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저자
다니엘 튜더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07-3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불가능의 기적을 이룬 나라 아직도 불가능한 희생을 요구하는 나라...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원제 : Korea, The Impossible Country), 다니엘 튜더 지음, 노정태 옮김, 2013, 문학동네



평점을 후하게 준 느낌인데, 한국인에게 주어지는 효용보다 한국에 대해 궁금해하는 외국인에게 주는 효용이 큰 책이라는 점을 감안했다. 한국인이 한국을 소개하는 것보다 이 책을 읽히고 나서 얘기를 하는 것이 훨씬 나은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이 지니는 가치는 몇가지 문장만으로도 확연하다.



한국은 제대로 된 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해본 적이 없다.


한국인의 정은 강력한 집단주의와 관계 있다.


교회는 지금까지 사회적인 삶에서 배제되었던 중년 여성에게 소속감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여성 인력을 대놓고 내다 버리는 한국기업 덕분에 고급 여성 인력만 전략적으로 데려가는 외국계 기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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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성의 세계사

2015. 7. 1. 11:35 from 책/짧은 리뷰





비이성의 세계사

저자
정찬일 지음
출판사
양철북 | 2015-05-2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사회가 위태로울 때 마녀사냥은 시작된다 - 집단 광기에 휩쓸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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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성의 세계사, 정찬일, 2015, 양철북



비이성의 광기에 휘말린 사건 10개를 다루고 있다.

대단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그런 사건이 있었다 정도만 알고 있는 나같은 이에겐 

사건의 주요 흐름과 전환점에서의 디테일만으로도 쓸모와 재미가 있었던 책.



1. 소크라테스 재판

- 사실상 자살을 택한 것이었다.


2. 로마 대화재와 기독교인 박해

- 네로에 대한 이미지/행동이 평소 알려졌던 거랑은 좀 다른데?


3. 병자호란과 환향녀

- 현재 한국의 문제와 별 다를바가 없다.


4. 중세 마녀사냥

- 어떤 식으로 마녀로 몰아갔는가


5. 드레퓌스 사건

-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마녀사냥이 아닌가


6.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 넷상에서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은 강간 방화 민족이라고 하는 개소리의 연원이 뭔지 알겠다


7. 매카시즘

- 매카시즘 자체보다 반공 매카시즘을 다루고 나서 홍위병과 킬링필드라는 공산주의에서 나타난 참사를 다룬 배치가 마음에 듬 


8. 홍위병과 문화대혁명

- 정말 끔찍하다


9. 캄보디아 킬링필드

- 절대 선악은 없다


10. 르완다 대학살

- 이부분은 정말 아는게 없었는데 나중에라도 다시 읽어봐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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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저자
정관용 지음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 2009-11-2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양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서 소통의 중재자로 살아온 정관용...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정관용 지음, 2009, 위즈덤하우스



p.15


(....)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자아갈등'이 아닐까 한다. 명백한 사실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서로 다르게 알고 있다든가, 서로 간의 가치관이 달라서 오는 갈등은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든가, 서로 간에 일정한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그조차도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아갈등, 즉 자존심의 싸움이 아니던가. 나는 그것이 결국엔 '카타르시스 커뮤니케이션(내가 많이 쓰긴 하지만 학문적으로 정립된 용어는 아니다)'에 머물고 만다고 생각한다. 즉, 자신과 자신의 진영만을 만족시키는 거꾸로의 일방적 소통일 뿐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상대에 대한 적대감으로까지 연결된다면 토론의 정당성은 사라지고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 손석희 당시 성신여대 교수의 추천사 中




pp. 130-132


소설가 김훈 선생은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의 언어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기 때문에 언어가 소통이 아니라 단절로 이르게 된다. 이것은 지배적 언론이나 담론들이 당파성에 매몰돼 그것을 정의, 신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언어의 모습은 돌처럼 굳어지고 완강해 무기를 닮아가고 있다." 또 "우리 사회, 우리 젊은이들은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정서적, 이념적으로 인식한다.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사실일 아니라 '내편이냐 아니냐', '내게 유리하냐 아니냐'로 인식한다"라고도 했다.


(...)


김훈 선생은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위에 정의를 세울 수는 있어도 정의 위에 사실을 세울 도리는 없다. 나는 신념이 가득 찬 자들보다는 의심이 가득 찬자들을 신뢰한다."





pp. 136-138


우리 국민들에게 "당신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합니까, 진보라고 생각합니까?" 라고 물으면 대답은 아래 <그림1>과 같은 정상분포곡선을 그린다. 소위 단봉낙타형이다.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고, 보수, 진보의 양 극단으로 갈수록 소수가 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찬반이 대립되는 구체적 현실 쟁점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를 물으면 <그림2>와 같은 응답이 나온다. 중간적 입장보다는 보수, 진보 양쪽으로 치우친 입장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소위 쌍봉낙타형을 나타낸다.


자기 스스로 중도적 성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구체적 현실 쟁점에 대해서는 양쪽으로 치우친 입장을 갖는 현상, 이것을 김호기 교수는 이중성이라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단봉낙타형을 나타내는 주관적 이념 성향이 일종의 착시현상일 수 있다고 했다. 정말로 착시현상인지 아닌지는 좀 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이중적 이념구도를 나타낸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국민 여론의 양극화 현상은 분명히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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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다른 커뮤니티에 작성했던 글을 여기 불러와본다.

그땐 그냥 한 순간의 생각이라고 치부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유효한 지점이 있다는 점은 슬픈 일이다.



----


제목 : 저는 문제가 안생기게 예방하는게 최선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는건 당연하다고 봐야 합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건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맞는 말이 될지 모르나, 사회문제나 조직 차원에서는 오히려 신봉해선 안되는 속담 같습니다. 


개인 차원에서야 조심하고 예방해서 병 안걸리는게 최선입니다. 

하지만 집단 차원에서 세면 무조건 몇 % 이상은 병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병걸린 사람에게 윽박지르거나 도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것 같습니다.


진짜 정의로운 사회는 문제가 안생기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는 사회가 아니고 

문제가 생겼을때 그 문제가 납득할 수준으로 해결되고 바로잡을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하는 사회입니다.


예방을 강조하며 완벽을 추구하고 '문제의 발생'. '문제의 존재' 자체를 금기시하게 되면 생기는 폐해는 

문제를 문제가 아니라고 발뺌하게 만든다는데 있습니다.


문제가 터져도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거야 군조직의 사례야 말할것도 없고 

또 몇달째 흘러간 서남해안 섬노예건도 엄청난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1.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수 있느냐는 경악에 집중했을뿐 

2. 왜 이런 일이 가능한가

3. 어떻게 없애야 하나


1>>>>>>>>>>>>>>>>>>2>>>>>>>>>>>3 압도적인 비중입니다.


경주 리조트에서 부산외대 학생들이 받은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부에서 내건 것은 학교 승인 없는 학생회 주최의 외부행사 금지. 

이러면 절대 저 참사와 같은 종류의 사고는 일어나지 않겠지요. 

'독립적인 학생회 주최 행사'가 불가능하니 같은 조건 자체를 없애버리도록 했으니까요. 

(대신 학교가 승인하거나 고등학교 등 다른 종류의 단체행사에서 같은 참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으로 진심으로 '사고' 자체를 예방했다고 생각하는게 우리 사회의 방식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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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4.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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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고숑 2015.05.25 10:04 신고

    일본 갔다왔는데 너의 블로그가 생각나더라 ㅋ 전역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오바마 우산

2015. 5. 20. 19:03 from 내 글/단문


여성 참모 우산 씌워주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기사링크)



우리나라였으면 


1. 설령 우산을 씌워주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도 받을 사람이 넙죽 받아쓰지 못하고 아이고 제가 들겠습니다 하며 벌벌 떨 것이며


2. 우산을 씌워준 사람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준 모습을 사진찍으라고 요구하거나


3. 이런 1/2의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별 생각없이 오바마같이 할 사람들도 마음이 불편하여 그냥 씌워주는 대로 얻어쓰며 사는데 익숙해질 것이고


4. 비서관도 이런 경험을 오호호홓 하고 넘어가지 못하고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찜찜할 뿐더러 오지라퍼들의 그걸 그냥 그렇게 받았냐 쯧쯧 하는 얘길들으며 다음부턴 정답대로 하리라 다짐할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아닌 미국을 부러워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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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이 두 사건은 묶어서 판단할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분명 가장 바람직하게 채택될 유일한 선택지는 "장동민 건은 장동민이 잘못한게 맞고, 레바툰 건은 레바가 잘못한게 없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두개를 묶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장동민 건은 장동민이 무한도전 식스맨에 근접하면서 주목을 받던 도중 드러난 과거의 팟캐스트에서 나온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그 와중에 그정도 발언은 개그의 일종으로 받아줄 수도 있다든지, 무도 여초팬들이 난리를 피운다, 그 잣대로 총리나 정치인을 검증해라 등등 온갖 무장해제된 (병신)주장들이 등장하며 난리가 났다.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옹달샘은 사과를 했고, 장동민은 무도에서 발을 빼면서 적어도 장동민이 잘못했다로 결론이 났다. 개그의 일종이다, 팟캐스트니 상관없다, 무도빠들이 의도한게 꼴보기싫어서 장동민이 잘못한건 아니다는 주장은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분쇄되었다.

레바툰 건은 좀 뜬금없이 터진 건인데, 아무튼 결론은 별 문제도 아닌걸 가지고 조직적으로 여성혐오로 몰아갔다가 역풍을 맞은 건이다. 정확히 어떤 경위로 돌아갔는지 실시간으로 관심 가진게 아니라서 대충 발만 걸친 결론이지만..

이 두 사건이 남긴 해악은, 이놈의 사회에서는 원칙이나 명제에서 출발하여 논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과정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데에 있다. A→B가 아니라 A←B. 장동민의 발언이 부적절하기 때문(A)에 그가 잘못했다(B)가 나온게 아니라, 나는 장동민이 마음에 안들고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B) 그의 발언은 부적절(A)하다고 근거를 끼워맞추는 것이다. 심지어 없는 사실근거를 만들어낸다.

나는 무슨 문제에 대해 논란이 일어났을 때 A→B 라는 방법을 최소한 공유한 상태에서, 어느쪽 주장이 근거가 더 일리 있는지 따지는 과정이 있기를 바랐다. 가령, 미국에 사우스파크 같은 것도 존재하기 때문에 장동민의 발언은 개그로서 표현의 자유에 속할수 있으므로 문제 없다는 식의 주장이 있었다. 이 경우 일단 미국에 사우스파크가 있는 것은 부정할수 없는 기본적인 사실이다. 그것이 장동민의 발언과 같은 궤가 되느냐의 문제를 따진 뒤 어느 쪽이 더 일리있는 주장인가 견주어보고 합의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반론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을 보니 그런 방식으로 자기 주장을 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난 여초팬들이 싫어서 쟤네가 주장하는 거 동의할수 없다, 장동민 잘못한거 없다"는 식의 '쟤네가 싫어서 쟤네 주장에 반대한' 징징이들의 '감'이 어떤 면에서는 일리 있게 되고 말았다. 지금에 와서는 논리적으로 장동민의 잘못을 입증한 소수의 사람들이 그냥 장동민 꼬라지가 마음에 안드는 이들에게 낚여서 이용당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10대 20대들의 이렇게들 뛰어난 "사실관계를 조작하여 근거로 가공하여 말도안되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재능을 보니, 어떤 의미로는 청년 취업난이 좀 이해가 안된다. 회사에서 경험하며 배워서 만들어낼 능력을 이미 갖춘 인재들이 아닌가. 물론 그렇게 돌아가는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인지는 각자 판단할 일이다. 나는 이미 결론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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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메리트

2015. 5. 5. 19:11 from 내 글/단문


권력자가 좋은점을 뒤늦게 알았다. 자기가 자기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 미리 알았으면 좀더 노력했을텐데. 


물론 잠시동안의 그 생각은 영화 <밀양>이 떠오르며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 권력자와 범죄자가 공유하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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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주기

2015. 4. 16. 19:08 from 내 글/중문


부대 상황실을 맡은지 한 달째, 연신 날아오는 취지와 목적을 알수없는 쓸데없는 전화에 짜증을 내던 중위 2년차 봄날이었다. 여객선 좌초 소식이 YTN 속보로 보도되었고 20분쯤 뒤에 여단장(참모장) 지시로 전 부대의 휴가자에게 연락하여 본인 혹은 그 가족 중에 탑승자가 있는지 확인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설령 제주도가 집인 병사가 휴가 가는데 저가항공 두고 무슨 배를 타겠냐며 짜증을 내며 부랴부랴 휴가자 30여명의 명단을 받아냈다. 그날따라 무슨 휴가자가 그리 많았던지...


본인 핸드폰은 가망이 없어 부모님 핸드폰으로 전화를 시도했지만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를 곱게 받아줄 리 없는 세상이다. 궁여지책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답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11시쯤부터 몇명 남았냐고 상황실장이 독촉하기 시작했다. YTN에서는 300여명 구조 보도가 나왔다. 12시 반이 되어서야 일때문에 못봤다는 마지막 어머님의 답신이 돌아왔다. 그날 오전의 해프닝은 '3여단 전원 이상없음'으로 종결되었고 나는 "하여간 호들갑들은..." 하고 혀를 차며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300여명 구조 보도는 오보"라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325/list?bbsId=G005&pageIndex=1&searchKey=userid&searchValue=85zig4l4lkQ0&searchName=%ED%95%98%EB%A3%A8%EC%B9%B4%EC%94%A8&itemId=143&itemGroupId&platformId


루리웹 눈팅한 것은 최근이다. 그전까지의 루리웹은 무슨 이야기를 어떤 느낌으로 하는 곳인지는 알지만 굳이 들어가지는 않는, 내게는 디씨나 여시와 같은 존재였다. 사고와 관련된 루리웹 유저의 이야기를 기사로 읽었기 때문에 찾아 들어가 보았다. 6000개의 댓글을 하나씩 하나씩 읽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댓글들... 살아남기 위해 철판을 긁어댄 누군가의 손톱자국처럼, 한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수백명의 댓글들이 눈에 따갑게 박힌다.


평소에도 수없이 티를 내었듯이, 현재 우리 사회에 있는 문제들의 원인을 편리하게 1940년대로 돌리며, 친일청산과 민족정기 확립실패가 본질이라는 식의 주장을 굉장히 싫어한다. 나도 조금 편해지려고 '친일청산'이란 단어는 '강단사학' '주류 경제학'과 같이 묶어 거름종이로 삼고 있다. 때문에,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보자는 주장에 대해서 동의하는 편이다. 그것이 설령 어떤 배경과 목적을 지닌 발화건 간에, 말벌떼가 날아들 것을 알지만 포기하지 못하는 어떤 달콤한 것처럼 쥐고 있었던 명제였다.


그런데 과거사 얘기 나올때마다 논의를 거부하고 준엄하게 현재와 미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오늘에서야 1.00년이 된 사건을 과거 문제로 밀어내려는 시도를 보니 너무나도 참담하다. 지금까지 나는 순진하고 순수한 위선과 악을 경계하고 경멸했는데, 이토록 악랄하고 악랄한 악랄함은 어떻게 대해야하는 건지. 어떻게 이게 덮어두고 나아가야 하는 과거 문제가 되는 것일까. 내가 말하는 것과 같은 말을 하는 자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다.


비가 오고 바람도 불었다. 좋은 일이 있어서 술자리가 있었다. 자리에선 억지로 웃으면서 참고 마셨는데 파하고 나서 걷다보니 차라리 이런 날엔 술을 마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스물 아홉. 이제는 '어르신들이 문제야 문제'라고 담담하게 말할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이토록 무력할 수가 있는 걸까. 내년 이맘때쯤에는 이런 감정으로 글을 쓰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4.19와 현충일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놀면서 '그때 그 사람들이 바라는 모습이 바로 이렇게 우리가 즐겁게 사는 모습이야'라고 뻔뻔하고 떳떳하게 생각하고 싶다. 그런 날이 2년, 5년, 10년째에는 올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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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역사적 결정론이 허구였음이 드러났어도 그것은 진짜 사회주의가 아니었기때문에 사회주의 운동은 유효하다는 운동권들을 시대착오적이라며 마음껏 비아냥대면서


정부와 관계된 행정의 조직적 문제들이나 비리 등 사회 풍토의 원인이 1940년대의 친일파 청산의 실패로 결론짓고 민족정기 운운하는 열혈 시민들을 보면


나로선 민노당과 국참당이 왜 통합진보당이라는 괴물이 되었는지가 정치공학적인 요인이 아닌 신념구조의 문제에서도 타당한 과정이었다는 악의섞인 결론을 낼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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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

2015. 3. 10. 19:52 from 책/발췌


칼 포퍼, 필 바빈 지음, 이화여대 통역번역연구소 옮김, 아산정책연구원, 2015




칼 포퍼

저자
필 파빈 지음
출판사
아산정책연구원 | 2015-01-3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이 책에서는 우선 포퍼의 생애와 연구에 대해 전반적으로 짚어본다...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p.63-65

포퍼는 과학에 대한 이런 귀존의 이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가 제시한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그는 귀납법의 철학적 논리적 토대, 즉 "어떤 관찰 명제가 사실이라면 그것에서 추론한 이론 역시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라는 논리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포퍼는 "아무리 반복되는 현상일지라도 관찰에서 추론한 일반화가 진실임을 보증할 수 있는 규칙은 어디에도 없다."라고 반박한다. 

(...)

이 주장으로 포퍼는 급진적 결론에 도달했다. 구체적인 사건이나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자연법칙을 도출해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오랜 견해가 잘못됐고 소용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귀납주의의 문제가 '어떤 이론도 절대 과학적으로 증명될수 없으며 오직 반증될 뿐'임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백조는 하얗다'라는 명제는 아무리 많은 하얀 백조를 관찰해도 증명될 수 없으며, 그저 한 마리의 하얗지 않은 백조를 관찰함으로써 확실히 반증될 수 있다. '그 요새는 난공불락이다'라는 주장은 침입이 실패한 경우를 아무리 많이 끌어와도 증명될 수 없다. 단 한번의 침입으로 확실히 반증될 뿐이다. 아즈텍 사람들이 믿었듯 '태양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태양이 뜨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론은 제물을 제대로 바친 수많은 예로는 증명될 수 없으며, '제물을 바치지 않았는데도 태양이 뜬다'는 사실로 확실히 반증된다. (...) 이 반증된 명제는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포퍼에게 이론의 반증은 축복하고 높이 평가해야 할 과학적 지식의 진정한 진보다. 어떤 이론이 진실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무엇이 진실인가, 혹은 진실일수 있는가'를 향한 중요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반면 쓸모없는 이론은 반증이 불가능한 이론들이다. (후략)



pp.78-79

(전략) 사회과학적 연구 역시, 시작은 사회 정치문제를 파악하는 것이며, 추측과 반증의 시행착오를 거쳐 기존의 이론과 관행, 타인들이 제시하는 가설적 해결 방법에서 오류를 제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역사의 향후 진로에 대해 장기적이고 보편적인 예언을 하는 것은 사회 이론의 역할이 아니다.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문제를 타인이 비판하고 검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 이미 시행 중인 해결책, 그리고 사회 정치제도와 사회적 관행이 이미 포함된 방책들이 과연 옳은가를 확인하는 것이 사회 이론의 역할이다. (...)

포퍼는 이처럼 물리학과 사회과학의 특징은 '방법의 통일'이라고 주장했다. 즉, "모든 이론적 과학, 혹은 보편적 과학은 그것이 자연과학이건 사회과학이건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기존의 사상, 이론, 관행을 비판적 합리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구성원들이 기존 문제에 대해 반증 가능한 가설을 추론하고 반증하는 시행착오 과정은 어디에서나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와 사회 문제에 관한 이론들은 자연과학의 문제에 관한 이론들처럼 반증할 수 있어야 한다. 포퍼는 또한 물리학 영역에서 과학적 이론과 비과학적 이론을 구분하는 제대로 된 기준이 반증 가능성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과학을 위시한 다른 분야에서도 반증 가능성은 진짜와 사이비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포퍼는 과학적이라고 칭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많은 이론들의 취약점이나 비과학적인 특징을 밝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론의 세가지 예가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다. 포퍼는 이 이론들의 문제가 정확한 반증이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고 봤다. 반론이 불가능한 것이다. 포퍼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자, 프로이트주의자, 아들러주의자 모두 각 이론의 해석하는 힘에 매료된 것이다. 실제로 "이 이론들은 자신들의 영역 내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p.79

(전략) 포퍼는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같은 개인의 이론이 거짓임이 증명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과학적 이론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뉴턴의 만유인력과 역학이론도 아인슈타인에 의해 반증됐다. 하지만 그런 아인슈타인조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나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혹은 마르크스주의는 반증하지 못했을 것이다.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하에서는 환자가 한두가지 억압도니 충동의 조합으로는 자신의 행동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느껴도, 그들은 그저 '부인'하고 있으므로 치료가 더 필요한 사람이라고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계급 투쟁이나 공산주의의 필연적 탄생을 거부한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은 그저 '허위의식'을 앓고 있는 것이므로, 마르크스주의 독단적 신념을 더 교육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질 뿐이다.



pp.93-94

하지만 포퍼는 이미 많은 독자들이 눈치챘을지도 모르는 지점을 지적한다. 과학적 방법에 대한 역사주의자들[각주:1]의 비판은 사실 포퍼가 그렇게 무너뜨리고자 했던 전통적, 귀납주의적 과학관에 대한 비판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사회 이론의 소위 '과학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결론적으로 포퍼는, (물리학의 방법을 사회과학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 역사주의자들이 사실은 과학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바람에 "과학적 방법을 사회 연구에 적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천착하고 있다고 봤다. 포퍼가 보기에 역사주의자들의 문제는 귀납적 모델이 사회 연구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 핵심에서 잘못된 결론을 끌어냈고, 잘못된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귀납적 방법이 물리적 자연적 현상을 연구하는 데는 분명 적합하지만 사회적 현상을 연구하는 데는 부적합하다는 것이 역사주의자들의 주장이었음을 기억하라. 논리실증주의자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주제별, 방법론별로 학문 분야를 분리하려 했던 것이고, 이에 포퍼는 강경하게 반대했다. 역사주의자들은 귀납적 방법이 물리학에서 차지하는 절대 우위를 의심의 여지없이 인정했다. 자연과학자들은 그들 본분의 일을 하고, 사회과학자들은 그들 본분의 일을 하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에 포퍼는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다. 귀납적 모델이 사회 연구에 적합치 않다고 포퍼가 주장한 이유는 귀납적 모델이 그 무엇을 연구하기에도 적절치 않기 때문이었다. '사회과학자들은 귀납적 모델을 폐기해야 한다'는 역사주의자들의 주장에 포퍼가 동의하기는 했지만, 역사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해도 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더 일관성 있는 개념의 과학과 과학적 방법이 등장해야 한다는 점에서였다.




  1. 칼 포퍼가 말하는 역사주의적 전통을 지닌 이들로는 플라톤, 헤겔, 루소, 콩트 등을 들고 있으나, 이 대목에서는 '사회과학 영역에 적용할 과학적 방법'의 문제에서의 하버마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등 현대의 비판 이론가들의 논리가 주 타겟이 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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