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소고

2011.11.30 13:12 from 내 글/중문


이세상이 확신과 선명함으로 가득찬 적이 있었지. 그때의 나는 겁날 것도 없었고 아쉬운 것도 없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이루고야 말았고, 또 이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판별할수 있는 머리도 있었다. 적어도 미성년의 기준으로는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신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반드시 이런 사고방식을 벗어나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교회에 꼬박꼬박 나가서 어머니는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 적당한 성당을 찾지 못한 내게 그런 주제만 떠오르고 그런 생각에 집중할만한 공간이 거기밖에 없더라. 근 두세달 가까이를 혼자만의 고민에 집중하기 위해 예배에 참석했다. 휴학하고 22살 23살때 내내 그 고민을 했던것 같다.



적어도 이제는 회의주의가 속성이 된 것 같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말도 늘고 글도 늘고 무엇보다 내 생각이라는 게 늘었다. 지금으로선 잘한 결정(전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다.

언젠가 또 어떻게 ...내가 변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아무튼 이 과정에서 자의식보다 높았던 자존감은 곤두박질 쳤고... 성적은 떨어지고 뚜렷하게 이루어낸 성취는 희미해졌다. 스트레스 속에서 병적인 자의식과잉만 나타나고 있는 상태인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을 겪은 이후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더 인간적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지. 물론 20대가 꺾이고 있는 지금은 그냥 멘탈병신.

이기는 싸움만 한다는것. 내 나와바리에선 내가 신이 되어야 한다는것.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모른다고 미리 확언하는것. 이것이 나는 솔직함이고 겸손함이고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사실 오만이다. 저만치 밀어내는 것만 하는 것이 소통일 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말을 반드시 다 귀기울여 들어줘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적어도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한번도 남의 이야기를 '완전한 남의 이야기'로서 듣고자 하지 않았던 나는 이런 노력조차 평생 처음 겪는 고민이었으니까.


과거의 내 모습은 타인과 다를 바 없다. 전에도 글에 썼던 적이 있지만 이전에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다시 아무 연습없이 실행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착각이다. 성인이 되기 전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시도해서 그것을 거의 모두 이루어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허영만 커져서 이것도 신경쓰고 싶고 저것도 신경쓰고 싶다. 이루어낸 것은 막상 별로 없다. 성취와 자신감을 갈구하며 이전의 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애를 쓰는 시늉만 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군대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신성한 나의 세계의 벽을 의심하고 허무는 데에만 열중했지만, 어차피 나는 타인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감성적인 인물은 못 된다. 따뜻한 사람보다는 내가 더 소질에 맞고 잘 할수 있는 곳에 역량을 집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소한의 사회화에 성공한 싸이코패스의 비오는 날의 잡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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