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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12.05 나는 자유를 말하고 싶은데 (1)
  3. 2010.11.10 너랑 안 놀아
  4. 2010.10.19 내가 KFC를 가는 이유

잉여예찬

2010. 12. 6. 20:00 from 내 글/중문


한 한국인 교수[각주:1]가 미국에서 학생으로 공부하던 시절, 그의 지도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헤겔식의 역사주의에 젖어 있는지 모르겠군. 그 색깔 고치는 데만 10년 가까이 걸린다네. 근데 자네는 다행히 한 3년밖에 안 걸린 것 같군” 모든 과목에서 ‘계승’과 ‘발전’을 위한 ‘노력’이 올바른 결론으로 등장하는 한국의 교과서를 떠올린다면 허투루 나온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싶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다. 10대 때 하지 않으면 안 될 30가지, 20대 때 하지 않으면 안 될 40가지, 30대 때 하지 않으면 안 될..... 그따위 책들은 안 읽지만 실제로 고등학생 때 나는 한 달에 한번 수능 모의고사라는 관문을 넘어야 했고, 이제 대학에 와서는 일주일에 한두 개 꼴로 ‘내 글’을 써내야 한다. 사실 나는 같은 처지에 놓인 동기나 학우들에 비해 훨씬 여유를 부리는 편인데도, 종종 제대로 쉰 적은 없다는 뻔뻔한 생각을 한다. 왜 뻔뻔하냐면, 다들 내 생활을 실제로 들으면 좀 더 성실해지기를 촉구하니까. 한국인은 모름지기 부지런함이 생명이다. 과업과 약속으로 꽉꽉채운 달력을 보면서 흐뭇해해야 하니까.
 


 
 
지난주 수업을 들으러 220동을 걷던 중 멈칫하며 생각했다. ‘그래, 다시 이 시기가 온 것이구나.’ 요즘 나는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고, 가시적인 성과도 없이 계속 불만족스럽고 답답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인가 확신과 열정에 차서 굴려왔던 몇 가지 머릿속 생각들도 다 쏟아내고 났더니, 그 다음부터 만들어지는 생각들은 죄다 흐릿한 것들이다. 이제는 아예 생각하는 일조차 귀찮아지고 있다. 아마 지금 시점에 <파우스트>를 읽고 글을 써내야 했다면 그 글보다 훨씬 흐리멍텅한 글이 나왔겠지.
 

 
 
그러나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다. 다시 ‘이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이런 현상을 그리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는 이야기다. 그 당시에는 지지부진하다고 느껴왔던 그 때가, 곰곰이 지나 생각해보면 스스로가 가장 뚜렷하게 성숙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성장통이라는 것은 신체적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듯이, 머릿속에 맴도는 열병같은 답답함 속에서 우리는 한층 성장하는 것이다.
 

 
 
아무 하는 일 없어보이는 잉여생활에서 창조성이 나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여가에서 생산이 나오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하기 위해선 놀아야 한다. 그것은 ‘정체’나 ‘퇴보’가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조화로운 삶을 이루어낼 부분인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한가로운 생활을 하길 원하면서도, 막상 그러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만족하기보다는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며 후회한다. ‘오늘 하루 정말 할 일없이 보낸 것 같아’, ‘좀 더 생산적으로 알차게 보낼 수 있었는데’ 하면서. 그 죄책감은 누가 심어 놓은 것일까. 니체가 기독교의 원죄와 양심의 가책의 문제를 뒤흔들어놓듯, 이제 우리도 그러한 ‘보람찬 하루’의 도덕적 강박관념에서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1.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임 모 교수라고 한다. 본문의 이야기는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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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를 말하고 싶은데, 수많은 의식 있는 사람들은 일단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연대의식이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연대의식이 아주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도 그 이야기에 동감한다. 그런데 난 개인의 자유를 말하고 싶다. 누구에게도 함부로 간섭받지 않을 자유가 너무 고프다.
 


 
 
어릴 적부터 내 눈에는 닮고 싶음의 광경보다는 보기 싫음의 풍경이 더 많았다. 존경하는 인물은 예전부터 없었고, 결국 없었고, 지금도 없다. 닮고싶다는 마음보다는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내 마인드를 지배했다. 심장이 뛰는 한은 내 머릿속에선 ‘타산지석’의 원리가 진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경계했었던 것은 ‘오지랖 넓은 사람’이었다. 개인과 개인과의 거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 혹은 그 실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을 경멸했다. 개인의 사사로운 영역, 신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간섭하고, 타자인 주제에 타인의 내면을 제 뜻대로 조작하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그것을 선의로 변호하며, 관심과 정이라고 부르며 장려한다.

 

 
 
간섭받기 싫은 나는 누구에게도 절대로 간섭하는 존재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기본적인 사교성/사회성이 현저하게 떨어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실 20세까지 객관적인 내 성격은 그 누구도 도저히 어울리기 어려운 존재였다. 꼬장꼬장한 나를 감당하고 받아주었던 사람들이 고마울 뿐.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여성과 한 자리에 마주하면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말도 더듬더듬, 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힐끗힐끗했다. 수능 끝나고 그것을 극복하는데 두 달 가량 걸렸던 것 같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개념도 전혀 없었고, ‘공감’과 ‘이해’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다. 이런 녀석이 사회학과에 오다니, 재밌는 일이다.
 


 
 
다행히 이제는 사회성과 사교성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인식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대학생이 되어 그 이전과 비교해 가장 변한 것이 있다면, 사교성에 대해 첫걸음을 내딛었고 그것을 잘 하려고 애썼다는 점인 듯하다. 그러나 유예된 학습영역이 아직도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데, 아직 제대로 연애를 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가 그 증거가 되겠지 싶다.
 


 
 
또 너무 바깥으로 샌 것 같다. 항상 이렇게 내 생각을 말하다보면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보충하려고 내 생애환경을 주저리주저리 말하게 되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사회학도이기도 하고 사회성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잘 느끼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개인의 자유, 한국사회에서 고사 직전인 진정한 자유를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인’과 ‘자유’를 강조하면서 ‘사회적 연대’를 배제하거나 그와 대립하지 않고 아우를 수 있을까?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연대, 둘 다 한국사회에 결여되어있는 아주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나는 학자가 될 능력도 의사도 없지만, 이 문제는 어쩌면 평생 내가 지고 갈(아마 한국사회를 떠나지 않을 테니) 고민이자 화두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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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nah132 2013.09.01 23:18

    멋진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너랑 안 놀아

2010. 11. 10. 17:30 from 내 글/중문


 
이것을 실제로 시도해보는 것은 너무나도 비윤리적이므로, 사고실험으로 대체하여 한가지 가정을 해보자. 어린아이를 끊임없이 괴롭혀 스트레스를 주자. 마주칠때마다 약올리고 놀려보자. 어린아이는 참다 참다 견디지 못할 때 무슨 말을 할까. 물론 때리고 꼬집고 하는 폭력적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어디서 배웠을지 모르는 “시발 죽여버린다” 같은 말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만큼, 혹은 그런 것보다도 더 주체적인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말,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아닐까. 
 
 
 
“이제 너(선생님/아빠/아저씨)랑 안 놀아(놀 거야)”
 
 
 
 
 
일반적인 사회과학이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인간은 ㅇㅇ적 동물(존재)이다’ 라는 명제에 각 용어를 넣으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치학은 빈칸에 정치를 넣을 것이고, 법학은 법, 경제학에선 경제, 문화인류학에서는 문화, 그리고 사회학에서는 사회를 넣어 완성하겠지. 그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 사회학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기본 전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의식주 다음으로, 혹은 의식주와 맞먹을, 아니 의식주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는 인간의 기능이 인간의 사교성이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너랑 안 놀아” 라는 말은 얼마나 엄청난 선언인가. “너랑 안 놀아” 하는 어린아이의 말이 우습거나 유치하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성인이지만, 결국 심층으로 파고들면 ‘관계의 단절’, ‘버림받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에게나 크게 자리잡고 있다. 연령에 관계없이 사교활동의 일방적인 박탈은 본질적인 두려움을 부르는 코드인 것이다. 단지 어린 시절의 “너랑 안 놀아”가 청소년기엔 “야 너 나랑 아는 체 하지 마라”가 되고 성인이 되면 “우리 헤어지자” 혹은 (잔인하게도!) 그런 선언조차 하지 않는 의뭉스런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부모가 아이에게 “쟤랑 놀지마” 라고 하는 말은 또 얼마나 엄청난 말인가. 요즘은 잠도 마음대로 못 자게 하는 한심스러운 엄마도 있다.[각주:1] 그런데 “쟤랑 놀지마”라는 류의 말은 (잠의 통제를 잔인하다 생각하는 부모들까지 포함해서) 어느 누구나 거리낌없이 자녀에게 하고 있다. 무관심하게 혹은 자녀보호의 사명감에 넘쳐서 말이다.(후자가 더 위험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관점으로 보면, 내 생각에 그 말은 아이에게 있어 최소한의 영역의 자율성조차 박탈하는 무자비한 말이다.
 
 

  1. 내가 이래가지고 몬산다 동영상.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Ff3w8VDLTKw$ 공부를 시킨답시고 졸려서 쓰러지기 직전인 아이가 쉬는 것을 계속 통제하고 방해하고 있다. 아이의 어른스러운(?) 표현이 웃음을 자아내어 유명해졌지만, 그 말이 나오는 배경을 보면 씁쓸함을 피할 수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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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KFC를 가는 이유

2010. 10. 19. 20:30 from 내 글/중문
나는 KFC 예찬론자다. 비단 KFC뿐 아니라, 평균 2-3일에 한번은 맥도날드나 KFC같은 패스트푸드로 해결한다. 하루 세끼를 다 챙겨먹는 일은 드물고, 보통 오전 늦게 일어나면 점심 건너뛰고 저녁 한끼, 아침에 일어나면 점심 저녁 두끼를 먹는다. 그러니까 2-3일에 한번 꼴이라는 것은 끼니로 치면 네끼 중 한끼를 패스트푸드로 해결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 내 식습관을 아는 사람들이 예전에 내가 어떻게 먹어왔는지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내가 1년 365일 중에 330일 이상 지켰던 원칙? 습관?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침식사를 반드시 먹는 것이었다. 그것도 밥/된장국/생선구이로 이루어진 제대로 된 식사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패스트푸드를 먹은 경험은 아마 10번도 되지 않을 것이다. 목포 시내에서 친구들끼리 돌아다니다 마땅한 곳이 없어 영화보기 전에 한 끼 때울 때 갔겠지. 내가 패스트푸드를 먹게 된 것은 스무 살 이후에 생긴 습관이라는 것이고, 그 시기는 내가 대학생이 되어 상경한 시기와 일치한다.

그럼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아 자취하느라 밥 해먹기 힘들고 귀찮아서 그렇게 식습관이 안 좋게 변했구나?” 이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가 아니다. ‘자취’가 핵심이 아니라 ‘서울’이 핵심이어야 한다.

내가 패스트푸드를 찾는 것에는 맛에 있어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서울의 패스트푸드가 지방의 패스트푸드보다 맛있다. 목포에선 그냥 버거였는데 서울에선 맛있는 버거였다. 둘째로 서울의 패스트푸드가 서울의 다른 음식들보다 맛이 좋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더 선호할 수밖에.

그러니까 난 서울을 벗어나면 절대 패스트푸드점을 가지 않는다. 패스트푸드라고 해도 버거 쌓는 기술 같은 것이 중요한 것인지? 지방에선 빵 따로 야채 따로 돼서는 양상추가 푸성귀 시래기처럼 보여 보기에도 김빠지는 경우가 흔하고, 맛도 없다. 그리고 다른 음식들을 제치고 패스트푸드를 먹어야 할 이득이 별로 없다. 서울버거보다 맛도 떨어지는 걸, 다른 음식들보다 비싼 가격에 굳이 먹어야 할 이유가 없다. 내가 정말로 패스트푸드를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프로야구의 모 심판이 만약 요리사였다면, 혹은 내가 그의 가치관을 빌리자면(?) 서울의 대다수 음식은 혼이 들어있지 않다. 혼이 없는 맛[각주:1]이다. 4번 먹으면 볼넷이고, 16번 먹으면 밀어내기다. 목포에서는 무엇을 먹어도 음식을 먹으면 물리적으로 위가 차는 것 외에 뭔가 속에서부터 든든해지는 차오름을 느꼈다. 그러나 서울에서 밥을 먹으면 그런 즐거움은 없고 그냥 노동으로만 느껴진다. 먹고 나면 힘이 나야 되는데 오히려 뭔가 내 몸에서 기가 빠져나간 느낌이다.

결국 나는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의 습관을 충실하게 지켜온 사람으로서 맛을 위해 습관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맛을 포기하고 한국인다운 식습관과 위장건강(?)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결과는? 이제 나물과 쌀밥은 집에서만 먹는다. 과장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끼 정도 먹을 게다.

앞으로도 광화문의 미진 정도가 아니라면 서울에선 절대 5천원씩 주고 맛없는 음식을 한식이라는 이유로, 밥이라는 이유로 먹지는 않을 것 같다. 그곳은 냉메밀로 유명한 곳이지만, 우연히 보쌈정식을 주문하고는 밥과 김치를 먹었는데, 놀랍게도 몸에서 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곧 새로 지은 학교 건물에 파파이스가 들어선다고 한다. 패스트푸드계에서 감자튀김 외에는 모든 것이 최악 수준인 프랜차이즈지만, 가게가 열리면 시험삼아 한번 가볼까 싶다.
 
  1. 한국프로야구의 김모 심판은 스트라이크 존이 일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야구팬들에게‘한가운데로 공이 들어와도 투구에 혼이 실려있지 않았기 때문에 볼이다’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참조링크 : http://pds15.egloos.com/pds/200907/14/65/d0074465_4a5c6415605ce.jpg)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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