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체적인 역사인식이나 역사교육 문제에 대해 이제는 별로 하고싶은 말이 없다.

안중근을 아느냐 모르느냐 같은 문제에서 그것도 모르냐고 질책하는 사람부터 그건 결과론이고 근본적으로 역사 취급을 잘했어야한다는둥 꿋꿋이 얘기하지만 이런 분들도 저런 분들도 다른 영역에서는 역사적 접근을 못한다.

정치 사회 문제에서 논객이란 사람들도 오피니언 리더라는 사람들도 5년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만 생각하면 바로 반박될 말을 거리낌없이 내놓고 많은 이들이 이런 주장에 동조한다.

나는 한동안 왜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운 과거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아니 없는 일처럼 뻔뻔하게 생각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면 그때랑 지금은 뭐가 다른지, 그때와 지금이 비슷하다면 어떤점이 비슷하고 지금 우리는 어떠해야 할것인지에 대한 (공유할만한) 생각이 없다. 아예 그런 개념의 존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나는 이게 양심, 일관성 같은 윤리의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떳떳하고 당연하다. 이건 무지와 무감각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양적인 접근으로 해결해서 이 문제를 '잡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시간표에 역사 시수를 더 늘린다면 안중근을 아는 사람은 조금 늘수도 있다. 사학과에 돈 더 대주면 사학과가 사라지진 않고 우러러볼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그게 사회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이 다들 기억하려 하질 않는데 무엇을 얼마나 가르치고 알아야 하는지 논하는게 무슨 소용일지. 그 문제는 다음 문제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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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안철수가 시끌시끌하더니 결국 안철수의 탈당으로 귀결됐다. 인터넷 곳곳에서 이 문제가 핫해서 댓글 보면 성향이 다른 분들이 서로 아웅다웅 논박하기도 하고 그랬다. 안철수 비판하는 쪽 자료 올라오면 또 반박하는 쪽 자료로 댓글이 달리는 식으로.



이번에 안철수가 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를 비판했고, 또 민주당에서 문재인을 공격하는 많은 비노 의원들이 폭격당하고 있다. 오유에서는 비노 의원 계파 식별 리스트 자료까지 만들었다. 크 무슨 과거청산법 반대 국회의원 명단 보는줄 알았네. 나도 성향상 당연히 안철수를 비판하는 게 맞는데 그냥 가만히 있었다. 가만 보니 좀 웃겨서. 아무리 사람이 선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지만 이만한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대선이 아직 2년이나 남아서 다행히(?) 코미디로 보였을지도. 


안철수가 하는 발언, 지향하는 개념, 원하는 조건 모두 과거의 문재인이 했던 것들이라는것이 이번 논란에서 빠져있는게 너무 신기했다. 안철수를 지지하는 쪽이야 시계추가 2012년부터면 잘 모를수도 있지만 문재인을 옹호하는 쪽이 그 얘기를 안하는게, 아니 안하는게 아니라 순수하게 기억을 못한다는게 신기했다. 


알다시피 문재인의 '민주통합당'이 안철수와 합쳐져 새정치민주연합이 되는 큰 통합이 있기 전에 문재인이 '민주통합당'에 들어간 작은 통합이 있었다. 문성근이 백만민란이니 국민의명령이니 과거 노사모 성향의 사람들 규합해서 정치세력화 시도하고 거기에 혁신과 통합이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된 단체에 친노 정치인들이 모두 모여서 손학규의 민주당과 합친 것 말이다. 이 과정에서 혁신과 통합이 주장했던게 다 안철수가 지금 주장하고 있는 논리와 개념이다. 그리고 문재인이 당적을 얻고 민주당의 대선후보 되고 나서 안철수한테 말한다. "정당대 정당으로 통합하는게 좋겠다. 안철수는 정당정치를 존중해야" 


이번에 문재인이 안철수에게 강경하게 하지 않고 이리저리 돌리는 미지근한 태도로 나오니까 문재인이 보살 아니냔다. 나는 그 미지근한게 문재인이 그나마 최소한의 인간적 양심이 있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뽕맞은 열성 지지자들과는 달리 본인은 자기가 했던 발언과 행동을 더 잘 알고 있을테니까. 이제와서 자기가 과거 민주당에 했던걸 똑같이 당하고 있으니 대놓고 강경하게는 못하고 갑갑하겠지. 그래서 아이러니했다. 


아무튼 이 '집단적 망각'이 너무 맘에 안들어서 나이롱 야권 지지자로서 이렇게 졸렬한 글을 쓴다. 정치인 당사자들은 그런척 할수 있지만 야권 지지자 그 누구도 이 얘기를 꺼내지 않는게 짜증스러웠다. 문재인은 이번에 안철수의 뗑깡에서 자신과 자신의 당을 지킨게 아니다. '과거의 문재인'을 극복한거지. 내가 나를 이긴것이다. 안철수도 그의 말처럼 문재인의 구태어린 고집과 버티기를 이기지 못하고 쫓겨난게 아니다. 조직 없이 여론조사 쪼가리 가지고는 힘을 실체화할수 없다는 걸 알고 당을 만들게 됐으니 자신을 극복한 승리자다. 내가 나를 이긴것이다. 패배는 그럼 누가 했느냐? 5년 전 문재인과 친노를 받아주고 지금은 사지절단되서 폐족되어 살아가고 있는 손학규와, 당에 남아서 지금까지 진 선거에 대한 책임을 한번이라도 지라는 상식적인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이유로 네티즌에게 맹폭격과 상욕을 듣고 있는 김한길이지.





다섯줄 요약

 

2008년 : 손학규가 민주당 대표가 되자 친노 의원 대거 탈당 

2011년 : 갑자기 국민의 명령이라며 어중이떠중이 몰고 나타나서 손학규 털고 민주당 장악 

2012년 : 문재인, 안철수한테 "정당정치 존중해야"(근엄엄격진지) 

2015년 : 안철수, 과거 문재인처럼 하려다 못이기고 나감 

결론 : 문재인은 안철수를 이긴게 아니라 '과거의 문재인'을 이겼다. 털린 손학규가 잘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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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광우병 파동 촛불정국을 선동에 의한 해프닝이라고 말하게 되면 서글픈 지점이 있다. 당시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비합리적으로 강했고 흔히 얘기하는 '선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때의 일을 결론짓는 방식에 대해서는 확실히 짚고 싶다. 


당시까지 한국 사회에서 광우병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했는지, 영국이나 캐나다에서 일어났던 인간 광우병 사례에 대한 보도는 어떠했고, 이를 본 대중의 인식에 그 병이 어떤 병으로 각인되어 있었는지 참작해야한다. 

그리고 2015년 메르스 때 비합리적인 괴담이 어떻게 (스스로) 절제될수 있었고,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왜 분노를 불러일으켰는지 '기억'해내야한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은 08년과 다를바 없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두려움과 분노를 느꼈던 것이고, 08년의 공포가 과장되었다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에 15년의 시민들은 괴담 유포를 절제했다. 7년전 일을 기억 잘 못하겠다면 최소한 6개월전 기억은 하고 있어야지, 염치가 있다면. 

우리가 과연 "10.26때 다들 나라가 망하는줄 알았어"라고 말하던 당시 사람들을 바보라고 비웃을 수 있나. 94년 김일성이 죽었을때 전쟁날까봐 사재기하던 사람들을 선동당했다고 비웃을 수 있나. 인간에 대해 진지함이라는 구석이 있으면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안 비웃는다. 7년 전 왜 일이 그렇게 되었나 진심으로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라면 이 대답으로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고, 질문에 다른 의도가 있다면 난 그 사람을 '인간을 비웃기만 할수 있는' 수준의 사고방식을 가진 존재로 여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더욱더 비웃어주길 바란다. 문혁도 비웃고, 매카시즘도 비웃고, 디워도 비웃고... 그저 비웃기만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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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비판하지 맙시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어르신들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해외에 계신 대통령께서는 파리 테러를 언급하시며 "테러는 반인륜적 범죄"라고 하셨습니다. 어쩜 이렇게 맞는 말만 골라서 하시는지 진정한 우리사회의 참어른입니다. 


대통령님의 '참어른' 모습은 청와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어른에 동참하는 방법은 항상 맑고 고운 소리를 하면서 자기객관화만 빼면 됩니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대통령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직장, 가정, 군대, 학교, 지하철에도 대통령님의 화신들이 계십니다. 대통령님의 사상은 우리 사회의 가치 그 자체인 것입니다. 대통령님이 왜 어르신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지, 그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대통령님은 박근혜란 하나의 자연인이 아닙니다. 수많은 어르신들의 참된 의지가 혼이 되어 이어졌습니다. 어르신들의 의지는 박근혜님의 혼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또 누군가에게로 이어지겠지... 이것은 뫼비우스의 우주. 아수라 아수라를 다오. 



창세기전3파트2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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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극은 영원하다

2015. 10. 15. 20:06 from 내 글/중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510142114435&code=990100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아 대한민국’과 ‘헬조선’ 



이런 글을 보면 인질극은 영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생각하는 정의에 젊은이들을 끼워맞춰보려는 그 인질극 말이다. 투표를 안하는 젊은이들에게 니들이 투표를 안하니까 새누리당이 이기잖아! 라고 본심 말하기는 쪽팔리니까 에둘러 "국민의 의무를 져버렸다"는둥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 누리려고 한다"는 류의 사고방식을 말한다. 


본문을 보면 글쓴이는 적어도 "뭐가 힘드냐" "배가 불렀다"는 대개의 어르신들과는 달리 청년층이 처한 현실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이해하는듯 하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나이에 들어선 젊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세대를 가리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라고 부른다. 연애를 포기했다는 것은 지금 이 시간의 행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며, 결혼을 포기했다는 것은 불가능한 행복을 가능한 행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겨를도 욕망도 없다는 뜻이며, 출산을 포기했다는 것은 미래에도 내내 행복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뜻이다. 자기 세대의 특징을 ‘포기’로 표현해야 하는 젊은이들은 한국을 가리켜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그들에게 이 나라는 지옥이나 다름없다.


근데 그 뒤에 왜 헬조선이 되었나에 대한 분석이 이렇게 이어진다.


저 2002년의 ‘아 대한민국’과 2015년의 ‘헬조선’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두 시점 사이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그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을 연도별로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최근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이 그 전체를 요약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고영주 방송문화진흥위원회 이사장의 공산주의자 감별사건,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국가지원단체인 한 기관의 공공연한 검열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건들은 각기 따로따로 일어난 것이지만 공통된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는 현재 기막힌 몇몇 시사이슈에 대한 열변을 토하더니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사는 세계를 지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옥은 진정한 토론이 없기에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이다. ‘아 대한민국’과 ‘헬조선’ 사이에서 사라진 것은 토론과 그에 따른 희망이다. 지옥에 대한 자각만이 그 지옥에서 벗어나게 한다. ‘헬조선’은 적어도 이 지옥이 자각된 곳이다. 그래서 나는 내 예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


란다.


그러니까 정부의 꽉막힌 시대착오적인 모습과 어처구니 없는 걸로 논란이 되는 현실에서 젊은이들은 헬조선을 느낀다는 거다. 내가 화가난 것은 마지막 문단의 두번째 문장에서였다. 지옥은 진정한 토론이 없기에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이다. 이 말의 무게를 정말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가? 


무슨 정부가 꽉 막혀서 지옥이라는 결론이 나오나. 꽉 막힌 것은 현 정부 뿐인가? 토론을 할수 없어서 희망이 없는 것은 정부인사들의 발언이 나오는 뉴스에서뿐인가? 2002년에 말한 '옆사람을 끌어안는 문화'가 2015년엔 죽어버린 것의 주요 예시가 문화인들에 대한 검열강화인가?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고 사상검열에 반대하는 어르신들은 직장에서 저항과 이의제기 잘 받아주고 토론 잘하고 계시나? '아 대한민국'을 소환하려면 살려야할게 토론과 그에 따른 희망이라며. 나라걱정하는 팀장님 부장님들! 후배사원들이 제기하는 토론 잘 받아주고 계시나? 시대착오적이고 권위주의 정부에 폭거에 반대하시는 교수님들! 연구실에서 자기가 마신 커피잔은 자기가 설거지 하시나? 


이 글을 다른 영역으로 가져가서 쓰면 이런 글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법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통진당 해산이 어쩌구... 법치는 죽었다 by 법학교수" 어느 누가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예시를 저런 것에서 찾을까. 대한민국은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고 했을때 유전무죄 무전유죄나 병역비리 이런것부터 떠올리는게 아니라 통진당 해산부터 떠올리는 사람의 주장을 공감할 수 있나? 정치병이 멀리있는게 아니다. 이런게 정치병이지.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사는 세계를 지옥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청년들은 현 정부가, 더 나아가 정치인이 이상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사는 세계를 지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옥불은 상공에서 카메라와 보도를 통해 내려다 봐야 보이는 불빛이 아니다. 지상에서 자고 일어나며 숨쉬는 동안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불이 지옥불이지. 당신의 생각과 다르게 시사 이슈 댓글란에는 정치적 견해차로 인한 싸움이 있지 헬조선 드립은 없다. 사람들이 지옥 운운하는 곳이 뉴스의 어느 카테고리인지 관찰도 좀 더 하고 생각도 좀 더 하고 의견을 제시했으면 싶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왜 생각을 하다마는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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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 풍경

2015. 9. 26. 20:02 from 내 글/단문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올 추석은 "명절이 이렇게나 좋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뭐 이런 소리는 안나오고 "(힘들겠지만 방송에서 징징거릴순 없고 가장 기본적이고 깔끔하게) 추석 잘 보내세요" 정도로 덕담 한마디로 끝내는 분위기라는게 예년과 다른 느낌을 준다.


지들도 더이상 "아니 명절은 좋은거라고!" 말하기가 민망해졌나보다. 그러게 그런 얘기 한창 나올때 "그래도 얼마나 좋습니까 어쩌구저쩌구"같은 훈계(지들은 설득이라 생각했나보다)를 할게 아니라 조금만 더 낫게 바뀌도록 말이라도 한마디 했으면. 이제는 뜬금없이 야구 중계중에 "명절때 제일 해선 안되는 말이 이거랍니다"가 나온다. 


애초에 명절때 마주치게 되는 친척이라는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건 평균적으로 한국인이 얼마나 타인과 대화를 못해먹을 수준인지 알려준다고 본다. 완연한 타인과는 달리 예의차리기는 싫은데 정작 서로에 대해 아는게 없는 관계. 아니 친척도 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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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탄생

2015. 8. 28. 21:36 from 책/짧은 리뷰





한글의 탄생

저자
노마 히데키 지음
출판사
돌베개 | 2011-10-09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우리는 '한글'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매일매일 한글에 둘러싸여...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한글의 탄생>, 노마 히데키 지음, 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 돌베개, 2011



비교언어학적으로 한글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분석하고, 한글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과 당시 문헌을 통해 고안자들이 어떠한 고민을 했는지, 그 고민을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밝혀낸다. 미술을 하던 이력이 있는 저자답게 딱딱하게 언어학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느낌과 질감까지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의 원문인 일본어가 정말 유려하다고 하던데, 능력이 된다면 원판인 일본어판도 구해보고 싶다. 언어학적인 지식은 없지만 대강 무슨 소리인가는 알아먹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국문법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했고 일본어와의 비교를 통한 서술도 재미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별 생각없이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아니 한글이 이렇게 대단하다니 싶다. 거기에 최만리 등의 반대론에 대해서도 단순히 정치적/민족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글자와 글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전제로 한 '글쓰기 세계'의 지적 차원에서 일리있음을 밝혔다. 세종이 맞선 것은 당대 중국과 대신들이 아닌 동아시아의 지성의 역사 그 자체였다고 선언하고 새로 만든 글자로 글쓰기를 <용비어천가> 등으로 실현해냄을 보여주는 클라이막스에서는 저자의 묘한 흥분과 감동까지 전해진다.


미술 작가로서 활동하다가 한국어를 독학(!)하고 나이 서른에 다시 학부생으로 들어가 한국어학 전공자가 된 저자의 뜨거운 이력과 한글에 담긴 열정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멋진 책이다.


+) 자음 소리와 모음 소리를 구분하는 예시에서 '노마'와 함께 사진으로 한국의 노마캔디가 같이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땐 그러려니 했는데 방금 저자의 이름이 노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책이 이렇게 재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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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0) 201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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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내셔널리즘

저자
와카미야 요시부미 지음
출판사
나남 | 2007-11-2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일본의 화해와 내셔널리즘을 살펴보는 책. 일본정치가 아시아와의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화해와 내셔널리즘>, 와카미야 요시부미 지음, 김충식 옮김, 나남, 2007


아사히신문 논설주간인 저자가 30여년간 정치인들을 겪으면서 일본정계의 아시아문제에 대해 적은 책이다. 일본의 정치인들에 대해 익숙치 않은 나로선 이 책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형형색색의 등장인물들이 마치 삼국지를 처음 접하는 느낌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일본의 정치인들은 대체로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국내정치 차원에서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갈지자 행보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정도인 것 같다.


이를테면 

1) 65년 시나 외상 방한 '반성' 성명 / 66년 건국기념일 지정 

2) 84년의 쇼와천황의 유감 표명 / 85년 나카소네 수상 815 야스쿠니 참배 

3) 95년 무라야마 수상 815 담화 사죄 / 96년 하시모토 수상 야스쿠니 참배 

4) 98년 김대중 대통령 방일, 장쩌민 주석 방일 / 99년 국기 국가법 제정 


이렇게 앞에서 일보 전진하면 뒤에서 일보 후퇴하는 일들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뻔하게 반복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 정치인에 대한 책은 이 책의 저자가 극렬 비판한 나카소네 전 수상의 책 한권이 전부인데, 이 책을 계기로 다른 일본정치를 다룬 책도 조금은 이해하면서 읽을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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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19. 16:33 from 책/짧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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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미나토 가나에 지음
출판사
비채 | 2009-10-1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열세 살 살인자, 그보다 더 어린 희생자… 충격적인 범죄와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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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비채, 2009


영화로도 알려져 있었지만 영화도 소설도 몇번이나 시도했다가 도중에 때려쳤다가, 요번에 방구석에서 굴러다니는걸 보고 읽게 되었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항상 막혔던 1장을 넘기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수월하게 읽혔다.


동명의 영화 소개로도 이미 대략적인 스토리는 알수가 있어서 1장의 내용은 절반정도는 알고 있는 내용을 읽으며 따라가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1장으로도 충분히 매력있는 단편이었지만, 2-3장으로의 확장, 4-5장의 변주, 그리고 6장의 마무리까지 좋은 장편소설을 하나 읽게 되었다.


특히 6장의 결말이 굉장히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피해자로서의 화자가 사적 제재라는 복수를 하게 됨으로써 , 반성하지 않은/않았을 두 범죄자는 또 사건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에 이른다.


영화는 일본영화 특유의 그 갑갑한 노잼공기가 불편해서 안 볼것 같고, 나중에 계기가 생기면 책은 다시 한번 읽고 생각해봐야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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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3. 18:51 from 책/짧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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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장강명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1-07-2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이 소설은 파격인가, 도발인가, 아니면 고발인가‘한국 문학뿐 아...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표백>, 장강명, 2011, 한겨레출판 


"거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자주 인용된 글이 실려있는 책이다. 이 대목을 보고 나는 이 책이 에세이집이거나 자신의 진심을 소재삼은 허구의 에피소드중 하나인줄 알았다. 근데 저 부분이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 것이 아닌 그저 흐르는 한 장면으로 쓰인 장편소설이었다. 


내가 최근에 이 책과 작가에 관심을 드러냈을때 (서로 공통분모가 없는거나 다름없는) 두 사람으로부터 동시에 돌아온 질문이 있다. "혹시 친척 아니에요?" (이 책의 저자와 내가 이름이 비슷하다) 같이 30대를 향해 달리는 판에 뭔 시덥잖은 저질개그냐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내가 책알못이었다. 그런 추측은 이 책을 충분히 잘 읽고 나를 충분히 잘 관찰했던 사람이라면 떠올릴 수 있는 개연성 있는 추측이었다. 죄송합니다. 


97% 지점에서야 등장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마치는 다소 허무하고 갑작스런 마무리. 작가 본인이 20대가 아니어서 조심스러운 것인지,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이전에 다 있었던 걸 의도한 것인지도. 어떤 평론가는 이 책을 평하며 부조리함에 맞서는 카뮈의 문학을 소환했다. 내가 좋아하는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비하면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에 담긴 내용이 너무나도 빈약하다. 이 빈약함은 이 소설의 작은 그릇을 반영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작중 묘사된 세상의 부조리함이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거대하게 다가오는 것인지.


한국문학을 안 좋아한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한국문학을 묻는다면 '나쓰메 소세키를 번역한 문학'이라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국어로 된 문장이 번역된 문장보다도 호소력과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아니 읽기조차 버겁다면 저자의 국적은 아무 문제 될 것이 없기에. 그래서 일부러 한국문학을 피했다. 개중에는 똥 모양이지만 깊은 된장 맛을 내는 것도 있어! 라고 한다고 다 찍어 먹어보는 바보짓은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적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한국소설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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