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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09 <수레바퀴 아래서> 감상문

1.
 
내가 어렸을 적 3년 주기로 들은 말이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되면 저학년때와 다를거다. 정신 바짝 차려라”
 
“초등학교때와 중학교때는 다르다.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힘들거야”

“중학교때와 고등학교때는 다르다. 다른 애들 놀 때 네가 많이 해서 잘 한거지, 고등학교때는 전부다 같이 열심히 하거든”
 

 
 
“여기서 넌 언제나 어렵지 않게 일등을 할 수가 있었지. 하지만 신학교에는 모두 능력있고 부지런한 학생들뿐이란다. 그런 아이들을 앞지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닐거야. 내 말 알아듣겠니?”(p.74)
 

 
 
뭐 사실, 살면서 내가 들어야 할 얘기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뭐! 군대를 아직도 안 갔다 왔다고? 언제 가려고? 군대는 일찍 갔다오는게 제일 좋은거야”

“졸업은 언제 하려고? 졸업하면 뭐 할건데?”
 
“야 사회 나와봐라, 학생 때가 좋은거야 사람들이 얼마나 독하게 사는데”
 


 
 
 
 
2.
 
우리 나라엔 왜 이렇게 여기저기에 묻지도 않은 소식에 깨알같이 답해주는 정성스런 조언자들이 많은 것일까? 공교롭게도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도 훌륭한 자질을 갖춘 트레이너들이 많이 등장한다.


 
 
한스의 불안감을 타파하기 위해 ‘시험에 떨어진다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냐’고 다독이는 목사(p.20), 초콜릿을 먹고싶지 않아하는 한스에게 사랑을 담은 마음으로 먹으라고 재촉하는 숙모(p.28), 혹시 시험을 떨어지면 김나지움에 진학하게 해줄수 있냐고 묻는 한스에게 ‘넌 내가 상공회의소의 고문이라도 되는 줄 아는거니?’ 하며 세상물정 모르는 아들에게 경제관념을 일깨워주는 아버지의 자상한 호통(p.43). 이런 모든 광경이 경솔하고 짧은 생각을 하는 어린 한스를 바른 청년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주변 어른들의 모습이다.


 
 
이런 풍경은 작품의 후반부까지 일관성있게 나타난다. 술이 과해서 집에 돌아가려는 한스에게 브랜디 한잔을 더 추천하는 숙련공의 모습(p.258). 귀가가 늦는 아들에게 집에서 걱정하는 아버지의 존재를 잊지 않게 하고자 몽둥이를 매만지는 부성애까지. 그리고 ‘같은 시각, 아버지가 마음속으로 꾸짖던 한스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검푸른 강물을 따라 골짜기 아래로 조용히 떠내려가고 있었다.’(p.260)


 
 
단지 조금 생각이 다른, 장례식에 찾아온 신사처럼 차려입은 학교 선생들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도 한스를 이 지경에 빠지도록 도와준 셈”(p.263)이라는 ‘서투른 트레이너’ 구둣방 아저씨의 말은 아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독자들에게만 남길 선언이 되었다.
 


 
 
 
 
3.
 
내가 나보다 어린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원하지도 않는데 조언해주는 건 질색이지만, 대학생이라는 멀지 않은 나이 때문인 것인지, 여기저기서 ‘좋은 얘기’ 좀 해달라는 요청은 많다.(물론 대부분이 부모님/선생님의 요청이지만)
 

 
 
최근에 내가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보습학원에서, 중3을 마치는 아이들과 마지막 수업이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내가 들어왔던 “고등학교 장난 아니니까 준비 열심히 하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건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넘치도록 많이 할 테니까.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만의 영역을, 반드시 남겨두고 지켜내라고. 24시간과 365일을 자기 뜻대로 하는 삶은 불가능하겠지만,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이 더 위험하다고. 자기 자신의 영역을 남겨두지 않은 그런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이 닥친다면, 그때는 지금까지의 삶의 의미가 사라진다고.


 
 
20대 사망 원인의 절반이 자살인 한국의 현실과, 스무 살까지 남들보다 계속 잘하기 위한 마음으로만 가득 찬 삶을 살다가 큰 부침을 겪은 나의 경험 때문이라도, 반드시 그 말만은 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한스처럼 낚시와 수영을 그리스어와 수학에 빼앗기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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