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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05 한자교육은 강화되어야 하나
  2. 2013.12.26 언어교육이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


  그동안 일각에서 꾸준히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왔고 이 때문에 한자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찬반론이 있었는데, 현재는 철회되었지만 작년 한때 교육부는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이 방침은 그다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가독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한자와 한글이 섞여있는 텍스트는 한글로만 되어있는 텍스트에 비해 읽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이는 학습자의 학습의욕을 저하시킬 개연성이 있다. 어느 정도 독해속도가 형성된 성인도 법학 관련 서적 등 한자가 섞인 텍스트를 읽으면 급격하게 읽는 속도가 떨어지게 되는데, 초등학생에게 이런 국어교과서를 읽게 한다는 것은 마치 정철의 <관동별곡>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들게 할 것이다. 


  두 번째로 학생의 학습부담을 과중시키는 비교육적인 처사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우 한자를 혼용해서 쓰는 사회이므로 원활한 언어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2천자 가량의 상용한자를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학습부담을 감안하여 어린이들이 접하는 교과서나 잡지 등의 매체는 소리나는 대로 읽는 히라가나로만 쓰여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와 반대로 한글 전용 사회여서 성인들은 한글을 전용하면서도, 막 학습을 시작하는 단계인 초등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에게 한자를 병기한 문장으로 학습하게 한다면, 이런 정책은 비교육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의 두 근거는 한자병기라는 구체적 방법에서 비롯되는 문제점과 비판점이다. 일단 교육부는 현재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침에 대해서는 철회하고, 학습자에게 한자를 친숙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검토중인 상황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한자교육 강화 주장이 나오는 것에는 "한자를 아는 것이 적어도 한국어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한자교육이 강화되어야 하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한자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의 판단으로 귀결된다.




  과거 한문/한자의 구분없이 필수교육화 해야한다고 필요성을 강조했던 질낮은 주장들과 달리, 최근 추진되는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의 한자 병기와 같은 한자교육 문제를 다룬 주장은 ‘한국어 하에서의 한자’로 범위를 한정하여 한자교육을 국어교육의 범위에 포함시키겠다는 의도로써 한층 진일보한 주장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한자의 모양과 뜻을 아는 것이 한국어능력/언어능력과 깊은 관계가 있는지, 관계가 있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우선순위에 놓여야 하는 것인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한자와 한국어의 관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어휘능력과 그 응용능력에 있다. 흔히 나오는 한국어 어휘의 70%가 한자어이고,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한자의 뜻을 앎으로써 생소한 한자어에 대한 이해가 용이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한국어 어휘 중 한자어라고 지칭되는 것의 대부분은 서구 근대의 개념어를 번역하는데 쓰인 것들이다. 이런 단어들의 뜻은 개별 한자의 뜻을 안다고 해서 이해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수학, 생물학과 같은 단순한 경우에는 수(數)나 생물(生物)의 뜻을 안다면 그 파악이 한층 수월하겠지만, 이정도의 단순한 규칙은 현행 수준의 한국어교육으로도 대다수가 알 수 있다. 추상적(抽象的), 구체적(具體的)과 같은 단어 또한 한자를 알게 한다고 그 단어의 이해가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한글로 자주 쓰는 단어이기 때문에 학습자들이 충분히 그 뜻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회(社會), 자연(自然), 자유(自由)와 같은 경우에는 한자의 뜻 탐구에 함몰되면 오히려 바른 이해를 해치게 된다. 이들은 각각 society, nature, liberty의 번역어로 선택된 것들인데 모일 사, 모일 회, 스스로 자, 그러할 연 등의 한자를 안다고 단어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자연이란 단어는 nature의 번역어로 선택되기 전부터 도가에서 사용된 개념이었는데 한자의 뜻으로 유추하여 nature의 번역어 자연을 혼동해서 이해하면 많은 오류가 발생한다. 근대 일본의 자연주의 문학은 이런 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이며[각주:1], 이런 문제는 오히려 한자에서 벗어나 영어에 친숙해진 지금 세대는 빠지지 않는 함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앞에서 언급한 한자를 통한 어휘 응용방법이 해당되지 않는 단어들이 오히려 학습자의 언어능력이나 지적세계를 구성하는 주요한 어휘라는 것이 한자교육 강화론이 갖는 맹점이다. 즉 한자를 아는 것이 도움만 되는 것은 아니고 방해가 될 수 있으며, 한자교육 강화론에서 주장하는 어휘습득에 도움이 되는 응용방법은 모든 단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선택적으로 기능하기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고, 그 해당하는 단어의 범위가 지적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영역이 아닌 부수적인 영역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한국어 능력을 넘어선 국민교육 차원의 문제이다. 의무교육 차원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느냐 선택 혹은 교양과목으로 지정하느냐의 차이는 그 영역의 효용성과 효율성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분명 한자를 아는 것이 반강제적으로 요구되는 영역은 존재한다. 불문학을 전공하는 자에게 불어능력이 필요하듯이 국문학, 국사학, 중문학, 한문학 등의 학습을 위해서는 한자능력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유로 한자를 전 국민에게 필수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세상에 배워서 나쁠 학문은 없다. 그러므로 한자를 일반교육에 필수로 넣기 위해서는 단순히 배워서 좋다고 해서는 곤란하고, 일반인 학습자를 기준으로 해당 과목의 학습에 투입될 시간과 노력, 그 효용과 효율을 따져야 함이 당연하다. 단순히 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의무교육 편입의 필요성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내 생각엔 한자의 효용에 있어 필수적인 분야는 어휘를 가지고 조합하며 놀 수준이 되는 고도의 한국어능력을 갖춘, 한국어 문학을 다루는 이들만이 해당될 뿐이고, 각종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적 지식을 얻는 데에 필요한 것은 한자보다는 영어이다. 심지어는 한자교육 강화의 주된 근거로 제시되는 한자어조차도, 개별 한자의 뜻을 탐구하는 것보다 그 단어에 대응하는 외국어 단어를 대응시키고 그 단어의 사용례를 확인하는 방법이 적절한 경우가 많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서구에서 만들어진 단어를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니 일반인에게 있어 한자는 선택적 교양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효율성에 있어서 타당한 귀결일 것이다.


  한자는 다른 외국어에 비해서는 한국어와 맺는 뿌리가 깊고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중요성은 독보적으로 특별한 게 아니고 위상은 과대평가되었다.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그 어원에 해당되는 라틴어 전통의 규칙을 아는 것은 하나의 응용방법이나 배경지식의 확장방법은 될 수 있으나 그것이 영어를 익히는 데 있어 필수 과정일 필요는 없듯이, 한국어에서 한자가 차지하는 위상도 이와 같다 할 것이다. 특히 (일본식) 한자어가 근대 서구 학문을 수입하면서 번역의 도구로서 기능하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앞서 언급한대로 한자를 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해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반인의 개념어 이해는 해당 개념어를 구성하는 한자에 기댄 어휘능력이 아니라 단어가 쓰이는 맥락을 파악하는 본질적인 논리력, 추론능력에 우선순위가 있어야 하고 전공자 이상이라면 더더욱 번역의 도구인 한자보다는 개념의 발상지인 유럽 언어에서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다만 완전히 한자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므로 한자 학습의 흥미를 제공하는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시험평가요소에서 제외하고 학습자의 참고를 위해 일반사회 과목에서 사회과부도로 지도책을 제공하듯이 국어과목의 일부로 별책이나 부록 정도로 수록하여 어휘 응용의 흥미를 유도하는 것은 검토할 만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한자는 개인의 필요에 의해 학습되는, 제2외국어와 같은 교양과목의 영역에 있어야 함이 마땅하다.



  1. 각종 서구 개념어들의 번역과정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해프닝과 태생적 문제점을 다룬 책으로 야나부 아키라의 <번역어 성립사정>이 있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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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oid=005&sid1=102&aid=0000612339&mid=shm&mode=LSD&nh=20131226063943


이 기사를 보고 나도 기사제목을 하나 뽑아보았다.


[기획] 요즘 주부들 들풀 이름 잘 몰라, 귀농시켜야 되나?



어르신들은 잘 알고 있는 실각 정도의 용어를 요즘 세대가 모르는 것은 말 그대로 상식선의 어휘력이 요즘 많이 낮아졌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낮아진것 같지도 않다. 반대로 실각을 모른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될 정도로 평균적인 지식수준이 올라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더욱이 예전에는 모르면 입다물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무지가 더 돋보이는 효과가 있기도 하고.


결국 대중의 어휘력이 낮은 것이 문제가 되는것은 실각이라는 수준의 단어를 알고 모르는 것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뜻이 된다. 내가 뽑은 제목처럼, 길가에 자란 풀떼기들 구분하지 못한다고 기본상식을 부족하다고 하지는 않으니.


문제는 해답이 왜 한자교육이 되냐는 거다. 이 부분이 블랙코미디라고 할수 있다. 이 기사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언어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이 부족하다는 것을 이중구조로 증명하고 있다. 실각이라는 단어 뜻을 알면 뭐하나, 그걸 한자교육을 가르치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수준인걸. 이런 멍텅구리들이 적지 않게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언어교육은 더 강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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