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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31 한일 내셔널리즘의 해체 (1)




한일 내셔널리즘의 해체 - 로컬리티 번역총서 2

저자
이건지 지음
출판사
심산 | 2010-06-3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이 책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장소와 관련하여 보통에서 배제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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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내셔널리즘의 해체 - 복수의 아이덴티티로 살아가는 세상,
이건지 지음, 김학동 옮김, 심산, 2008



pp.13-15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특수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조금 전 ‘보통의’라고 했는데, ‘보통’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보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보통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른바 ‘보통의 사람’이라는 것이 실은 이 배제의 과정에 의해 확보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보통의 사람’이라는 것은 ‘응당 배제되어야 하는 이가 아닌 자’로서 정의될 수 있을 뿐, 그 자체는 결코 반석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보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pp.25-27
한마디로 말하면 <일본(인)>을 단순화하고 이미지화했듯이, <외국(인)>을 단순화하는 것(흑인은 어떻고, 중국인은 저렇고, 한국인은 이렇다는 등)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배타적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에게도 결점은 있다’라고 외국인 앞에서 털어놓는 ‘겸허함’이나 ‘선의’까지 내포하게 된다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양친의 국적이 다른 사람의 경우는 끊임없이 자신이 <외국인>으로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심리적 압박 때문에 자진해서 어느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무의식적인 선의의 내셔널리즘’의 폐해이다.



pp.46-47
내셔널리즘이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몹시 애매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말하는 ‘내셔널리즘’과 일본에서 말하는 ‘내셔널리즘’의 의미가 동일하다는 보증은 없다.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한국에서의 ‘내셔널리즘’과 ‘민족주의’는 별개이며, 후자는 올바른 주장으로서 비판 대상이 되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내셔널리즘을 맹렬히 비판하기 시작하여 금세기에는 그러한 풍토가 정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젊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팬시 상점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쓰인 상품이 다른 귀여운 상품들과 나란히 놓여 있기도 하다. 일본에서 언급되는 ‘내셔널리즘 비판'보다도 한국의 ’내셔널리즘 비판‘쪽이 성역을 남기고 싶어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pp.111-
예를 들면 재일조선인과 같은 마이너리티 운동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시민운동 등의 지원자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들 시민운동가들은 때때로 재일조선인을 중심으로 받들면서 그 후방을 지원하는 운동 형태에 의문을 가지지 않음으로써, 자칫 재일조선인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재일조선인을 움직임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사회에 호소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다.

인용문(강상중, <재일>의 내용으로 강상중씨가 지문날인에 반발했다가 결국 날인을 했다는 에피소드, 편집자 주) 중에 등장하는 지원자는 사회정의를 위해서 운동하고 있다는 의식이 있으며, 필시 반권력적인 사고방식을 지녔다고 자임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재일조선인이라는 ‘외지’ 출신자를 ‘당사자’로 규정하고, 자신은 후방지원으로 ‘사회선’을 행하고 있다는 인식에 대해 역시 문제가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내지>는 비‘내지’ 혹은 ‘외지’를 배제함으로써 담보된 거울에 비친 이미지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 재일조선인 문제도 ‘내지’의 문제이자 이를 만들어내는 무의식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만약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이 지원자도 후방 지원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문제로서 싸웠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강상중씨에게 불만(지문날인거부를 중단하고 날인을 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편집자 주)을 제기한 지원자는 스스로가 이와 같은 ‘무의식’에 의해 ‘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을 나누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은 ‘지원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불쌍한 재일조선인을 위해 일본인의 양심을 대표해서 지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선의’에 의한 것일지라도 재일조선인을 일본 사회로부터 ‘절취하는’ 점에 있어서는 체제 못지않게 배제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p.141
물론 민주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은 당연한 일이고 이를 쟁취한 한국의 시민운동에는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386세대’라는 말에 ‘대학에 입학한’이라는 조건이 들어있는 점에서 필자는 위화감을 넘어서 분노마저 느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학생인지 아닌지의 여부와 민주화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며, 별생각없이 ‘386세대’라는 말을 사용하는 심리의 이면에는 저학력자를 차별하는 ‘선민의식’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pp.173-174
이 무렵의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의 이상을 온갖 대중 매체를 통해 전파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것은 1930년대에 태어난 ‘황국 소년’세대일 것이다. 그보다 이전 세대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현실을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이상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하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
황국 소년이 일본의 ‘성전’ 사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순수하게’ 그것을 이행하려 했던 탓으로 현실적인 전투의 ‘더러움’에 분노해 간다는 상황은 한국의 ‘고도성장의 내셔널리즘’(보수 세대)과 ‘저항 민족주의’(민주화 세대)의 대립에 견주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p.190
재외 교포, 예를 들면 재일조선인은 일본 사회에서 ‘절취당하는’ 존재이다. 그것을 한국 사회는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코리언 디아스포라’라 부르며 포섭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끌어안고 절취’하는 행위이자 무의식의 배타성을 내포한 ‘선의’의 ‘큰 내셔널리즘’으로서, 사실상 ‘한국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기’ 우해 재일조선인을 이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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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웅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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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Fulton 2011.09.01 08:38 신고

    종종 디아스포라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제국주의적 내셔널리즘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기도 해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