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만 말하는 언론, 김기종 말하지 않으려는 진보 세력

[옥인동 샤우팅]80년대 열혈 운동권은 왜 불행한 개인이 되었나



후반부는 그냥 개나 주는 걸로 하고, 전반부에 있는 글쓴이의 문제의식이 그나마 덜 식상해서 링크해둔다.



-


솔직히 그렇다. 내게 미국 대사가 대낮에 칼부림을 당했다는 사실만큼이나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범인을 '낯선 광인'으로 대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진심어린 시선이었다. 그 사람, 김기종씨의 주장과 논리체계가 그렇게 낯선가? 시대에 뒤떨어진 극단적 민족주의자라 평하는 것은 적어도 현재시점만 떼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도 저사람의 생각이 극단적 민족주의자였나? 이런 질문을 해보는 사람이 없다는데에 난 충격을 먹었다.


그래서 난 링크한 글이 흥미롭긴 하다만 동의 못한다. 링크한 글은 저 사람의 생각이 과거에 비해 극단적으로 되어 문제가 된 것이고, 그 과정이 어떤 것일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난 그렇게 생각 않는다. 저 사람의 생각이 극단적인 것이 되도록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우리 사회가 무슨 사건을 어떻게 거치며 바뀌어왔는지 왜 저런 자들의 생각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 그냥 흐르는대로 유행따라 오다보니 저런 낙오자가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다행스럽게도 유행에 탑승하여' 일반의 사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사회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 진보세력이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하는 의식적인 거리두기를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일반적인 대중이었던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손쉬운 망각, '애초에 우리는 그런 극단적 민족주의를 가졌던 적이 없었다'는 식의 묘한 자신감. 난 여기서 소름이 돋는다.


분명 우리는 전보다는 나아졌고, 방향은 맞게 가고 있는것 같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바뀌었고, 임나일본부설에 맞서 삼한 분국설같은 똥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윤영관 교수한테 미국은 자국의 이익만을 내세워서 문제라고 따지던 운동권 학생의 모습에서, 이제는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달려가다 생긴 낙오자를 미친놈으로 단죄하는 걸 보니, 대한민국은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만 낙오자를 만들어내는게 아니라 사상 차원에서도 낙오자를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진심으로 두려운 마음이 든다.



"우리도 중딩때 퍼킹 유에스에이 불렀던거 알고 있잖아? 사회현상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그걸 기억 못한단 말야?"

"너나 나같은 20대 후반에게는 그런건 운동권에 관심있는 사람 외엔 굳이 인상깊지 않은 거야"

"그럼 그때 대학생이었던 우리보다 다섯 살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도 똑같아"

"그럼 우리보다 열 살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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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는 사회

2015. 2. 25. 09:05 from 책/짧은 리뷰


신 없는 사회, 필 주커먼 지음, 김승욱 옮김, 마음산책, 2012




신없는 사회

저자
필 주커먼 지음
출판사
마음산책 | 2012-04-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신 없는 사회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들이 만드는 현실 속 유토피아근...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인류학적 민족지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술술 읽히기도 하면서, 여러가지 사례들을 참고하기에는 괜찮은 책이었다.



"덴마크인과 스웨덴인은 대부분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덴마크인 중 82퍼센트가 인간의 진화에 대한 다윈 이론의 증거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이는 서구 세계에서 진화론을 믿는 인구 비율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숫자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대부분의 덴마크인과 스웨덴인은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성경의 신성함을 거부하고, 예수를 믿지 않고, 죄악이나 구원이나 부활도 믿지 않고, 심지어 하느님도 믿지 않으면서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다니. 나는 1년간의 연구에서 이 의문을 반복적으로 파고 들었다"(p.26)



본인을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로 규정하는 저자는 열성적인 기독교적 메시지가 가득한 미국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 미국 사회학자에게 있어서 1년여간의 덴마크/스웨덴 생활은 신선한 충격과 즐거움을 선사했을 것이다.



적지 않은 덴마크, 스웨덴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례들을 보자.

- 동정녀, 부활에 대한 질문 -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다

- 교회를 정기적으로 다니는가 - 그렇지 않다. 하지만 교회세를 낸다. 견진성사를 받고 교회에서 결혼을 한다. 그것이 우리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종 취급을 받는다. 

- 종교적인 것에 대해 백지상태. 평소에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 그런 질문은 성적인 것보다 더 사적이고 개인적인 질문으로 취급받는다.

- 교회도 안가고 신도 믿지 않지만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성서는 지혜의 보고로서 읽을 가치가 있으며, 기독교인의 의미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예의바른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런 부분을 문화적 종교라고 명명하며 그 특징을 세가지 정도로 요약했다. 

1. 교회라는 건축물과의 관계 : 긍정적인 건물이다. 공동체의 기념물이자 문화적 유산으로 간주된다. 교회에 가진 않아도 교회 건물을 좋아하며, 그곳에서 결혼하기를 바란다.

2. 성서와의 관계 : 성서는 본질적으로 신성하지 않다. 그러나 그 책은 좋은 책이며, 고대로부터 내려온 품위있는 도덕과 가치관의 저장고이자 지혜와 통찰력으로 가득찬 중요한 이야기들을 모은 훌륭한 책, 역사서로 생각한다.

3. 정체성의 문제 : 대부분 기독교인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며, 무신론자로 규정하는 것을 매우 꺼린다. 무신론자는 부정적이고 전투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한편 한국은 통계적으로 봤을때 미국보다는 덴마크/스웨덴에 가까운 세속적인 사회에 가까운 결과다. 저자도 지속적으로 일본과 한국을 종교색이 옅은 세속적인 속성을 공유하는 나라들의 예로 지목하고 있다. 처음엔 이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판단이 크게 봤을때는 맞는것 같다. 적어도 일부 개신교인들 외에는 미국처럼 공개석상에서 신의 은총, 저주 운운하지 않으며 정치문제보다도 종교문제에 대한 대화를 더 꺼리고 있다. 번역자 후기를 보면, 한국인 독자들에게는 덴마크보다도 미국의 현실이 더 인상깊지 않을까 라는 촌평을 달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덴마크에서 미국을 1년 경험한, 저자와는 정반대의 경험을 한 모르텐의 이야기로 책을 끝맺는다.


덴마크에서의 인터뷰(2005) : 하느님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더 큰 무언가가 있다고는 생각한다. 어릴적엔 기도도 했엇고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그게 뇌의 착각일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은 든다.


미국에서의 인터뷰(2007) : 종교적인 믿음을 개인적으로 간직하지 않고 자기 신앙심을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게 놀랍다. 자동차 범퍼에, TV와 라디오에 노골적으로 나오는 메시지들을 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정치인들도 문제가 생겼을때 하느님께 기도한다는 식으로 답변하는 건 충격적이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난 하느님을 믿는 기독교인이었지만, 덴마크식 기독교인이었지. 성경에는 말이 안되는 이야기가 아주 많아. 그래도 나는 하느님이 저 위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규칙도 만들려고 애쓴다고 들었어. (...) 그런데 여기 와서 사람들이 전부 노골적으로 나서서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고 동정녀에게서 났다고 말하는 걸 본거야. 그런걸 죽 보며 내린 결론이, 내가 기독교인이 되려면 이런걸 다 믿어야 하는구나 였지. (...) 내가 믿어야 하는 주장들 중 겨우 10퍼센트 밖에 믿을수 없다면 나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생각할수 없잖아. (...) 그래서 이제는 귀국을 앞두고 적어도 불가지론자가 됐다고 말할수는 있을 것 같아. 어쩌면 무신론자가 된 건지도 모르지만 (웃음)"


"덴마크에서 누군가가 미국의 종교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거야. 당신은 내 말을 안 믿겠지만 미국 사회는 정치며 언론 매체에서 벌어지는 토론이며 모든 것의 바탕에, 모든 사람이 아주 헌신적인 기독교인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그러니까 공개적인 자리에서 하느님을 믿는다고 분명히 말하고, 문장을 말할 때마다 하느님의 축복을 비는 말을 집어넣지 않으면, 공직에 앉을 수도, 대통령이 될 수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우리 덴마크인들은 미국이 우리한테 전쟁을 같이 나가자고 권유하거나 아니면 무엇이 됐든 함께 일을 하자고 권유할때 아주, 아주 조심해야 한다고 말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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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미

2015. 2. 14. 14:50 from 내 글/단문


여백의 미라는 말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 개념 자체가 싫다기 보다는 쓰이는 방법 때문에 싫어진 경우다. 우리 조상들은 옛부터 여백의 미를 알아서... 로 시작되는 연설은 원칙과 이상처럼 진행할수 없는 '현실적'인 고충으로 마무리된다.

이 말은 보통 서구 근대의 기본 전제인 상호배타적 분류를 거부하거나, 이말도 맞고 저말도 맞고 하는 애매한 해석을 내릴 때 나온다. 그렇게 딱딱 칼같이 끊어지는게 현실이 아니야 어린 친구! 마치 '서구 근대'의 모순을 지적한 것마냥 뿌듯한 풍부한 인생의 지혜를 과시하면서.


뭐 말은 좋다 이거야. 근데 그런 분들은 실제로는 정말 모 아니면 도여야 하는 부분, 예를 들면 돈 문제, 법 문제 같은 것들에서 굉장히 유연하시다. 반대로 주변인들이 자기 마음에 안들거나 개인의 자유, 창의성 문제로 가면 갑자기 중간영역이 사라진다.

여백 같은건 없고 자기가 설정한 범위의 밖은 다 틀린 것이 된다. 웅장하다고 생각한 것을 쓰세요 라는 초등학교 시험문제에 "엄마 뱃살"이라고 쓰면 틀린 것이 된다. 정치 사회분야에서 너는 어느나라 사람이냐? 투표 안하는 놈은 매국노 이런 말을 서슴없이 쏟아낸다.


한반도엔 여백의 미를 만들어 낸 호랑이 부모는 있어도, 그것을 개똥처럼 쓰고 있는 개자식이 있다. 회색과 개인은 나쁜 의미이면서, (근대 합리성)의 여백을 꿋꿋이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여백의 미는 개똥같은 소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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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도어 공해

2015. 2. 8. 02:00 from 내 글/중문


자기계발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기로 유명한 공군 비행단의 생활에 비해 같은 공군 소속이지만 여가에 있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전방부대 병사들을 위해 전 사령관이 추진했던 사업 중 하나가 있다. 이른바 "병영생활 성공 STORY"라고 하는, 군생활동안 1인 1목표 달성을 계획하고 그 성취에 따라 포상휴가를 받는 제도였다. 가령 토익 점수 850점을 목표로 하였을때 그 목표를 달성하면 해당 토익 성적표를 제출함으로써 포상휴가를 받는 식이었다.


고의로 쉬운 목표를 설정해서 휴가를 따내지 않게 하기 위해 다소 양적인 제한기준을 두었는데, 예를 들면 토익점수는 몇점 이상이어야 한다든지, 한국사 같은 자격증의 경우는 1급이어야 한다든지, 책읽기라면 50권 이상이어야 한다(무조건 이 50이란 숫자가 기준이었다) 미친... 내가 대학생일때 중도에서 빌려서 읽은 책이 1년에 50권이 안되었을텐데... 아무튼 이런 기준을 세웠음에도 많은 친구들이 특별한 목표를 세우기 곤란했는지 책읽기 50권이라는 무지막지한 목표를 세웠다.


하루는 이 제도에 대한 모럴 해저드 사례를 가지고 얘기하는데 주임원사가 시 50편을 기준으로 삼아서 포상휴가를 나간 친구들이 많다고 해서, "시 50편"이 가능해요? 했더니 보시겠습니까 하고 내미는데... 한두장 보면서 참 뭐라 말해야 할지... 내가 평소 '글'이라는 것에 굉장히 이상적인 가치를 투여하고 있는, 순진한 사람이었구나 생각을 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지하철 플랫폼에 서있을때마다 스크린도어를 부셔버리고 싶게 만드는 저질 텍스트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이다. 도대체 이 멍청한 아이디어를 누가 냈는지 모르겠다. 왜 게시되었는지도 모르겠는 (서울 시민의 작문 수준이 이정도로 형편없습니다 하는 의도?) 병신같은 텍스트들이 수백개의 역 플랫폼마다 게시되어있는 꼴을 보자면, 차라리 일본처럼 사채광고로 도배되는게 낫겠다 싶은 생각마저 든다. 최소한 상업적인 이득을 위했다는 합리적인 이유가 하나라도 있을 테니까.


우리가 한번쯤 봐야 할 가치 있는 텍스트가 얼마나 많은가? 필부필부의 어거지같은 글을 보느니 차라리 릴케, 엘리엇, 랭보의 시를 싣든지, 한국의 시를 싣든지, 저작권이 문제라면 신인 작가들의 시를 돈을 주고 게시한다든지 적어도 이것보다 상식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주요 언론 주간지며 일간지 기사 수준이 낮아서 차라리 공짜로 인터넷으로 보겠다는 사회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하다못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제휴해서 대중가요 가사를 붙여놔도 이것보단 나을 것이다. 3호선 학여울역 8-2 플랫폼에 어느 아저씨의 서울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키치스러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저질시 대신 링딩동 링딩동 링디기딩디기딩딩딩 같은게 7개언어로 적혀 있어봐라. 외국인들 떼로 와서 사진찍고 난리 날거다.


수유역에는 모유수유의 유익함, 남성역에는 페미니즘의 역사, 국회의사당역에는 대한민국 헌법. 남영역에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개요. 전철 기다리면서 관심있는 사람이 잠깐 볼만한 내용은 얼마든지 있다. 오늘도 전철을 기다리며 어김없이 붙어있는 100% 확률의 지뢰 텍스트. 그것들을 인쇄하는 재료에 쓰인 자원과 그것들을 붙인 누군가의 에너지, 그 지뢰를 잠깐이라도 읽어보는 이용객들의 시간과 독해에 쏟는 에너지 낭비를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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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말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사회학이 뭐냐는 질문이다. 처음 부대 전입했을때 이래로 다시금 많이 듣는 질문인데, 아마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아서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다들 대학도 나오신 분들이 대학생때는 관심이 없었던건지 다같이 내숭쟁이였는지. 이렇게 직접적으로 묻는게 공자가 얘기했던 모르는걸 모른다고 하는 성숙한 배움의 자세인지 그냥 예의없는 질문인건지. 무슨 교과서 개론 첫째줄을 읊어달라는양, 아니 라디오스타 게스트에게 던지는 공식 질문처럼 "어웅에게 사회학이란?" 이런 느낌으로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요즘 하나 만들어놨다. "니들이 정치라고 생각하는게 다 사회학이라"고. 정치학은 딱딱해보여 공부 못하겠고, 보수반동적이라 생각하는 일련의 사람들이 다 사회학 수업을 듣더라.


뿐만 아니다. 딴에는 정치 문제라고 열심히 논평을 하는데 죄다 자신이 지지하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그냥 정치영역을 해석한 것에 불과하더라는 것이다. 나부터가 정치학 전공자가 아니니 전공부심이 아니라 이렇게 말할수가 있다. 자칭 정치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분들은 다들 사회학 영역에 들어갈 문장을 구사하고 계시더라.


물론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고 해서 그분들이 사회학이 그런거였어? 하실거 같지는 않다. 되려 그럼 그게 사회학이면 정치학은 뭔데? 이럴것 같다. 그래서 또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 아니 그래도 한두번쯤 그렇게 대답해볼 생각이다. 그래야 돌아오는 반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생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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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일본의 근대

2015. 1. 21. 03:50 from 책/발췌




번역과 일본의 근대, 가토 슈이치/마루야마 마사오 지음, 임성모 옮김, 2000, 이산




pp. 18-20

마루야마 : 일본은 운이 좋았다고 하는 해석은 국제정치를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식입니다. 동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가 본격화 되기 직전에 세계는 서로 전쟁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특히 크림전쟁과 남북전쟁이 결정적이죠. 크림전쟁은 영국·프랑스와 러시아의 차르가 거국적으로 일으킨 대대적인 전쟁이었고 남북전쟁의 사상자도 엄청났습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할 처지가 못되었던 겁니다. 그 두가지 사정 때문에 일본에 대한 압력이 급격히 감소했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겠죠.



p. 50

마루야마 : (전략) 모리는 모리대로 <일본의 교육>이라는 유명한 책을 출간했습니다. Series of Letters, 곧 그의 서간문 시리즈인데, 뉴욕 애플턴 출판사에서 1873년 1월에 나왔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모리는 '영어를 국어로 삼자'고 하는 유명한 주장을 폈지요. 야마토 말에는 추상어가 없기 때문에, 야마토 말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서양문명을 일본 것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차라리 영어를 국어로 채용하자는 주장이지요. 거기에 대한 반박이 이 바바의 서문인 겁니다. 이 글은 무척 재미있습니다. 만약 일본에서 영어를 채용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상류계급과 하층계급 사이에 말이 전혀 통하지 않게 되고 말 것이다라는 의견을 바바는 개진하고 있습니다.


가토 : 그거 대단하군요. 지금도 인도가 안고 있는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계급간의 깊은 골이지요. 그 첫번째 요인은 경제적 격차이고, 두번째 요인이 언어입니다.


마루야마 : 굉장하지요. 바바는 인도의 예를 적확하게 증거로 삼아야 상층이든 하층이든 국민은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pp. 53-55

마루야마 : (전략) 야스오카 씨(安岡 章太郎, 야스오카 쇼타로)의 견해입니다만, 번역으로 읽는 쪽이 더 급진적이라는 거에요.(웃음) 인텔리의 급진주의는, 그의 표현으로는 자유민권이나 사회주의 관련 책자를 번역본으로 읽었던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 지적이 틀렸다고만 할수 없는 예가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의 <사회정학(Social Statics)>이지요. 마쓰시마 쓰요시가 <사회평권론>이라 번역했는데, 이 번역은 좀 이상합니다. statics란 표현은 dynamics와 반대되는 말로서 '정태학;이라는 의미인데 '평권론'이라고 번역해 놓으면 마치 '평등주의'인양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래서 스펜서의 Social Statics는 자유민권운동가의 성전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것은 제목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와 관계가 깊습니다. 스펜서는 나중에는 더 보수적이 됩니다만 그 당시에도 결코 급진적이진 않았습니다. 스펜서의 사회학은 모두 균형론이기 때문에 탈콧 파슨스(Talcott Parsons, 1907~1979)의 선구자라고 할수 있는 인물이죠. 그런데도 제목을 '평권론'이라고 번역해 놓으니 성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번역이라는 데는 생각지도 못한 효과가 있는 거지요.




pp. 82-84

마루야마 : 그런데 앞서 말했던 야노 후미오(矢野文雄)의 <역서독법>으로 되돌아가 보면, 그 가운데서 책의 분류가 아주 중요하다고 하면서, 동양의 분류는 조잡하다고 말합니다. 서양의 도서관 분류처럼 좀더 치밀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지요. 

(중략)


가토 : 그건 어느정도 보편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중략)

첫번째는 원인론적인 관계, 곧 인과율입니다. 예를 들어서 번역 문장에서는 '무엇 때문에' '왜냐하면' 식의 말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대개 일본에서는 적어도 메이지 이전의 문장에서는 because에 해당하는 말이 그리 자주 나오질 않습니다. 

(중략)

두번째는 지금 이야기한 '분류'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류를 할 것인가? 일본에서는 가사(歌)를 분류하든 시를 분류하든 예전부터 나열된 분류 항목의 내용이 겹쳐 있어요. 상호배타적이지 않죠. 글너 분류 방식은 서양인이 싫어하는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분류에서 보자면 이상한 겁니다. (중략) 그러한 엄밀한 분류 원칙과 상반되는 것이 어떤 식으로 처리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겠지요.

세번째는 일반화, 또는 수의 표현방식입니다. '모두의'와 '약간의' '하나의' '어떤 하나의'라는 말을 영어에서는 관사를 사용해서 상당한 정도까지 표현할수 있고 또 all이나 some같은 말로도 표현하지요. 그런데 일본어에서는 대개 그런 말을 쓰지 않습니다. '에도 시대의 몇명의 사무라이가...' 라거나 '모든 사무라이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지요. 그저 '사무라이는....' 이라고 합니다. 관사가 없기 때문에 알수 없는거죠. 이걸 번역에서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이 문제는 아주 흥미로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마루야마 : 아니, 꼭 번역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 경험을 말하는게 좀 뭐하긴 합니다만, 대학분쟁때 전공투 학생이 '학생은....'이라고 말하길래 "자네가 말하는 학생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건가?" 하고 물었습니다. 야스다 강당에 농성중인 사람들인가, 다른 학부에서 농성하고 있는 반대파인가, 아니면 불참한 정치적 무관심층을 말하는가 하고 말이죠. 좀 심술궂은 도발이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겁니다.




pp. 90-91

가토 : 유럽 정치사상에서는 인권이 있기 떄문에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두가지를 연결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그것이 나누어졌지요. 인권 쪽이 자유와 연결되고 민권 쪽이 평등과 연결되는 식으로 말입니다. 말하자면 자유로부터 분리된 평등과 인권으로부터 분리된 민권이 생겨났던 셈이죠. 그러나 일종의 평등주의는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마루야마 : 일군만민이라는 평등주의지요. 주군만은 예외지만 나머지는 귀족이든 평민이든 모두 평등하다는 겁니다. (중략) 익찬회 시대에는 천황과 인민 사이에 끼여 방해하는 자를 '막부적 존재'라고 말하는게 유행이었습니다만, 천황만 제외하면 평등사상은 각별했습니다.


가토 : 현행 헌법에서 인권과 평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착도가 강한 것은 평등이죠. 그건 전통적으로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미국이 강요하지 않았다고 해도 처음부터 인권 쪽은 없었으니까요.(웃음) 익찬회 운동을 민주주의적 위장이라고 한다면 나치가 바로 그렇습니다. 개인적 자유는 제로에 가깝지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갈등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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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성매매

2015. 1. 18. 20:30 from 내 글/단문



원정 성매매에 대해 말이 많다. 성매매라는 종류의 노동이 자기파괴적이고 자아에 손상을 가한다는 정도는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도 살기가 팍팍한지 요즘같아서는 다른 '멀쩡한', '보통' 노동이 얼마나 거지같으면 외국까지 나가서 저렇게 성매매를 할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떳떳하면 왜 귀국해서 숨기냐고도 하고... 또 과거를 숨기고 모른척(순수한척) 한국에서는 결혼해서 잘 살까봐 걱정하는, (특히) 가상의 결혼상대로서의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경계하는 여론도 큰 것 같다. 뭐 물론 속였다면 속인 건 문제가 되는거겠지만, 내 입장에선 그정도 과거가 있는데도 티가 안난다는건 어떤 의미에서는 멘탈킹이 아닌가? 싶기도.


이탈리아 출신 독일 유학생이 성매매로 빠져들었던 과거의 경험을 적어낸 <퍼킹 베를린>을 읽었던 2009년부터 이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은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씩 바뀌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 책을 읽고 나서는 성매매 문제에 대해 확신으로 말할수 있는 게 없었고, 그저 잰걸음으로 생각할 뿐이다. 유럽과 한국은 다르다고? 그렇지. 모든 것이 다르다. 만약 사회안전망이나 성매매 종사자의 '자발성'이나 '속물근성'이 다르다(먹고 살만한 애들이 돈 쉽게 벌려고 한다)고 말하고 싶으시다면, 유럽과 한국은 '보통의 일'을 하며 겪는 경험의 강도도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자고 말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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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귀천

2015. 1. 14. 09:00 from 내 글/단문


블루칼라인 아버지는 직업의 귀천이 없는 시대를 간절히 원했다지만, 이제 무슨 일이든 사회 초년생들은 절대적으로 같은 수준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꼴을 보자니.... ^^ 어르신들이 항상 말씀하시는 "니가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물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하지만)" 가 틀린 말이 아니군요. 멋진 완결성입니다. 드럽지만 돈 많이 주는 직업은 사라지고 있으니,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합시다! 물론 하고싶다는 티를 내면 돈을 더 적게 받겠지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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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를 넘어서고 있네요.

다른 글에도 달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이 관점의 차이가 좌우이념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걸 좌우이념으로 대립하는거 보면 자기들끼리 판 깔아놓고 다투고 있는거 같아서 굉장히 불편해요.

오히려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세대갈등의 문제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르신들이나 보수 언론에서 얘기하는 좌편향된 이들의 폄하란 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지니는 이들 중에서도 나이를 먹은, 소위 민주화 세대에만 해당된다고 봐요.

사실 이 영화는 순수한 추억팔이 영화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때마침 등장한 토토가 덕분에 평소에 생각했던 "추억팔이 행위에 대한 이중잣대"가 거슬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추억팔이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따라서 어르신들의 다수가 공감하고 눈물 흘리는 영화라는 점에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거슬리는 건 추억팔이 행위가 아닙니다. 그 추억팔이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느냐죠. 전에 다른 글에도 언급했습니다만, 전 응사열풍도 별로 좋게 안봤습니다. 꿈도 미래도 없는 지금의 20대가 브라운관으로 대한민국 리즈시절의 캠퍼스 낭만을 대리만족하는 현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봤어요.

그래서 국제시장에서 경계해야할 것은 그 시절의 고생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느냐라고 봅니다. 그 분들이 정말 힘들게 살아온 건 맞습니다. 근데 그걸 오로지 나라를 위해서, 이 사회를 위해서 했다고 포장하면 안되죠. 그 시절은 자기가 살기위해 노력한 것이 결과적으로 나라의 발전으로 이어졌던 시대였죠. 정말 지금 어르신들이 그렇게 우리 사회를 위한 이들이라면 청년문제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선 안됩니다.

그들의 노력과 수고가 공동체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전 다른 논란에는 별로 말을 섞고 싶지않고, 이 부분만 얘기하고 싶습니다. 박정희고 독재정권이고 관심 없어요. 그 수고하셨던 어르신들이 현실에서 보이는 민낯이 뭐냐는거죠. 손녀같아서 가슴 찔러보고, 대학 나와서 월 200받는 직장도 못얻냐고 하고, 애를 안낳다니 참 이기적이라고 하는 분들께서는 제발 영화관 밖에선 딴소리만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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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고숑 2015.01.18 16:54 신고

    하필 장기 저성장의 시대로 들어서는 시점에 태어나서 고생.. 어쨌든 국제시장 덕분에 친척들 사이에서 개새끼로 통하게 되었음 ㅋ

    • addr | edit/del BlogIcon 어웅 2015.01.18 16:57 신고

      우리 부모님은 최근에 여기저기 또래들 만나보고 자식들 얘기 공유하면서 시각이 많이 바뀐듯....

  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고숑 2015.01.18 17:03 신고

    시각이 어떻게 바뀌신 거야? 우리 세대의 어려움을 공감해주시는 건가 ㅎ

    • addr | edit/del BlogIcon 어웅 2015.01.18 17:08 신고

      예전엔 강하게는 아니어도 막연히 이정도면 이정도는 하겠지... 였는데 나야 탱자탱자 하다가 이제 군대와서 비껴났다 치더라도 동생이 졸업하고 방황하는거 보면서 좀 충격을 먹으신거 같음. 그래도 자식들 대학보낸거 하나는 탑이다 생각했는데 취업에서 막히니....

      그런 배경에서 또래들을 만났더니 훨씬 심각하고 우리집보다 더 불안한 조건에 놓여있다는걸 알고.... 일단 되는대로 지원하는걸로... 뭐 공감도 공감이지만 내ㅏ 말하는 부분을 듣고 이해가 되신다는거 자체가 큰 변화

  3.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고숑 2015.01.18 17:18 신고

    이 시리즈 생각난다 ㅋㅋ http://erine.egloos.com/5064039

    '비교'에서 위안을 얻으셨다는 건 부모님이 아직 완전한 열반(혹은 체념)의 경지에 이르시진 않았다는 뜻이니.. 종종 갈등이 있겠군 ㅋㅋ 나도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고비 넘기면 숨 돌리고.. 그렇게 살아지는 듯하다 ㅋ 너도 동생도 취직전선에서 승리하시길!

다시 독서 어워드

2014. 12. 28. 22:09 from

2011년 말에 독서 어워드 결산을 했었고, 벌써 3년이 지났다. 2012년에는 입대하고 훈련받고 논답시고 안했고 2013년에는 왜 안했는지 모르겠다. 빈약하다고 생각했나. 그래서 올초에는 독서에 속도를 좀 붙였던거 같은데 지나고 보니 12, 13년에 비해 특별히 풍요로웠던거 같지는 않다. 그래서 2012-2014 한꺼번에 결산!

1.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2010), 안병길, 동녘
개인적인 관심사에 대한 공부가 아닌 교양으로서의 독서라면 결국 학자와 대중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하는 수준의 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은 딱 그 지점에서 보여줄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정보와 논지를 제공하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 시민을 위한 '진짜 자유민주주의' 입문 교과서의 결정체.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절대 어려운 글도 아니다. 물론 평소에 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면 공감하기 어려울 수는 있다.

2. 순수의 시대(1920), 이디스 워튼, 송은주 옮김, 민음사
누구에게는 로맨스 소설, 누구에게는 성장 소설, 누구에게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누구에게는 문화인류학적 느낌을 줄 재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나 '데미안'이 앞으로의 세계를 스스로 판단해 나가야할 20세에 권하는 성장 소설이라면, '순수의 시대'는 정해진 것들 안에서 골라 선택해야 하는 30세에 권하는 성장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3. 코스모스(1980), 칼 세이건,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과학자가 이렇게나 글을 아름답게 쓸수 있구나, 그 순수한 열정에 다시금 감탄하게 되는 책. 꽤나 흥미진진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분량이 쓸데없이 길다고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서술이 돋보여서 평범한 인문계 전공 소시민인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4. 고민하는 힘(2009), 강상중, 이경덕 옮김, 사계절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괜히 많이 팔린 것은 아니다. 그만큼 그런 이야기와 고민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질 문제였기 때문이니까. 고민, 청춘, 나쓰메 소세키, 막스 베버의 키워드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책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줄곧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3년 동안 4개라는 건 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책 고르는 기준이 깐깐해진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이나 독서에 쓴 시간이 적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 외에 추천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읽은 것들은

1.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2013), 천종호, 우리학교
"안돼 못 바꿔줘 빨리 돌아가"의 주인공이 소년재판을 겪으면서 있었던 일들을 모은 책이다. 내용도 좋지만 저자 소개에 적힌 책을 내게 된 배경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20대부터 큰 꿈을 품을 필요는 없다는, 그릇을 일단 키우는게 맞다는 생각. 저자가 사법고시를 준비할때부터 청소년들을 후원하는 소년재판 전문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듯이, 나는 20대에 그런 큰 목표로부터 좀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2.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2012), 최장집, 후마니타스
2년 전 생일 선물로 받은 따끈따끈한 책. 딱히 새로운 이야기를 했다거나 인상깊은 주장이 실린 건 아니지만 그냥 퀄리티가 보장되는 책이다.

3. 거리로 나온 넷우익(2012), 야스다 고이치, 김현욱 옮김, 후마니타스
일본의 극우 단체 재특회에 대한 이야기. 한국 사회에서 일베가 뜨면서 뒷북처럼 다시 재조명된 감이 있는데 개인적으론 재특회=일베엔 동의할 수 없지만 결핍과 상실감이 인간에게 어떤 길을 걷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큰 의미로는 생각해볼만 하다. 읽고나서 뜬금없이 난 <영웅전설5;바다의 함가>를 떠올렸거든...

4.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2013), 엄기호, 따비
공교육과 학교 문제에 대해서 언제나 악마가 되었던 교사들이 맞닥드린 현실적 고충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정보제공으로서의 유의미함도 있지만, 저자 특성에 기인한 한계도 분명하다.

나름 신간을 많이 읽었다. 주 공급처가 대학교 도서관에서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옮겨간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2015년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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