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를 말하고 싶은데, 수많은 의식 있는 사람들은 일단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연대의식이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연대의식이 아주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도 그 이야기에 동감한다. 그런데 난 개인의 자유를 말하고 싶다. 누구에게도 함부로 간섭받지 않을 자유가 너무 고프다.
 


 
 
어릴 적부터 내 눈에는 닮고 싶음의 광경보다는 보기 싫음의 풍경이 더 많았다. 존경하는 인물은 예전부터 없었고, 결국 없었고, 지금도 없다. 닮고싶다는 마음보다는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내 마인드를 지배했다. 심장이 뛰는 한은 내 머릿속에선 ‘타산지석’의 원리가 진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경계했었던 것은 ‘오지랖 넓은 사람’이었다. 개인과 개인과의 거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 혹은 그 실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을 경멸했다. 개인의 사사로운 영역, 신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간섭하고, 타자인 주제에 타인의 내면을 제 뜻대로 조작하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그것을 선의로 변호하며, 관심과 정이라고 부르며 장려한다.

 

 
 
간섭받기 싫은 나는 누구에게도 절대로 간섭하는 존재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기본적인 사교성/사회성이 현저하게 떨어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실 20세까지 객관적인 내 성격은 그 누구도 도저히 어울리기 어려운 존재였다. 꼬장꼬장한 나를 감당하고 받아주었던 사람들이 고마울 뿐.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여성과 한 자리에 마주하면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말도 더듬더듬, 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힐끗힐끗했다. 수능 끝나고 그것을 극복하는데 두 달 가량 걸렸던 것 같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개념도 전혀 없었고, ‘공감’과 ‘이해’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다. 이런 녀석이 사회학과에 오다니, 재밌는 일이다.
 


 
 
다행히 이제는 사회성과 사교성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인식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대학생이 되어 그 이전과 비교해 가장 변한 것이 있다면, 사교성에 대해 첫걸음을 내딛었고 그것을 잘 하려고 애썼다는 점인 듯하다. 그러나 유예된 학습영역이 아직도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데, 아직 제대로 연애를 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가 그 증거가 되겠지 싶다.
 


 
 
또 너무 바깥으로 샌 것 같다. 항상 이렇게 내 생각을 말하다보면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보충하려고 내 생애환경을 주저리주저리 말하게 되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사회학도이기도 하고 사회성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잘 느끼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개인의 자유, 한국사회에서 고사 직전인 진정한 자유를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인’과 ‘자유’를 강조하면서 ‘사회적 연대’를 배제하거나 그와 대립하지 않고 아우를 수 있을까?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연대, 둘 다 한국사회에 결여되어있는 아주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나는 학자가 될 능력도 의사도 없지만, 이 문제는 어쩌면 평생 내가 지고 갈(아마 한국사회를 떠나지 않을 테니) 고민이자 화두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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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웅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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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nah132 2013.09.01 23:18

    멋진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