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2015. 4. 16. 19:08 from 내 글/중문


부대 상황실을 맡은지 한 달째, 연신 날아오는 취지와 목적을 알수없는 쓸데없는 전화에 짜증을 내던 중위 2년차 봄날이었다. 여객선 좌초 소식이 YTN 속보로 보도되었고 20분쯤 뒤에 여단장(참모장) 지시로 전 부대의 휴가자에게 연락하여 본인 혹은 그 가족 중에 탑승자가 있는지 확인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설령 제주도가 집인 병사가 휴가 가는데 저가항공 두고 무슨 배를 타겠냐며 짜증을 내며 부랴부랴 휴가자 30여명의 명단을 받아냈다. 그날따라 무슨 휴가자가 그리 많았던지...


본인 핸드폰은 가망이 없어 부모님 핸드폰으로 전화를 시도했지만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를 곱게 받아줄 리 없는 세상이다. 궁여지책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답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11시쯤부터 몇명 남았냐고 상황실장이 독촉하기 시작했다. YTN에서는 300여명 구조 보도가 나왔다. 12시 반이 되어서야 일때문에 못봤다는 마지막 어머님의 답신이 돌아왔다. 그날 오전의 해프닝은 '3여단 전원 이상없음'으로 종결되었고 나는 "하여간 호들갑들은..." 하고 혀를 차며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300여명 구조 보도는 오보"라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325/list?bbsId=G005&pageIndex=1&searchKey=userid&searchValue=85zig4l4lkQ0&searchName=%ED%95%98%EB%A3%A8%EC%B9%B4%EC%94%A8&itemId=143&itemGroupId&platformId


루리웹 눈팅한 것은 최근이다. 그전까지의 루리웹은 무슨 이야기를 어떤 느낌으로 하는 곳인지는 알지만 굳이 들어가지는 않는, 내게는 디씨나 여시와 같은 존재였다. 사고와 관련된 루리웹 유저의 이야기를 기사로 읽었기 때문에 찾아 들어가 보았다. 6000개의 댓글을 하나씩 하나씩 읽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댓글들... 살아남기 위해 철판을 긁어댄 누군가의 손톱자국처럼, 한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수백명의 댓글들이 눈에 따갑게 박힌다.


평소에도 수없이 티를 내었듯이, 현재 우리 사회에 있는 문제들의 원인을 편리하게 1940년대로 돌리며, 친일청산과 민족정기 확립실패가 본질이라는 식의 주장을 굉장히 싫어한다. 나도 조금 편해지려고 '친일청산'이란 단어는 '강단사학' '주류 경제학'과 같이 묶어 거름종이로 삼고 있다. 때문에,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보자는 주장에 대해서 동의하는 편이다. 그것이 설령 어떤 배경과 목적을 지닌 발화건 간에, 말벌떼가 날아들 것을 알지만 포기하지 못하는 어떤 달콤한 것처럼 쥐고 있었던 명제였다.


그런데 과거사 얘기 나올때마다 논의를 거부하고 준엄하게 현재와 미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오늘에서야 1.00년이 된 사건을 과거 문제로 밀어내려는 시도를 보니 너무나도 참담하다. 지금까지 나는 순진하고 순수한 위선과 악을 경계하고 경멸했는데, 이토록 악랄하고 악랄한 악랄함은 어떻게 대해야하는 건지. 어떻게 이게 덮어두고 나아가야 하는 과거 문제가 되는 것일까. 내가 말하는 것과 같은 말을 하는 자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다.


비가 오고 바람도 불었다. 좋은 일이 있어서 술자리가 있었다. 자리에선 억지로 웃으면서 참고 마셨는데 파하고 나서 걷다보니 차라리 이런 날엔 술을 마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스물 아홉. 이제는 '어르신들이 문제야 문제'라고 담담하게 말할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이토록 무력할 수가 있는 걸까. 내년 이맘때쯤에는 이런 감정으로 글을 쓰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4.19와 현충일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놀면서 '그때 그 사람들이 바라는 모습이 바로 이렇게 우리가 즐겁게 사는 모습이야'라고 뻔뻔하고 떳떳하게 생각하고 싶다. 그런 날이 2년, 5년, 10년째에는 올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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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만 말하는 언론, 김기종 말하지 않으려는 진보 세력

[옥인동 샤우팅]80년대 열혈 운동권은 왜 불행한 개인이 되었나



후반부는 그냥 개나 주는 걸로 하고, 전반부에 있는 글쓴이의 문제의식이 그나마 덜 식상해서 링크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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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렇다. 내게 미국 대사가 대낮에 칼부림을 당했다는 사실만큼이나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범인을 '낯선 광인'으로 대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진심어린 시선이었다. 그 사람, 김기종씨의 주장과 논리체계가 그렇게 낯선가? 시대에 뒤떨어진 극단적 민족주의자라 평하는 것은 적어도 현재시점만 떼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도 저사람의 생각이 극단적 민족주의자였나? 이런 질문을 해보는 사람이 없다는데에 난 충격을 먹었다.


그래서 난 링크한 글이 흥미롭긴 하다만 동의 못한다. 링크한 글은 저 사람의 생각이 과거에 비해 극단적으로 되어 문제가 된 것이고, 그 과정이 어떤 것일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난 그렇게 생각 않는다. 저 사람의 생각이 극단적인 것이 되도록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우리 사회가 무슨 사건을 어떻게 거치며 바뀌어왔는지 왜 저런 자들의 생각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 그냥 흐르는대로 유행따라 오다보니 저런 낙오자가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다행스럽게도 유행에 탑승하여' 일반의 사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사회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 진보세력이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하는 의식적인 거리두기를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일반적인 대중이었던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손쉬운 망각, '애초에 우리는 그런 극단적 민족주의를 가졌던 적이 없었다'는 식의 묘한 자신감. 난 여기서 소름이 돋는다.


분명 우리는 전보다는 나아졌고, 방향은 맞게 가고 있는것 같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바뀌었고, 임나일본부설에 맞서 삼한 분국설같은 똥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윤영관 교수한테 미국은 자국의 이익만을 내세워서 문제라고 따지던 운동권 학생의 모습에서, 이제는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달려가다 생긴 낙오자를 미친놈으로 단죄하는 걸 보니, 대한민국은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만 낙오자를 만들어내는게 아니라 사상 차원에서도 낙오자를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진심으로 두려운 마음이 든다.



"우리도 중딩때 퍼킹 유에스에이 불렀던거 알고 있잖아? 사회현상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그걸 기억 못한단 말야?"

"너나 나같은 20대 후반에게는 그런건 운동권에 관심있는 사람 외엔 굳이 인상깊지 않은 거야"

"그럼 그때 대학생이었던 우리보다 다섯 살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도 똑같아"

"그럼 우리보다 열 살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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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도어 공해

2015. 2. 8. 02:00 from 내 글/중문


자기계발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기로 유명한 공군 비행단의 생활에 비해 같은 공군 소속이지만 여가에 있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전방부대 병사들을 위해 전 사령관이 추진했던 사업 중 하나가 있다. 이른바 "병영생활 성공 STORY"라고 하는, 군생활동안 1인 1목표 달성을 계획하고 그 성취에 따라 포상휴가를 받는 제도였다. 가령 토익 점수 850점을 목표로 하였을때 그 목표를 달성하면 해당 토익 성적표를 제출함으로써 포상휴가를 받는 식이었다.


고의로 쉬운 목표를 설정해서 휴가를 따내지 않게 하기 위해 다소 양적인 제한기준을 두었는데, 예를 들면 토익점수는 몇점 이상이어야 한다든지, 한국사 같은 자격증의 경우는 1급이어야 한다든지, 책읽기라면 50권 이상이어야 한다(무조건 이 50이란 숫자가 기준이었다) 미친... 내가 대학생일때 중도에서 빌려서 읽은 책이 1년에 50권이 안되었을텐데... 아무튼 이런 기준을 세웠음에도 많은 친구들이 특별한 목표를 세우기 곤란했는지 책읽기 50권이라는 무지막지한 목표를 세웠다.


하루는 이 제도에 대한 모럴 해저드 사례를 가지고 얘기하는데 주임원사가 시 50편을 기준으로 삼아서 포상휴가를 나간 친구들이 많다고 해서, "시 50편"이 가능해요? 했더니 보시겠습니까 하고 내미는데... 한두장 보면서 참 뭐라 말해야 할지... 내가 평소 '글'이라는 것에 굉장히 이상적인 가치를 투여하고 있는, 순진한 사람이었구나 생각을 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지하철 플랫폼에 서있을때마다 스크린도어를 부셔버리고 싶게 만드는 저질 텍스트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이다. 도대체 이 멍청한 아이디어를 누가 냈는지 모르겠다. 왜 게시되었는지도 모르겠는 (서울 시민의 작문 수준이 이정도로 형편없습니다 하는 의도?) 병신같은 텍스트들이 수백개의 역 플랫폼마다 게시되어있는 꼴을 보자면, 차라리 일본처럼 사채광고로 도배되는게 낫겠다 싶은 생각마저 든다. 최소한 상업적인 이득을 위했다는 합리적인 이유가 하나라도 있을 테니까.


우리가 한번쯤 봐야 할 가치 있는 텍스트가 얼마나 많은가? 필부필부의 어거지같은 글을 보느니 차라리 릴케, 엘리엇, 랭보의 시를 싣든지, 한국의 시를 싣든지, 저작권이 문제라면 신인 작가들의 시를 돈을 주고 게시한다든지 적어도 이것보다 상식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주요 언론 주간지며 일간지 기사 수준이 낮아서 차라리 공짜로 인터넷으로 보겠다는 사회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하다못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제휴해서 대중가요 가사를 붙여놔도 이것보단 나을 것이다. 3호선 학여울역 8-2 플랫폼에 어느 아저씨의 서울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키치스러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저질시 대신 링딩동 링딩동 링디기딩디기딩딩딩 같은게 7개언어로 적혀 있어봐라. 외국인들 떼로 와서 사진찍고 난리 날거다.


수유역에는 모유수유의 유익함, 남성역에는 페미니즘의 역사, 국회의사당역에는 대한민국 헌법. 남영역에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개요. 전철 기다리면서 관심있는 사람이 잠깐 볼만한 내용은 얼마든지 있다. 오늘도 전철을 기다리며 어김없이 붙어있는 100% 확률의 지뢰 텍스트. 그것들을 인쇄하는 재료에 쓰인 자원과 그것들을 붙인 누군가의 에너지, 그 지뢰를 잠깐이라도 읽어보는 이용객들의 시간과 독해에 쏟는 에너지 낭비를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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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를 넘어서고 있네요.

다른 글에도 달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이 관점의 차이가 좌우이념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걸 좌우이념으로 대립하는거 보면 자기들끼리 판 깔아놓고 다투고 있는거 같아서 굉장히 불편해요.

오히려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세대갈등의 문제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르신들이나 보수 언론에서 얘기하는 좌편향된 이들의 폄하란 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지니는 이들 중에서도 나이를 먹은, 소위 민주화 세대에만 해당된다고 봐요.

사실 이 영화는 순수한 추억팔이 영화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때마침 등장한 토토가 덕분에 평소에 생각했던 "추억팔이 행위에 대한 이중잣대"가 거슬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추억팔이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따라서 어르신들의 다수가 공감하고 눈물 흘리는 영화라는 점에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거슬리는 건 추억팔이 행위가 아닙니다. 그 추억팔이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느냐죠. 전에 다른 글에도 언급했습니다만, 전 응사열풍도 별로 좋게 안봤습니다. 꿈도 미래도 없는 지금의 20대가 브라운관으로 대한민국 리즈시절의 캠퍼스 낭만을 대리만족하는 현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봤어요.

그래서 국제시장에서 경계해야할 것은 그 시절의 고생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느냐라고 봅니다. 그 분들이 정말 힘들게 살아온 건 맞습니다. 근데 그걸 오로지 나라를 위해서, 이 사회를 위해서 했다고 포장하면 안되죠. 그 시절은 자기가 살기위해 노력한 것이 결과적으로 나라의 발전으로 이어졌던 시대였죠. 정말 지금 어르신들이 그렇게 우리 사회를 위한 이들이라면 청년문제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선 안됩니다.

그들의 노력과 수고가 공동체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전 다른 논란에는 별로 말을 섞고 싶지않고, 이 부분만 얘기하고 싶습니다. 박정희고 독재정권이고 관심 없어요. 그 수고하셨던 어르신들이 현실에서 보이는 민낯이 뭐냐는거죠. 손녀같아서 가슴 찔러보고, 대학 나와서 월 200받는 직장도 못얻냐고 하고, 애를 안낳다니 참 이기적이라고 하는 분들께서는 제발 영화관 밖에선 딴소리만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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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고숑 2015.01.18 16:54 신고

    하필 장기 저성장의 시대로 들어서는 시점에 태어나서 고생.. 어쨌든 국제시장 덕분에 친척들 사이에서 개새끼로 통하게 되었음 ㅋ

    • addr | edit/del BlogIcon 어웅 2015.01.18 16:57 신고

      우리 부모님은 최근에 여기저기 또래들 만나보고 자식들 얘기 공유하면서 시각이 많이 바뀐듯....

  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고숑 2015.01.18 17:03 신고

    시각이 어떻게 바뀌신 거야? 우리 세대의 어려움을 공감해주시는 건가 ㅎ

    • addr | edit/del BlogIcon 어웅 2015.01.18 17:08 신고

      예전엔 강하게는 아니어도 막연히 이정도면 이정도는 하겠지... 였는데 나야 탱자탱자 하다가 이제 군대와서 비껴났다 치더라도 동생이 졸업하고 방황하는거 보면서 좀 충격을 먹으신거 같음. 그래도 자식들 대학보낸거 하나는 탑이다 생각했는데 취업에서 막히니....

      그런 배경에서 또래들을 만났더니 훨씬 심각하고 우리집보다 더 불안한 조건에 놓여있다는걸 알고.... 일단 되는대로 지원하는걸로... 뭐 공감도 공감이지만 내ㅏ 말하는 부분을 듣고 이해가 되신다는거 자체가 큰 변화

  3.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고숑 2015.01.18 17:18 신고

    이 시리즈 생각난다 ㅋㅋ http://erine.egloos.com/5064039

    '비교'에서 위안을 얻으셨다는 건 부모님이 아직 완전한 열반(혹은 체념)의 경지에 이르시진 않았다는 뜻이니.. 종종 갈등이 있겠군 ㅋㅋ 나도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고비 넘기면 숨 돌리고.. 그렇게 살아지는 듯하다 ㅋ 너도 동생도 취직전선에서 승리하시길!

'대한민국' 역사를 관통한 정치적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시작이자 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일 것이다. 어쩌면 그 한사람만을 위한 주제로 느껴질 정도로 그의 대한 평가는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사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로 이어질 정도다. 질리도록 나온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둘러싼 이야기를 보자니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것은 동시대 인물을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어떤 의미의 일인가에 대한 고려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하는 데에는 결국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가의 관점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세종대왕이 노비들도 출산휴가를 주게 했다든지 이런게 지금에서 주목받는건 그만큼 출산복지 부문이 2010년 현재 대한민국이 관심이 있는 분야라는 뜻이며 지금에 와서는 그런 류의 기록들이 눈에 들어오니 그런것이다. 




난 꾸준히 얘기하지만, 그가 능력이 있었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있었다. 공이 있었는가? 묻는다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역사적 평가를 묻는다면 단호하게 "현 시대에서 박정희 가치는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엄연히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2010년대의 대한민국이 독재자에 대한 향수에 젖어있다는건 슬픈 일이다. 아니 그 자체는 그럴 수도 있다고 쳐도, 민주화된 사회에서 태어난 이들이 "역사적 평가"라는 어느 정도의 시공간을 뛰어넘은 객관의 동굴에 숨어서 이런저런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게 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도 실향민의 목소리가 줄어드는 눈치를 보며 통일 반대를 부르짖고 있고, 21세기에 실행하는 친일파 청산은 아무런 의미없다고 생각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긍정하는, (예전이라면 절대 자신있게 말하지 못할 것들을 주장하고 있는) 비겁한 사람이다. 


하지만 정치인, 특히 현재의 정치체제를 갖춘 국가에서 대통령을 했던 이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는지는, 하다못해 일제시대의 저명한 인사들보다도 훨씬 조심스럽게 행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주장들을 보면, 그런 부분이 현재 살아있는 대선후보 중 누굴 지지하는가 정도의 간편한 기준으로 취급되는 걸로 보이니 답답한 마음이 든다.




"당신은 박정희에 대해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질문을 명확히 해서 "지금 시대에 박정희 가치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수 있는가?"로 아예 질문이 바뀌든지,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묻는 저 질문의 문구는 그대로 놔두고 저 질문은 자동적으로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로서의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 대한 질문이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지든지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다들 역사학자도 아닌데, 왜 하필 박정희란 인물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를 논해야 하며, 또 그것을 가지고 너는 주관적이니 나는 객관적이니 헐뜯으며 격하게 논쟁해야 하는가? 그것은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제갈량에 대한 평가, 세종대왕이나 정조에 대한 평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평가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라는 점을 논쟁하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이므로 박정희에 대한 평가도 냉동질소와 같이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 이들은 이 모두를 같은 선상에 놓고 있다.


어떤 이는 박정희의 '과'만을 들먹이며 가혹한 평가를 내리는 이들에 반발하여 자신이 '공'을 강조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공과 과를 전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은 공과 과를 모두 보는 균형잡힌 시각을 가졌지만 저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가 독재자임은 자신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정말로, 정말로 그렇다면 이 논쟁은 전 국민이 역덕후가 아닌 이상 아무런 실익이 없다. 정말 그들이 박정희가 독재자임을 잘 알고 있다면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박정희가 가진 가치에 대한 결론은 났다.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진정으로 우선해야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점한다면, 이 논쟁은 당장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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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지나가다 2014.12.15 18:00

    지나가다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긍정한다는 뜻은 이해가 잘 안되네요.
    일제가 조선에 들어와서 철도 등 각종 기간산업들을 시작하면서 조선이 근대적으로 성장했다는 뜻인지요? 글쓴이는 키워서 잡아먹는 식민지 논리를 모를것 같진 않은데.. 어떤면에서 긍정한다는건지요?

    • addr | edit/del BlogIcon 어웅 2014.12.17 19:10 신고

      식민지 근대화론의 요지는 식민지기에 일본이 근대화를 시켜줬다가 아니라, 식민지 시기에 식민지의 형태로 근대화가 진행되었다 라고 보아야 맞을 것입니다. 애초에 식민지 근대화론이라 명명된것도 기존에 우세했던 "자본주의 맹아론"을 반박하는데서 그 시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물론 일본제국의 선의의 의도가 있었다거나, 결과적으로 잘됐으니 좋은게 좋은거지 라는 가치판단까지 포함하여 사용할수도 있겠지만(이게 현재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고 불리는 것의 정체라고 봐야 맞겠군요) 저는 그런 의미로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예전에는 낙성대연구소의 경제사학자들도 이 부분을 '오해'로서 꽤나 강조했는데 지금에 와선 자신들이 흑화해서 뻘소리를 내뱉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군요. 요는 식민지 근대화론에서는 일본제국의 '의도'를 보지 않는다는 점이며, 따라서 식민지 형태로 근대화를 겪었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 제국주의 옹호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1박2일이 지역경제를 살렸죠"



1박2일, 여수박람회 등 근래 국내관광의 수요 증가로 지역경제가 관광산업으로 살아나고 있다는 류의 주장(혹은 분석)이 있다. 글쎄 외지인 방문이 늘긴 했는데 그게 지역경제가 산 건지는 잘 모르겠다. 특정 구역 지역상인이 살았지. 물론 1박2일의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긍정적인 것이라고 말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갈 데 찾는 서울/수도권 주민들에게야 긍정적이었겠지. 하지만 그 지역 주민들의 관점에선 근래의 지방의 수도권민을 위한 관광지화가 무조건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미 많은 맛집들이 맛이 변해서 가지 않는다는 얘기들이 있고, 한 지인은 극단적으로 말해 "서울 사람들은 전주 사람들이 버린 곳만 가는것 같다"고 얘기를 한다.

물론 수도권민이 죄인이라는 건 아니다. 목포 같은 경우 10년전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많은 사람들이 차끌고 내려오자 북항 회타운 일대에서 상인들이 제주도급 거품장사를 했다. 지금은 많이 까여서 좀 내려앉았지만. 어쩌면 관광산업이라는것의 본질이 결국 그런 호갱장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단기적으로는 지역주민이 명소를 잃었으니 피해의식인 것은 맞지만, 장기적으로도 이게 바람직한지 생각해봐야한다는 점이다. 지역에서 세운 평판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 기존의 명소가 질적 평가를 통한 지역주민들의 평판 형성을 통해 만들어졌다면, 지금은 서울에서 내려온 인지도가 다른 모든 요인을 무시할정도로 강력해서 그것 하나만으로도 경제적 수입을 보장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다같이 질적 저하가 이루어진다는 의미. 망해야 할 곳이 망하지 않고, 살아야 할 곳이 망해야 할 방법을 좇아 길을 떠나고 있다.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1박2일이 지역경제를 살렸다는 명제를 보고 울컥해서 써본다. 그 말은 제주도 경제를 요우커들이 살려줬다는 얘기나 다름이 없다. 1박2일은 지역경제를 살렸을지 모르나, 지역명소를 다 죽였다.




+) 당시 강호동의 호들갑이 너무나도 순진한 서울시민의 그것이어서 혐오했었고, 1박2일도 별로 좋게 보지 않았지만, 지금 1박2일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 오히려 시대의 흐름을 잘 짚은 훌륭한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의 1박2일은 상징의 의미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 그 지역 상권이 살았다고 해서 부가 지역민에게 돌아가지 않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이미 그렇게 핫한 지역은 서울 자본이 유입되어 있는 지역이 많다고 한다. 서울 자본이 서울 음식으로 지방의 경관을 끼고 서울사람 상대로 장사하고 있는 것.

+++) 물론 여가문화의 확산으로 일어난 일시적인 과도기의 문제일수도 있다. 사회의 변화로 명소의 기준이라든지 평판이 재편되는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다만 수도권과 지방이 가진 자원(소비자 파워, 자본 파워)이 너무 압도적으로 차이가 있기에, 이 일방적인 방향의 재편과정이 난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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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을 돌이켜보면.... 난 어쩌면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사람들의 추천이나 인식과는 반대로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16살때 과학고가 아닌 일반고에 그것도 인문계로 진로를 결정했을때 부모님을 제외한 나를 아는 모두가 그 결정에 의문스러워했던 기억은 아직도 내게 큰 영감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3년 뒤 법대가 아닌 사회과학계열에 지원했을때, 또 모든 사람들은 그 선택에 대해 당사자보다 더욱 아쉬워해주셨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라는 인간을 만드는 데 있어선 정말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군대에 안맞는 내가 군생활을 2년이 아닌 3년 하게 될줄 누가 알았겠으랴. 그것도 말단에 숨어서 행정업무만 하는게 아닌 전방 부대에서 나서서 사람들과 부대껴야하는 일이 될줄은 나도 예상못했다. 모두들 걱정했고, 나도 걱정했는데 지금 보니 생각보다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이젠 전역 후의 삶에 대해 모두들 너라면 당연히 대학원을 가는줄 알았다고 한다. 하긴, 내내 취업과 담 쌓고 산 녀석이 갑자기 취업하겠다고 하니 나라도 이상하게 느껴질것 같다.


돌이켜보면 다 그렇다. 내 선택에 대한 의문의 시선은 정말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영어도 못하는 놈이 왜 잘하던 수학 과학을 버리고 인문계를 선택하고, 법대 가겠다고 그 인문계를 선택한 녀석이 사회대에 가고, 군대 가기 싫다고 버티던 놈이 정작 3년이나 군생활을 하고, 사회대에 가서 글쓰고 공부만 하다 졸업한 놈이 갑자기 취업을 하겠다고 하니.


그렇게 살아왔다. 고민은 남들과 비교해 정말 길다. 대놓고 나한테 그런 고민으로 몇년을 보내고 있으니 속편해서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 세수하다 풀리는 수학문제처럼, 어느날 갑자기 결정하게 되면 신기하게 이상한 확신이 든다. 그 확신은 어쩌면, 사람들의 합리적인 의아함에 대해 한번 결과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선택의 결과가 자랑할만큼 엄청나게 대단하거나, 어딜 가든 정상의 자리에 섰고 그런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합리적인 타인들의 걱정보다는 큰 문제가 없이 잘 지내왔고(오히려 그들의 예상보단 기대이상으로 잘 살았고), 그런 경험들이 나를 계속 살아갈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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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만 하면 쉽게 씹을수 있는게 정부 및 공직자들이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뭔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럴리가. 다 우리 주변에 있는 월급받고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근데 정부의 무능함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리가 평소에 비상시를 대비한 어떠한 조직의 필요성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평시에도 비상시를 위한 준비만을 하는 그런 조직. 지금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것은 당연한거 아닌가. 다들 평소에 기본업무에 치여있는 사람들인데. '경험'으로 땜빵하던 관례에서 그나마의 경험도 이번 정부의 조직개편땜에 다 날라가버린 구조라고 들었는데. 


일개 식당 서빙 알바조차 손님 없어도 쉬는 꼴을 못보고 쓸데없이 서있어야 하거나 본임무도 아닌 청소를 시키는 문화에서, 평소에 업무에 치여 죽지 않으면 다 놀고 먹는다고 말하는 문화에서 어떻게 갑자기 능숙한 비상시 대처능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단 말인가. 매뉴얼? 모르는 소리 말기를. 우리나라 공직자들 매뉴얼 졸라 잘만들어. 


수많은 교범과 매트릭스가 있어도 그걸 써보는 훈련을 할 시간도 없고, 비상시만을 대비한 전문조직을 키우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게 왜 필요한지 이해하는 문화도 없고. 이제 결말은 둘 중 하나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대통령을 비롯한 윗선에서 "철저 강조" 지시나 문서 내리면 실무자들 납작 엎드려 개쪼이다가 몇달 뒤에 아무일없다는듯 풀어주거나, 그나마 머리가 조금 돌아가서 비상시 대책을 주임무로 하는 상설 기구를 만들었다가 몇년뒤 먹고 논다고 잡업무 투입시키다가 돈먹는 하마소리듣고 축소 폐지되거나. 


산소 투입이 어제 밤에 되나 오늘 아침에 되나 이런게 중요한게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을 말할 때가 와도 그 손가락은 아무도 보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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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마오 동정론

2014. 2. 24. 11:34 from 내 글/중문
이번 올림픽 피겨 경기를 얼마 앞두기 전, Fulton과 얘기를 하다가 아사다 마오에 대한 내가 갖는 인간적인 연민을 꺼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안됐다"라는 내 결론에 대해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런 마음을 가질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피겨라는 종목에 대한 애정이 나보다 강한 그로선, 단적으로 마오 때문에 안도 미키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생각하면 절대 그런 말은 할수가 없다고 했다. 뭐, 물론 내가 말하고 싶었던 연민의 이미지는 "자기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기최면을 가장한 정신승리만 해대다 벼랑끝에 몰려 이제 객관적 현실이란 절망과 마주할 그 상태를 생각하니 참 안됐다"의 의미였지만, 그의 그런 반응은 나의 그 정도의 생각도 받아들일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그런데 Fulton의 언급은, 나의 마오에 대한 생각보다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대다수의 한국 네티즌들이 지닌 감정에 더 파괴력을 가지는 일갈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도 수고했다는, 미운정이 들었다는 그 '동정론' 말이다.

나는 앞서 이번 올림픽 여자 피겨의 결과를 두고 벌어지는 한쪽에서의 분노의 릴레이와, 그 분노를 아니꼽게 바라보는 이들의 격한 의도적 찬물세례를 보며, 왜 우리는 자기검열 하느라 순수하게 분노도 하지 못하는가 싶어 참담한 마음에 그 찬물 얹는 '소방수'들에게 조까라고 기름을 한껒 끼얹는 글을 썼었다. (지금은 그 기름이 너무 휘발성이라 기름때끼고 꼴사나워 지웠다.)

나는 평소에도 한국=절대선에 입각한 이중잣대나 비이성을 경계해오고 남부끄러워했던 사람인데, 김연아를 둘러싼 판정시비에 대해 순수하게 분노좀 해도 되는거 아니냐? 왜 우리는 그렇게 막나가게 분노하거나, 막나가는 그 사람들을 욕하면서 애써 감정을 억누르려 하는두가지 중에서만 선택해야 하는가? 별 관계없는 외국인들도 순수하게 기분나빠하는데, 같은 국적 사람이 좀더 격하게 기분나빠하는게 자연스러운거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근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지금 한국 네티즌들이 보이는 아사다 마오 동정론에 대해서는 전혀 긍정을 해줄수가 없다. 마오 동정론이라는것 자체가 기존의 한국사람들이 아사다 마오를 비판하고 비아냥댄 이유가 평소에 그렇게 근거로 들던 '실력에 비해 특혜를 받아온 선수'라서가 아니고 "우리 김연아를 위협하는 같잖은 악마"였기 때문임을 증명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김연아의 이번 판정에 대해서는 "불공정함"을 근거로 앞세워 분노하면서, 그런 불공정함으로 이득을 가장 많이 취하고 가장 다른 선수들을(특히 일본선수들) 괴롭혔던 마오는 동정하고 있다니.

정말 내셔널리즘의 비이성적인 모습을 건드리고 싶다면, 불공정에 대한 자연스런 분노의 감정을 광기로 치부하고 비웃고 말게 아니라 바로 이런 것을 건드려야 맞다. 넓게는 이준석을 비롯해 수많은 필부필부 똑 부러지신 양반들아.

+) 지금 소트니코바는 개썅년이 되어 있는데, 마오는 수고했다고 '미운정'이 들었댄다. 그래 미운정, 이 얼마나 솔직하고 정확한 표현인가. 이게 바로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외국인들에게 들이미는 그 한국인의 '정'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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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얘기하자. 빅토르 안의 선전과 한국 대표선수들의 부진이 몰고 온 이 여론에 대해 적어도 내 주변에서 쇼트트랙을 깊게 아는 사람일수록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용기를 내어 반론하기보다는 그냥 지켜보다 짜증을 내고 있는 수준이라 반론이 잘 안보이는것 뿐이다.



섬노예 문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것 같아 느끼는 무력감이 분노를 한층 더하지만, 쇼트트랙 문제는 과거의 불신이 현재의 불신이 되어 도리어 진실을 가리고 있다. 덧붙여 이번 오판의 원인에는 개인의 영달을 위한 행동이 어느 수준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미개한 인식이 있다.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가 좋은 조건이 맞아 기회를 찾아 나간것이라는 가설 자체가 전혀 통하지가 않는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고 수많은 흑막과 추측이 난무하는 현 상황에서 이토록 합리적인 가설이 대두되지 않는, 아니 대두되어선 안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끔 개인이 기회를 좇아 국가를 넘나든 것이라는 가설이 등장하면 수십명이 달라들어 나라가 버린 비운의 주인공 서사를 방해하는 사문난적으로 몰고 간다. 이따위 인식 수준은 90-00년대에 한창 있었던 기술유출, 국부유출 드립의 연장선상이라 할만하다.



또다시, 개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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