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깡통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봄날 오후의 버스는 여의도를 지난다. 점심시간이라 나온 직장인들로 거리는 나름 활기차다. 직장인 생활의 분주함에 비하면 학생은 낙원 수준이라던데, 저들은 얼마나 바쁘고 힘겨울까? 학생의 울타리를 한번도 벗어난 적 없는데도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내가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한다.
 
 
 
저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겠지? 명색이 대학생이라는 우리 남매, 동생이 집에서 책 읽는 모습은 본 적도 없거니와, 나조차도 학기가 시작되면 따로 책 읽기가 쉽지 않다 생각할 정도니. 그래, 아마 저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이 그렇게 책을 안 읽는다던데.
 
 
 
나는 어떨까? 나는 열심히 읽어야지. 좋다,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물론 본업에 충실하는게 더 힘든 일인 것 같다) 어느새 나는 또 언젠가에 이루어질 <무릎팍도사>같은 위인전 포맷의 방송출연을 가정하고 있었다. 사회자가 내게 묻는다. 아니 대체 그 바쁜 틈에 어떻게 그렇게 따로 독서를 할 수 있나요? 나는 대답한다.
 

 
 
“사람들이 책을 너무 안 읽는 것 같아요. 책은 이렇고 저렇고…”
다시. 이렇게 훈계조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습관이 되면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하면된다' 세계관은 내 쪽에서 거부하겠다.
 
 
 
“제가 이상한거죠. 사실 너무 일이 많아서 책 읽을 틈이 없잖아요 한국사람들”
이건 뭔가에 기대어 핑계를 대는 것 같다. 책 안읽는 사람들을 구조적으로 변호하는 것 같으면서도 나의 특별함을 부각시켜 거만해 보인다.
 
 
 
“아마 일이 고되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많이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책을 읽고 싶어도 읽기가 쉽지 않네요”
 
 
 
아, 나는 단순히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보다도,
‘세 번이나 NG를 내지 않고도 단번에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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