진짜 현실로 받아들여서 두려워하던 어제가지의 저 자신이 애처로워서 웃고 싶어졌을 만큼 저도 세상이라고 하는 것의 실체를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1. 단수, 복수의 복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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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영토분쟁

2014.09.21 21:21 from 책/발췌



일본의 영토분쟁

저자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출판사
메디치미디어 | 2012-10-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최근 독도, 센카쿠열도, 북방영토 등에서 한·중·러와 대치 국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일본의 영토분쟁,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양기호 옮김, 2012, 메디치미디어


p. 111


1946년 1월 연합국 최고사령부 훈령은 "일본의 주권은 '4개 주요섬과 쓰시마, 북위 30도선 이북 류큐열도를 포함한 약 1천개 섬으로 하되, 독도, 치시마열도, 하보마이열도, 에토로프군도, 시코탄 섬을 제외한다'"고 되어 있다.


일본은 패전후 이 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1951년 8월 17일 요시다 총리는 중의원 본회의에서 '영토 포기 조항은 이미 항복문서에 적혀 있다. 즉, 일본 영토는 4개 주요 섬과 부속도서로 한정되어 있다. 즉, 다른 영토는 포기한 것이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일본인은 이 사실을 모른다.





pp. 225-226


일본인의 대중 인식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에 단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중국과 조선을 보면, 서세동점의 풍조에서 그 독립을 유지할 길이 없다. 이웃국가가 개명하기를 기다려 다함께 아시아를 흥하게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 대오에서 벗어나 서양 문명국과 발걸음을 같이 해야 한다. 조선과 중국도 이웃국가라 해서 특별 대접을 해서는 안된다.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을 하대하듯이 다루어야 한다. 마음속으로부터 아시아 동방의 악우(惡友)들을 사절하는 바이다.


탈아론의 근거는 중국과 조선이 독립을 유지할 길이 없다는 데에 있다. 중국이 일본 위에 있다면 탈아론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 탈아론의 주요 근거가 중국과 조선의 약체화라면 지금이야말로 상황이 역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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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안병길, 2010, 동녘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저자
안병길 지음
출판사
동녘 | 2010-03-0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저항하라! 참여하라!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다!이 책은 ‘자유민...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무려 추천사가 이준구 교수와 임혁백 교수… 이 대목에서 이미 구매의사 50%는 넘겼다고 봐야.

알라딘 중고서적에서 5분만에 ‘오늘은 이만 됐다’ 하고 나오게 한 책이다. 이걸 6천원에 사다니 행복해요.



pp.19-20

(….) 둘째로, 사람들이 별로 친절하지 않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손님을 무시하는 듯한 택시 기사의 말투, 혼잡한 거리에서 어깨를 툭 치며 지나면서도 미안한 기색이 없는 행인,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을 밀치는 승객, 손님의 취향을 무시하는 식당 종업원의 서비스 등 그 예는 이루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런 광경들이 놀랍기도 했고, 기분이 약간 상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p.22

(….) 저는 2008년부터 이준구 교수님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활동했는데, 최근 이 교수님의 댓글에서 저와 같은 문제의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교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주의자가 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야. 자유와 권리가 조금이라도 침해된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용기를 갖고 있어야 해. 자신의 자유와 권리뿐 아니라 남의 자유와 권리까지도. 내가 우리 사회에서 자유주의자들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것은 그들이 ‘엉터리’ 자유주의자들이기 때문이야. 말로만 자유주의를 부르짖을 뿐 실제로는 민주적 원칙에 대한 존경심이 별로 없는 위선을 비웃는 것이지.”


p.33

우리 초등, 중등, 고등학교 도덕/윤리 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공동체주의를 주로 가르치고 있다. 자유와 권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것이 아닌데,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는 자유와 권리가 오히려 사회불안의 요인이 되는 것처럼 설명한다. 그런 교과서 내용으로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 교육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도덕과 윤리 교과서 내용을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p.37

이상에서 살펴봤듯이, 우리나라의 대국민 자유민주주의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내용도 매우 부실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는 이타주의와 공동체를 강조한다. 건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자윰니주주의를 활성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토양이라는 설명을 교과서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애매모호한 공동체 잣대를 들이밀면서 착하게, 바르게, 관용을 베풀면서, 전체를 위해 살 것을 가르친다.


p.52

(….) 이런 자유주의의 진수를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아라, 고운 말 해라, 거짓말하지 마라”는 식으로 절대적 도덕 가치를 기준으로 교육하는데, 그것보다는 자유민주주의 내부 원리를 제대로 가르쳐서, 왜 그렇게 살아야 자신에게 더 이로운지 깨우치게 해줘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단연코 도덕무장 이념이 아니다. 필자는 인터넷에서 익명이든, 실명이든 욕설을 하지 않는다. 착해서 그럴까?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고, 응징 받기 싫어서 그렇다. 즉, 착하고 악한 도덕적 잣대가 아니고, 좋고 싫은 호오의 합리성 잣대이다.


pp.83-84 

어떤 작가가 성년이 된 딸의 사생활 이야기가 포함된 수필을 신문에 기고했다고 하자. 그 작가는 헌법 제21조가 보장한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행사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작가의 딸이 자신의 사생활 이야기가 신문에 덜렁 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헌법 제17조가 규정한 사생활 비밀 유지의 자유가 침해된 사례에 든다. 헌법 속의 두 자유가 박치기한 것이다.

사생활 비밀 유지는 불가침에 해당되는 기본권이다. 따라서 만약 딸이 저항했다면(사생활 이야기 공개에 반대했다면), 그 작가가 방종을 저지른 것으로 자유주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다. 위에 인용한 제21조 4항에서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유주의에서는 딸도 타인이다.

그런데 작가의 딸이 자신의 사생활이 공개되는 것을 바라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는 이상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 작가는 신문에 수필을 기고하기 전에 반드시 딸의 자유의사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헌법상의 자유와 자유 박치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작가 가정의 분위기가 자유롭다면 딸은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표현할 자유를 행사할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분위기라면 작가의 희망이 딸에게 비쳐서 나타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더 위험한 것은 작가가 딸의 선호를 마음대로 추정해서, 당연히 신문에 실어도 딸이 찬성할 것으로 생각하는 데 있다. 자유주의에 어긋나지 않으려면 당사자인 딸이 자유의사로 명시적인 확인을 하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p.151

전선이 잘못되었다. 공공의 적은 권위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헌법에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대못을 박아 놓았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권위주의가 우리 국민의 적이다. 좌파, 우파, 보수, 진보가 아니다. 정치판에서 각자 세력을 넓히려고 상대편을 깎아내리는 정치적 조작 측면은 이해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발상을 할 때가 되었다. 아직 남아있는 과거 독재/권위주의 잔영을 청소해야 한다.


p.196

자유는 말 그대로 자유이지, 공동체를 위해서 희생을 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는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열심히 사는 것이 자유주의의 모습이다.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자유주의의 정답이다. 만약 그것을 공동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언어의 유희이다. 독자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시기 바란다. 그렇게 해도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정답이 될 수 있는 것이 자유주의다. 어설프게 국가 공동체를 위한다든지,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든지, 국가이익을 위한다든지, 우리는 운명 공동체! 따위의 주장으로 무장하여 가스통을 들고 설치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긍정적이고 건설적이다.


pp.206-207

자유민주주의는 전형적으로 장기 합리성을 추구한다.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는 잘될 것이다. 필자는 그렇게 믿는다. 잘되려면, 국민이 스스로 자유와 권리를 지키려는, 투쟁하는 정신자세를 지녀야 한다.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 줘야 자유주의에서는 평화가 온다. 로마의 전략가 베제티우스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가 그 뜻이다. 우리 국민은 쓸데없는 곳에 너무 관용을 베풀고, 귀차니즘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려야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한다. 공짜가 어디 있는가, 자유는 포근한 엄마 가슴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pp.259-260

2008년 여름, 박태환 선수가 올림픽 수영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박 선수의 경기가 모두 끝났지만, 박 선수는 귀국하지 못하고 있었다. 개별로 입국하면 전체 환영 행사에 지장이 생긴다는 대한체육회의 설명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주의적 사고방식이었다. 필자는 이런 권위주의적 발상이 없어져야 자유민주주의가 더 뿌리를 내릴 것으로 진단한다. 편협한 이기주의는 멀리해야겠지만, 건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토양으로 봐야 한다.


p.274

먼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유명한 격언의 의미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어떤 누리꾼이 마음이 약해서 상대방의 도발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굴복하는 타입이라면 평화를 보장하기 어렵다. 상대방은 나약한 누리꾼이 저항하지 않는 것을 알고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상대방의 도발을 적절하게 응징하는 누리꾼에 대해서는 조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응징을 당하면 자신도 괴로워지므로 도발을 자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도발할 가능성이 있는 상대에게 자신이 세다tough는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이뤄지는 평화는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가능하다. 나약하게 대응하는 타입이라면 가능하지 않은 평화이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상대방이 나를 우습게 여기면 도발을 막을 수 없고, 상대방이 나를 만만찮게 여기면 도발을 막아서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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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2013.10.09 20:40 from 책/발췌





고민하는 힘

저자
강상중 지음
출판사
사계절 | 2009-03-24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불안과 고민의 시대, 일본 100만 독자를 일으켜 세운 책! 고...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사계절, 2009



pp. 7-8

그 우울한 청춘의 시대, 내 옆에서 늘 속삭이듯 말을 걸어준 것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였습니다.

(...)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감정 기복이 심했던 내 청춘을 수놓은 우뚝 솟은 위대한 존재였습니다. 나는 두 사람에게서 '고민하는' 것이 '사는' 것이며, '고민하는 힘'은 '살아가는 힘'임을 배웠습니다.

 


pp. 22-24

나는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 두 사람을 '한 쌍'처럼 사랑해 왔습니다. 그리고 막스 베버의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또한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을 통해 '근대'라는 것이 인간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배웠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살았던 시대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있고 우리는 20세기 말에서 21세기에 걸쳐 살고 있습니다. 즉 백여 년을 사이에 둔 '두 세기말'이 존재합니다. 내가 새삼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에 주목한 것은 두 세기말이 여러 의미에서 서로 통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아마도 그런 상황과 관계가 있겠지요. 우울증에 빠지거나 히키코모리가 되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백 년 전의 일본에서도 '신경쇠약'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음의 병이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신경쇠약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데, 현재의 상황에서도 그와 유사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다른 말로 하면 근대의 입구에서 발생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백년 동안 계속 성장해 왔다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쓰메 소세기와 막스 베버가 백년 전에 쓴것을 다시 읽어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을 해결할수 있는 실마리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pp.30-31

자아가 비대해지면 꼼짝달싹 못하게 되어 거기서 빠져나오기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현재 자아의 병리적인 비대화는 무척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데, '우울증'이나 '히키코모리'와 같은 마음의 병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듯 합니다.

너무 추상적이어서 잘 모르겠다는 사람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나도 이렇게 될지 모르겠는데' 라든지 '나와 비슷해'라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자아의 문제를 철저하게 파고들어 평생 그것만을 썼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p.35

선생의 이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유와 독립과 자아로 가득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 대가로 이런 쓸쓸함을 맛보아야만 하겠지요."



p.51

막스 베버는 아버지 덕분에 아무런 불편 없이 성장했고 일류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학자로서 성공을 거둔 것도 아버지 덕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시대를 비평하는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벼락부자 근성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노동을 하지 않고 부자인 아버지에게 빌붙어 사는 『그 후』에 등장하는 다이스케와 동일한 상황이어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p.52

시대를 밑바닥부터 만든 세대는 '우리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이 국가가 발전했어'라는 만족스러운ㄱ ㅏㅁ정이 있습니다. 사회에 여러 가지 모순이 발생해도 스스로 그 사회 건설의 당사자라는 점에서 큰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치가나 사업가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고 일반 시민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와 같은 충실한 만족감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순만 눈에 들어와 그것을 만든 세대에 불만을 가집니다. 시대를 창조한 사람들이 가진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겠다'는 적극적인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해도 변하는 것이 없어'라는 좀 허무적인 감정을 지니기 쉽습니다. 전자를 '창시 의식'이라고 부를수 있다면 후자는 '말류 의식'이라고 부를수 있겠지요.

나쓰메 소세키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던 때의 당사자가 아니라 그 후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따라서 나쓰메 소세키는 '말류 의식'을 가지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을을 묘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시대에 대해 나름대로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불만을 타파하기보다는 포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세상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해 의문의 눈초리를 들이대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달관한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즉 '돈만 있으면 되는 세상은 더럽고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말은 그렇게 해도 시대의 추세가 그러니 어쩔수 없지'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pp.87-88

(...)본래 청춘은 타자와 미칠 듯이 관계성을 추구하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공공연한 생생함은 적극적으로 피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지만, 나는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발기불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서 서장에서도 말했지만 바싹 마른 건조한 청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에 한국을 방문해서 서울대학교에 갔을 때에도 그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목격한 것은 이른바 엘리트 학생들이 "필요없는 것을 생각하고 있을 여가가 있으면 스킬을 몸에 익히고, 전문지식을 몸에 익히고, 유용한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획득해야 한다. 놀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분위기에서 미국화된 프로그램을 필사적으로 소화시키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토익이 900을 넘지 않으면 취직이 힘들다고 말하며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영어의 수준은 매우 높아졌지만, 나는 왠지 모를 위화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직 이십대인데도 "이미 나이가 많아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의 청춘기와 너무나 달라 깜짝 놀랐습니다.



pp.116-117

얼마 전에 워킹 푸어(근로 빈곤층)에 관한 NHK의 텔레비전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삼십대 중반의 남성 노숙자의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남자는 공원에서 잠을 자면서 쓰레기통을 뒤져 주간지 등을 주워서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시청에서 한 달에 며칠동안 도로 청소를 하는 일을 얻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눈시울을 닦으며 우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는 1년 전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울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시청에서 준 일을 하던 도중에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에게 무슨 말인가를 들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겟지만 아마도 "수고하십니다"와 비슷한 말이었을 것입니다. "지난번에는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라는 취쟂인의 물음에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대답한 그는 "다시 사회에 북귀하면 '태어나서 좋았다'고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리고 "예전 같으면 울지 않았을 텐데, 이제는 보통 사람처럼 감정이 돌아온 건지도 몰라"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사람이 '일을 한다'는 행위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자기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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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유언

2013.09.20 19:01 from 책/발췌




보수의 유언

저자
나카소네 야스히로 지음
출판사
중앙북스 | 2011-03-0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보수의 가치를 망각한 데서 시작됐다 나...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보수의 유언, 나카소네 야스히로 지음, 오대영 김동호 옮김, 중앙books, 2011



지난번 처음으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책. 멍청하고 오만한 정치인들은 좀 배워라는 식의 '똑똑하고 겸손하신 언론인' 김영희 대기자의 추천사를 보며 굉장히 시작이 불쾌했지만, 본문은 중시되어야 하므로 계속 읽었다.





pp. 58-60


고이즈미의 인기는 내가 후일 '순간 터치 단언형'이라고 이름붙였듯이 기자들 앞에서 질문에 즉시 짧게 답하는 데 있었다.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면 그는 그 즉시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게다가 무언가 내용이 있는것과 같은 답변이었기 때문에 국민은 뭐라도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오해했다. 이것만 봐도 그에게는 능력이 있다고 느끼곤 했다. 그는 '천재적인 순간 예술가'인 것이다.

(....)

고이즈미 정권을 보고 있으면 영락없이 2차 세계대전 전의 '초연 내각'이 되살아난 인상을 받았다. 초연내각이란 각료의 절반이 군인이나 관료, 경제인으로 채워지고 정당이나 정치인은 배제된 내각이다. 임상적인 대중요법으로 일을 처리한 결과 군부의 힘과 포퓰리즘이 결합해 일본이 태평양전쟁으로 휩쓸려간 원흉이 됐다. 지금의 정치나 선거도 머리 모양이나 패션 센스 등과 같은 외양만을 부각시켜 판단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포퓰리즘을 만연하게 만들고, 선거와 정치를 타락하게 만든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 대표의 스타일이나 외관, 그리고 언론이 달라붙게 만드는 뛰어난 전술을 완전히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원래 정치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떫고, 선이 굵고, 촌스러운 것이며 역사적으로 오래 존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p.112


보수라고 하는 단어는 감각적으로는 온고지신과 거의 비슷할지 모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에너지의 양이 더 풍부하다는 점이다. 

18세기 영국의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즉 현상을 타파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매우 박약했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민족이나 국가가 갖고 있는 역사,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사상으로서의 보수주의를 제창한 것이다. 또 보수는 전통이나 문화를 파괴하기 위해 개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매우 중시하면서 더욱 진정한 보수로 발전시키기 위해 개혁을 중시한다는 의미를 강조한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일본의 역사는 '보수' 그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수 속에서 일본의 전통과 문화가 발전한 것이다.




pp.146-147


대 북한정책에 관해서도 나는 5개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북한에 관한 문제는 포괄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므로 부분적 해결은 없다.

둘째, 납치 문제와 핵무기 폐기가 첫째 관문이다.

셋째, 한국이 제시한 조건 이상의 조건을 제시해서는 안된다.

넷째, 경제협력은 최종단계에서 결정할 문제다

다섯째, 한미일 삼위일체로 대응해야 한다.





pp.198-199


어떤 일이든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뛰어난 정치인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은 어려운 문제들에 자주 부닥쳐 넘어지게 돼 있기 마련이므로 그런 난관을 뛰어넘는 센스가 필요한 것이다.

중국의 덩샤오핑도 천성적으로 낙관적이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괴로웠던 체험이 무엇인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문화대혁명때 외양간에 들어가 지내게 됐는데 그때는 이제는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원래 낙관주의자라서 이런 바보 같은 상황이 계속될 리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금은 그저 꾹 참고 인내하고 있으면 언젠가 문화혁명의 광풍이 지나가고 말 것이다."

덩샤오핑은 그 후 사람들로부터 글을 써달라고 부탁을 받으면 '낙관'을 쓰게 됐다고 한다.





pp.223-229


메이지 헌법이 관료나 군인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왜곡된 국가생활을 국민에게 강요하기 위해 악용된 것도 사실이다. 구미 선진국에 대항하기 위해 국민의 생활과 직결된 교육의 개선이나 사회보장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을 희생시키고 모든 국력을 군비에 집중시켜 구미 선진국에 대항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남녀 평등이나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고 치안유지법이나 치안경찰법에 의해 민주주의자들을 탄압했다. 이것도 헌법의 운용에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행 헌법도 제정 절차상 문제를 모른 척하고 덮어주면 안된다. GHQ가 원안을 작성해 일본에 간접적이지만 강제적으로 만들게 한 것으로, 일본인들의 의사를 자유롭게 반영해 100퍼센트 민주적으로 만든 헌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신경쓰이는 부분은 자국의 안전보장을 타국민의 신의에 맡겨둔 채 정작 당사자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문장이다. 이것은 '방위는 미국이 담당할 테니, 일본은 자체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돼 있는 부분으로 GHQ가 내놓은 점령정책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 조금 더 자주성이 있는, 일본 국민의 역사적, 문화적 공동체로서의 국가상을 모두 담아내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운명과 평화의 확립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내용이 필요하다.

(....)

그러나 제2항 '육해공군과 그 외 어떤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어떤가. 자기 나라는 스스로 지킨다는 의사를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라고 하면 위험하다는 인상을 받을지 모르지만 제도상의 제한 장치를 마련해두고 철저하게 문민통제를 하면 안전하게 운용할 수 있다. (...) 그래서 '국가안전보장기본법'이라는 법률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이 법률로 문민통제를 확실하게 하고 그 행사 상태를 국회 또는 정부가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 외국과 제휴해 협력할 때는 어느 정도의 범위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해두면 과도한 대응은 미연에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p.236


나의 은사 야베 데이지 박사의 말을 인용해보자


민주주의 없는 애국심은 군국주의로 타락한다.

애국심 없는 민주주의는 방종으로 타락한다.


새삼 해설을 붙일 필요도 없지만 전자는 태평양전쟁 이전의 일본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전후의 일본을 가리킨다. 이것은 가슴에 깊이 명심해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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