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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08 스크린도어 공해

스크린도어 공해

2015. 2. 8. 02:00 from 내 글/중문


자기계발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기로 유명한 공군 비행단의 생활에 비해 같은 공군 소속이지만 여가에 있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전방부대 병사들을 위해 전 사령관이 추진했던 사업 중 하나가 있다. 이른바 "병영생활 성공 STORY"라고 하는, 군생활동안 1인 1목표 달성을 계획하고 그 성취에 따라 포상휴가를 받는 제도였다. 가령 토익 점수 850점을 목표로 하였을때 그 목표를 달성하면 해당 토익 성적표를 제출함으로써 포상휴가를 받는 식이었다.


고의로 쉬운 목표를 설정해서 휴가를 따내지 않게 하기 위해 다소 양적인 제한기준을 두었는데, 예를 들면 토익점수는 몇점 이상이어야 한다든지, 한국사 같은 자격증의 경우는 1급이어야 한다든지, 책읽기라면 50권 이상이어야 한다(무조건 이 50이란 숫자가 기준이었다) 미친... 내가 대학생일때 중도에서 빌려서 읽은 책이 1년에 50권이 안되었을텐데... 아무튼 이런 기준을 세웠음에도 많은 친구들이 특별한 목표를 세우기 곤란했는지 책읽기 50권이라는 무지막지한 목표를 세웠다.


하루는 이 제도에 대한 모럴 해저드 사례를 가지고 얘기하는데 주임원사가 시 50편을 기준으로 삼아서 포상휴가를 나간 친구들이 많다고 해서, "시 50편"이 가능해요? 했더니 보시겠습니까 하고 내미는데... 한두장 보면서 참 뭐라 말해야 할지... 내가 평소 '글'이라는 것에 굉장히 이상적인 가치를 투여하고 있는, 순진한 사람이었구나 생각을 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지하철 플랫폼에 서있을때마다 스크린도어를 부셔버리고 싶게 만드는 저질 텍스트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이다. 도대체 이 멍청한 아이디어를 누가 냈는지 모르겠다. 왜 게시되었는지도 모르겠는 (서울 시민의 작문 수준이 이정도로 형편없습니다 하는 의도?) 병신같은 텍스트들이 수백개의 역 플랫폼마다 게시되어있는 꼴을 보자면, 차라리 일본처럼 사채광고로 도배되는게 낫겠다 싶은 생각마저 든다. 최소한 상업적인 이득을 위했다는 합리적인 이유가 하나라도 있을 테니까.


우리가 한번쯤 봐야 할 가치 있는 텍스트가 얼마나 많은가? 필부필부의 어거지같은 글을 보느니 차라리 릴케, 엘리엇, 랭보의 시를 싣든지, 한국의 시를 싣든지, 저작권이 문제라면 신인 작가들의 시를 돈을 주고 게시한다든지 적어도 이것보다 상식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주요 언론 주간지며 일간지 기사 수준이 낮아서 차라리 공짜로 인터넷으로 보겠다는 사회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하다못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제휴해서 대중가요 가사를 붙여놔도 이것보단 나을 것이다. 3호선 학여울역 8-2 플랫폼에 어느 아저씨의 서울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키치스러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저질시 대신 링딩동 링딩동 링디기딩디기딩딩딩 같은게 7개언어로 적혀 있어봐라. 외국인들 떼로 와서 사진찍고 난리 날거다.


수유역에는 모유수유의 유익함, 남성역에는 페미니즘의 역사, 국회의사당역에는 대한민국 헌법. 남영역에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개요. 전철 기다리면서 관심있는 사람이 잠깐 볼만한 내용은 얼마든지 있다. 오늘도 전철을 기다리며 어김없이 붙어있는 100% 확률의 지뢰 텍스트. 그것들을 인쇄하는 재료에 쓰인 자원과 그것들을 붙인 누군가의 에너지, 그 지뢰를 잠깐이라도 읽어보는 이용객들의 시간과 독해에 쏟는 에너지 낭비를 한탄한다.



Posted by 어웅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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