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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26 올 추석 풍경
  2. 2014.02.17 개인, 국적, 빅토르 안
  3. 2010.12.05 나는 자유를 말하고 싶은데 (1)
  4. 2010.07.07 사회

올 추석 풍경

2015.09.26 20:02 from 내 글/단문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올 추석은 "명절이 이렇게나 좋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뭐 이런 소리는 안나오고 "(힘들겠지만 방송에서 징징거릴순 없고 가장 기본적이고 깔끔하게) 추석 잘 보내세요" 정도로 덕담 한마디로 끝내는 분위기라는게 예년과 다른 느낌을 준다.


지들도 더이상 "아니 명절은 좋은거라고!" 말하기가 민망해졌나보다. 그러게 그런 얘기 한창 나올때 "그래도 얼마나 좋습니까 어쩌구저쩌구"같은 훈계(지들은 설득이라 생각했나보다)를 할게 아니라 조금만 더 낫게 바뀌도록 말이라도 한마디 했으면. 이제는 뜬금없이 야구 중계중에 "명절때 제일 해선 안되는 말이 이거랍니다"가 나온다. 


애초에 명절때 마주치게 되는 친척이라는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건 평균적으로 한국인이 얼마나 타인과 대화를 못해먹을 수준인지 알려준다고 본다. 완연한 타인과는 달리 예의차리기는 싫은데 정작 서로에 대해 아는게 없는 관계. 아니 친척도 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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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얘기하자. 빅토르 안의 선전과 한국 대표선수들의 부진이 몰고 온 이 여론에 대해 적어도 내 주변에서 쇼트트랙을 깊게 아는 사람일수록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용기를 내어 반론하기보다는 그냥 지켜보다 짜증을 내고 있는 수준이라 반론이 잘 안보이는것 뿐이다.



섬노예 문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것 같아 느끼는 무력감이 분노를 한층 더하지만, 쇼트트랙 문제는 과거의 불신이 현재의 불신이 되어 도리어 진실을 가리고 있다. 덧붙여 이번 오판의 원인에는 개인의 영달을 위한 행동이 어느 수준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미개한 인식이 있다.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가 좋은 조건이 맞아 기회를 찾아 나간것이라는 가설 자체가 전혀 통하지가 않는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고 수많은 흑막과 추측이 난무하는 현 상황에서 이토록 합리적인 가설이 대두되지 않는, 아니 대두되어선 안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끔 개인이 기회를 좇아 국가를 넘나든 것이라는 가설이 등장하면 수십명이 달라들어 나라가 버린 비운의 주인공 서사를 방해하는 사문난적으로 몰고 간다. 이따위 인식 수준은 90-00년대에 한창 있었던 기술유출, 국부유출 드립의 연장선상이라 할만하다.



또다시, 개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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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를 말하고 싶은데, 수많은 의식 있는 사람들은 일단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연대의식이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연대의식이 아주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도 그 이야기에 동감한다. 그런데 난 개인의 자유를 말하고 싶다. 누구에게도 함부로 간섭받지 않을 자유가 너무 고프다.
 


 
 
어릴 적부터 내 눈에는 닮고 싶음의 광경보다는 보기 싫음의 풍경이 더 많았다. 존경하는 인물은 예전부터 없었고, 결국 없었고, 지금도 없다. 닮고싶다는 마음보다는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내 마인드를 지배했다. 심장이 뛰는 한은 내 머릿속에선 ‘타산지석’의 원리가 진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경계했었던 것은 ‘오지랖 넓은 사람’이었다. 개인과 개인과의 거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 혹은 그 실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을 경멸했다. 개인의 사사로운 영역, 신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간섭하고, 타자인 주제에 타인의 내면을 제 뜻대로 조작하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그것을 선의로 변호하며, 관심과 정이라고 부르며 장려한다.

 

 
 
간섭받기 싫은 나는 누구에게도 절대로 간섭하는 존재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기본적인 사교성/사회성이 현저하게 떨어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실 20세까지 객관적인 내 성격은 그 누구도 도저히 어울리기 어려운 존재였다. 꼬장꼬장한 나를 감당하고 받아주었던 사람들이 고마울 뿐.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여성과 한 자리에 마주하면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말도 더듬더듬, 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힐끗힐끗했다. 수능 끝나고 그것을 극복하는데 두 달 가량 걸렸던 것 같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개념도 전혀 없었고, ‘공감’과 ‘이해’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다. 이런 녀석이 사회학과에 오다니, 재밌는 일이다.
 


 
 
다행히 이제는 사회성과 사교성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인식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대학생이 되어 그 이전과 비교해 가장 변한 것이 있다면, 사교성에 대해 첫걸음을 내딛었고 그것을 잘 하려고 애썼다는 점인 듯하다. 그러나 유예된 학습영역이 아직도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데, 아직 제대로 연애를 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가 그 증거가 되겠지 싶다.
 


 
 
또 너무 바깥으로 샌 것 같다. 항상 이렇게 내 생각을 말하다보면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보충하려고 내 생애환경을 주저리주저리 말하게 되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사회학도이기도 하고 사회성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잘 느끼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개인의 자유, 한국사회에서 고사 직전인 진정한 자유를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인’과 ‘자유’를 강조하면서 ‘사회적 연대’를 배제하거나 그와 대립하지 않고 아우를 수 있을까?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연대, 둘 다 한국사회에 결여되어있는 아주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나는 학자가 될 능력도 의사도 없지만, 이 문제는 어쩌면 평생 내가 지고 갈(아마 한국사회를 떠나지 않을 테니) 고민이자 화두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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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2010.07.07 07:19 from 내 글/단문

내가 개인주의, 자유주의자로서의 '사회'에 대한 인식(혹은 각성이라고 해도 좋겠다)을
하게 된 것은
'내 동생 정도의 사고도 포용하지 못하는게 무슨 사회인가?'
라는 불만과 문제제기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한국사회 이곳저곳에 자리잡고 있는 파시즘에 대한 반감도 여기서 시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도, 내게는 그 프레임으로 읽힌다.
정치보복이니 검찰이 문제니 뭐니 하지만,
내게는 한국사회란 얼마나 개인에게 억압적일수 있는가,
삶에 있어서의 선택지와 자유를 주지 않는가로 읽힌다.

틈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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