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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감상문

2010. 11. 9. 17:30 from 책/감상문

주의 : 만약 당신이 카프카의 소설 <소송>(혹은 심판)을 알지 못한다면 뭔 개소리인가 할수도 있습니다. <소송>을 읽고 오십시오. 그리고 나서 이 글을 보면 조금 다를 겁니다. 그때서야 당신은 '이것은 정말로 개소리구나' 하실수 있습니다.
 
 
카프카 <소송> 감상문
 
 
 
그날따라 딱히 해야 할 과제도 없었고, 1시간 반씩 걸리는 하굣길도 피곤하지 않았다.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돌아왔다. 용돈도 조금 남았으니 오랜만에 치킨도 시켜먹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전날 저장해뒀던 게임을 다시 시작할 생각이었다.
 
 
 
탁자를 펼쳐놓고 왼쪽에 노트북 오른쪽에 치킨과 물티슈. 자 이제 놀아볼까 싶을 즈음, 어머니가 내 방에 들어오시더니 옆에 앉으시곤 평소답지 않은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물으시는 말씀이,
 
“어웅아, 결혼은 언제쯤 할 생각이니?”
 
 
 
...........................결혼?
 
 
 
순간 내 방 전체가 네거티브 필름을 씌운 듯, 머릿속에 이수학점, 누적학기성적, 재수강할 과목 리스트, 책상서랍에 있을 노란 2급 현역병 신체검사표와 국방부 스팸문자, 가장 길게 연애해본 날짜(?), 3년 연속 행정고시 1차에서 고배를 마신 친구의 얼굴(??), 낙성대 부동산 앞을 지나가면서 보았던 원룸 보증금 시세(???) 등이 차례로 흘러 지나갔다.

 
 
갑자기 그건 왜 묻느냐고 하니, 어제 동생이 지나가다가 동네 애기를 보더니 너무 귀엽다면서 조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오빠는 언제 결혼하는지 물어보랬다고. 아니, 바바롯사 작전도 아니고 같은 자식의 입장에 있으면서 이렇게 뜬금없이 뒤통수를 치나. 평소에 애들이랑 노는 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갑자기 납치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어쨌든 머릿속에서 임의로 신뢰수준 95%의 검정까지 거친 결과(?), 결혼이라는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20대에 존재할 과업이 아닐 확률이 높다는 보고서가 완성되었다. “20대엔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래? 알았다” 하고는 쌩 나가신다. 뭐야 ‘아님말구’ 식의 질문이었던 건가.
 
 
 
 
 
그날 부로 그때까지 누려왔던 무한한 여유의 생활,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을 것 같은 평화로운 청춘의 시간은 끝이 났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그 체포의 순간이, 하루빨리 자립을 이루어 내야겠다는 의식을 하지 않고서는 살수 없게 만들었다.
 
 
 
일단은 보류를 시켰지만, 언제 갑자기 이런 질문이 다시 나를 찾아올지는 알수가 없다. 아마 5년 정도 뒤엔 훨씬 자주 심리가 열리겠지. 그때쯤에는 어쩌면 매주 집안에서 심리가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까진 꾸준히 ‘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요지의 청원서를 변호사도 없이 홀로 작성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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