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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저자
최장집 지음
출판사
폴리테이아 | 2012-10-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한국 민주주의의 현장을 탐사하다!인간적 상처들과 공동체의 해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41 

전국적인 정당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지역구의 정치인 차원에서도 지역구 내에 있는 이들 사회경제적 인구 집단의 실태를 조사하고,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들의 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은, 정치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정당이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 정당의 사회적 기반없이 민주정치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활동은 선거 관련 법률들과 충돌하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지역 유권자 대중과 항상적인 접촉을 못하게 하는 것이 현 선거 관련 법률의 기본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법과 제도들이 정치 개혁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실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pp.45-46

경직되고 관료적인 자산 소득 평가방식에 대해 그들의 불평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급자와 탈수급자 간 이해관계의 갈등도 보이지 않게 자라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리비아에서 설비 공사 일을 하다가 귀국했다는 한 사람은 한국의 복지가 중동보다 못하다면서 "사람을 묶어서 사료주는 식으로 한다"고 관료적 복지 행정 체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p.48

내가 전주시 덕진구의 지역 자활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그들은 "생활 자립에 실패해서 다시 수급자가 된다면 무슨 창피일까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용기를 심어 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점에서 사회적 시민권의 개념은 중요하다.



pp.66-67

필자는 1990년 중반 우루과이라운드로 쌀 수입 개방 압력이 커지고 있던 시기, 일본 시코쿠 지방에 있는 고치현 농촌 마을의 한 노쿄(농협) 지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그들은 매우 실천적인 이익집단으로서 쌀 개방에 대응하는 전략을 토의하고 있었다. (...)

집권 자민당은 노쿄와 강력한 연대를 구축하고 있었고 농민 이익을 대표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들이야말로 일본 보수주의가 갖는 강력한 사회적 기반을 보여 주는 징표가 아닐 수 없다. (...)





pp.73-74

여기에서 특징적인 것은, 대부분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의 배경을 가진 이들의 노동운동이 자신들의 실제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즉 그들의 운동과 그들의 계급은 서로 분리된 것이었다. 따라서 실제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 내지 사회경제적 권리를 향상시키는데 운동의 중심이 두어졌던 것이 아니라, "반제 민족 해방" 또는 "사회주의 노동 해방"의 이념에 '복무'하려 했다.

그것은 일종의 '중산층 급진주의' 내지 '정서적 급진주의'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고, 지금도 그 유산은 '내용 없는 언어들의 공격성'이나 '진리를 독점한 듯 내세우는 도덕적 우월 의식'등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앞 세대와는 달리, 청년유니온 조직자들이 운동을 조직하게 된 동인과 추진력은, 그들이 직면하는 사회경제적 조건과 실제 생활 경험으로부터 나온, 자신과 동료들의 문제였다. 그래서 그들의 운동은 실제적이고 또 실용적이었다.

(...) 이종필 씨는 "시간제 아르바이트, 학비 조달, 취업 불안, 고용 불안정, 저임금 문제들에 대해 당사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화 의제화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당사자 스스로"문제 해결자로 나선다는 말이 특별하게 들렸다.



pp.91-92 

이날 인터뷰에서 알게 된 것은, 보통 한국 국적이 없는 모든 노동자를 이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만, 합법적 취업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법적 지위의 차이로 인해 중국 동포 노동자와 여타 이주 노동자의 고용조건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중국 동포 노동자가 아닌 이주 노동자는 5년 노동 시한이라는 장벽을 피할 수 없다. (편집자 주 : 중국 동포 노동자들은 여권 체류 기간이 10년)

<근로기준법> 6조는 '국적'이 다르다고 "근로 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국적의 노동자들에게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법 조항이 이주 노동자들에게 적용될 리 만무하다. 이런 환경은 억압적인 고용 관계와 더불어 임금 체불, 산업재해, 구타, 차별, 성폭행과 같은 인권침해 문제를 불러왔다.



pp.121-122

여기에서 민주화 이후 반복되어 온 한국 정치의 한 속성이 드러난다. 정치가 현실 생활에 기초를 둔 사회경제적 이슈 영역을 적극적으로 대면해 그 영역에서의 갈등을 해소해 가면서 정치개혁이나 '역사바로세우기'와 같은 상징적이고 정서적인 개혁 이슈를 흡수 통합해 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이 후자의 이슈에 골몰하면서 전자의 사회경제적 과제를 방치하는 특징을 보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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