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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독서 어워드

2014.12.28 22:09 from

2011년 말에 독서 어워드 결산을 했었고, 벌써 3년이 지났다. 2012년에는 입대하고 훈련받고 논답시고 안했고 2013년에는 왜 안했는지 모르겠다. 빈약하다고 생각했나. 그래서 올초에는 독서에 속도를 좀 붙였던거 같은데 지나고 보니 12, 13년에 비해 특별히 풍요로웠던거 같지는 않다. 그래서 2012-2014 한꺼번에 결산!

1.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2010), 안병길, 동녘
개인적인 관심사에 대한 공부가 아닌 교양으로서의 독서라면 결국 학자와 대중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하는 수준의 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은 딱 그 지점에서 보여줄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정보와 논지를 제공하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 시민을 위한 '진짜 자유민주주의' 입문 교과서의 결정체.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절대 어려운 글도 아니다. 물론 평소에 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면 공감하기 어려울 수는 있다.

2. 순수의 시대(1920), 이디스 워튼, 송은주 옮김, 민음사
누구에게는 로맨스 소설, 누구에게는 성장 소설, 누구에게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누구에게는 문화인류학적 느낌을 줄 재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나 '데미안'이 앞으로의 세계를 스스로 판단해 나가야할 20세에 권하는 성장 소설이라면, '순수의 시대'는 정해진 것들 안에서 골라 선택해야 하는 30세에 권하는 성장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3. 코스모스(1980), 칼 세이건,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과학자가 이렇게나 글을 아름답게 쓸수 있구나, 그 순수한 열정에 다시금 감탄하게 되는 책. 꽤나 흥미진진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분량이 쓸데없이 길다고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서술이 돋보여서 평범한 인문계 전공 소시민인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4. 고민하는 힘(2009), 강상중, 이경덕 옮김, 사계절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괜히 많이 팔린 것은 아니다. 그만큼 그런 이야기와 고민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질 문제였기 때문이니까. 고민, 청춘, 나쓰메 소세키, 막스 베버의 키워드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책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줄곧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3년 동안 4개라는 건 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책 고르는 기준이 깐깐해진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이나 독서에 쓴 시간이 적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 외에 추천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읽은 것들은

1.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2013), 천종호, 우리학교
"안돼 못 바꿔줘 빨리 돌아가"의 주인공이 소년재판을 겪으면서 있었던 일들을 모은 책이다. 내용도 좋지만 저자 소개에 적힌 책을 내게 된 배경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20대부터 큰 꿈을 품을 필요는 없다는, 그릇을 일단 키우는게 맞다는 생각. 저자가 사법고시를 준비할때부터 청소년들을 후원하는 소년재판 전문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듯이, 나는 20대에 그런 큰 목표로부터 좀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2.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2012), 최장집, 후마니타스
2년 전 생일 선물로 받은 따끈따끈한 책. 딱히 새로운 이야기를 했다거나 인상깊은 주장이 실린 건 아니지만 그냥 퀄리티가 보장되는 책이다.

3. 거리로 나온 넷우익(2012), 야스다 고이치, 김현욱 옮김, 후마니타스
일본의 극우 단체 재특회에 대한 이야기. 한국 사회에서 일베가 뜨면서 뒷북처럼 다시 재조명된 감이 있는데 개인적으론 재특회=일베엔 동의할 수 없지만 결핍과 상실감이 인간에게 어떤 길을 걷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큰 의미로는 생각해볼만 하다. 읽고나서 뜬금없이 난 <영웅전설5;바다의 함가>를 떠올렸거든...

4.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2013), 엄기호, 따비
공교육과 학교 문제에 대해서 언제나 악마가 되었던 교사들이 맞닥드린 현실적 고충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정보제공으로서의 유의미함도 있지만, 저자 특성에 기인한 한계도 분명하다.

나름 신간을 많이 읽었다. 주 공급처가 대학교 도서관에서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옮겨간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2015년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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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2014.10.20 00:28 from 책/발췌




순수의 시대

저자
이디스 워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8-07-1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오만하고 우아한 옛 뉴욕을 무대로 펼쳐지는 사랑과 회한의 이야기...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민음사, 2008.



pp.26-27

그녀가 말했다. "아, 너무 많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난 죽어서 땅에 묻힌 것이 틀림없나 봐요. 이 정든 옛 고향은 천국이고."

이유는 확실히 짚이지 않았지만, 이 말은 뉴랜드 아처에게 뉴욕 사회를 불경스럽게 묘사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p.148

아처는 올렌스키 백작의 비난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품고 그녀와 헤어졌다. 아내의 과거에서 '비서'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은 아마도 그녀를 탈출시키면서 뭔가 자기 몫의 보상을 챙겼을 것이다. 그녀는 말로 표현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참기 어려운 상황에서 도망쳤다. 그녀는 젊었고, 겁에 질려 있었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 자신을 구해 준 사람에게 감사의 정을 느꼈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딱하게도 법과 세상은 그녀가 느낀 감사를 가증스러운 남편과 똑같은 눈으로 보았다. 아처는 책임을 맡은 이상 그녀에게 이를 이해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틀림없이 그녀는 더 큰 관용을 기대했겠지만, 그는 순진하고 따듯한 뉴욕이야말로 그녀가 가장 자비를 바라기 어려운 곳임을 확실히 이해시켰다.

이 사실을 그녀에게 분명히 알려 주고, 그녀가 이를 체념하고 감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에게 참을 수 없이 괴로운 일이었다. 그는 그녀가 말없이 과오를 자인하여 자신을 그의 처분에 내맡김으로써 초라하나 매력적인 모습이 된 듯이, 질투와 동정이 뒤섞인 모호한 감정으로 그녀에게 끌리는 것을 느꼈다.



pp.228-229

아처는 레퍼츠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의 신성한 예식에서 얼마나 많은 결점을 찾아냈을지 궁금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한때는 자기도 그런 문제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의 일상을 지배했던 그런 소소한 문제들이 이제는 우스꽝스러운 아이들 장난이나,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형이상학적 용어들을 놓고 중세의 신학자들이 벌이는 언쟁처럼 느껴졌다. 결혼식 직전까지 결혼 선물들을 '보여 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격론이 벌어져 분위기를 어지럽혔다. 버젓한 성인들이 이렇게 시시한 문제들을 놓고 흥분해서 소동을 벌이고, 웰랜드 부인이 분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차라리 기자들이 내 집을 마음껏 드나들게 하는 편이 낫겠어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보여 주지 않는 쪽으로 문제가 결판난 것이 아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때는 아처도 이런 모든 문제에 확고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했고, 자기가 속한 작은 부족의 관습과 예절 하나하나가 온 세상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문제라고 믿었다.

그는 생각했다. '우리가 그렇게 복닥거릴 동안에도 어딘가에 진짜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진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을 거야.....'




pp.354-358

그녀의 어조는 자연스럽다 못해 무심하게 들려서, 아처의 동요하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다시 한번 그녀는 단순한 대응을 통해 그가 인습을 내팽개치고 있다고 여겼던 바로 그 순간에도 어리석게 인습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당신처럼 솔직한 여자는 만나 본 적이 없어요!" 그가 외쳤다.

"아, 아니에요. 하지만 가장 까다롭지 않은 여자들 축에는 낄 수도 있겠네요." 그녀는 웃음을 담아 대답했다.

"표현이야 좋을 대로 해요. 당신은 뭐든 있는 그대로 보는군요."

"아, 그래야만 했어요. 난 고르곤[각주:1]을 보아야만 했어요."

"흠, 그것이 당신을 눈멀게 하지는 못했소! 당신은 고르곤이 별 볼일 없는 늙은 요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던 거지."

"고르곤은 아무도 눈멀게 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람들의 눈물을 말려 버리죠."


(....)


잠시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속삭이듯 물었다.

"실현될 거라고 믿는다니 무슨 뜻인가요?"

"당신도 알고 잇어요. 그렇지 않소?"

"당신과 내가 함께 있게 되는 당신의 꿈 말인가요?" 그녀가 갑자기 미친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할 장소를 잘도 골랐군요."

"내 처의 브루엄[각주:2]을 타고 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 그럼 나가서 얘기할까요? 눈을 좀 맞아도 괜찮겠소?

그녀는 다시 이번에는 좀 더 부드럽게 웃었다. "아니에요. 나가서 걷지는 않겠어요. 전 되도록 빨리 할머니께 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내 옆에 앉아서 꿈 말고 현실을 보세요."


(....)


"그럼 당신 생각은 내가 당신의 정부가 되어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요? 당신의 아내는 될 수 없으니." 그녀가 물었다.

(...) 그녀의 질문에 그는 갑자기 허를 찔린 듯 허둥거렸다.

"내가 바라는건....., 난 어떻게든 그런 말, 그런 구분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세계로 당신과 함께 떠나고 싶소.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삶의 전부가 되는, 인간 대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곳. 그밖의 어떤 것도 중요치 않을 그런 곳으로."

그녀는 다시 깔깔대고 웃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 당신, 그런 나라가 어디에 있나요? 그런 곳에 가 본 적이 있어요?"


(...)

"그래, 고르곤이 당신의 눈물을 말려 버렸군요." 그가 말했다.

"흠, 고르곤은 내 눈을 띄워 주기도 했어요. 고르곤이 사람들을 눈멀게 한다는 얘기는 틀린 말이에요. 그 반대죠. (후략)"




p.412

(...)아처는 이제야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다. 그들은 아직 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수단을 써서 그와 불륜 상대자를 성공적으로 갈라 놓았다. 이제 일족 전체가 그런 내막은 알지도 못하고 상상해 본적도 없다는 듯이 시침 뚝 떼고, 메이 아처가 단지 친구이자 사촌에게 애정을 담아 작별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에 접대 행사를 마련했을 뿐이라는 묵계에 따라 그의 아내 주위에 모여든 것이다.

그것이 '피를 흘리지 않고' 목숨을 빼앗는 옛 뉴욕의 방식이었다. 질병보다 추문을 더 두려워하고, 용기보다 체면을 중히 여기고, 소동을 일으킨 사람들의 행동을 제외하면 '소동'보다 더 교양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방식이었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자, 아처는 자신이 무장한 군대 한가운데 있는 죄수같이 느껴졌다.




pp.435-437

"저기, 아버지, 올렌스카 부인은 어떤 분이었나요?"

아처는 아들의 뻔뻔스러운 시선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자, 솔직히 털어놔 보세요. 아버지랑 그분은 보통 사이가 아니었지요? 그렇게 아름다운 분이었나요?"

"아름답다고? 모르겠다. 그녀는 달랐어."

"아, 바로 그거였군요! 항상 그런식으로 사랑이 시작되는거죠. 척 보니 다르더라.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라도. 제가 패니한테 바로 그런걸 느꼈거든요."

(...)

"나의 패니였다고...?"

"그 왜,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버려도 좋을 여자 말이에요. 물론 아버진 그렇게 하지는 않으셨지만." 사람을 기절초풍시킬 아들의 말이었다.

"그러지 않았지." 아버지가 엄숙한 투로 그 말을 받았다.

"예. 아시다시피 아버지는 시대에 뒤떨어졌다고요. 하지만 어머니 말씀이......"

"네 어머니 말이냐?"

"예. 돌아가시기 전날이었죠. 저만 곁에 부르셨을 때 말이에요. 기억나시죠?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안심할 수 있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라고 하셨어요. 왜냐하면 옛날에 아버지가 어머니의 청에 따라 가장 원하는 것을 포기하신 적이 있기 때문이래요."

아처는 이 이상한 이야기를 말없이 들었다. 그는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그린 네모에 멍한 눈길을 박은채로 있었다. 마침내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네 어머니는 내게 한번도 청한 적이 없었다."

"예, 저도 잊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신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그렇죠? 그저 앉아서 서로를 쳐다보고 그 밑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 짐작하셨을 따름이죠. 사실 귀머거리에 벙어리들 수용소 같았달까.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보다, 부모님 세대가 서로의 은밀한 속마음을 더 많이 알고 계셨다고 생각해요. 아버지...."



pp.441-443

"아버지, 6시가 다 됐어요." 아들이 마침내 그에게 상기시켰다.

아버지는 나무 아래 빈 벤치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저기 좀 앉아야겠구나" 그가 말했다.

"왜요, 어디가 편치 않으세요?" 아들이 소리쳤다.

"아니, 말짱하다. 그저 너 혼자 올라갔으면 한다."

댈러스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 올라가지 않겠다는 말씀이세요?"

"나도 모르겠다" 아처가 느릿느릿 대꾸했다.

"올라가지 않으시면 백작 부인이 이해못하실 거에요."

"가렴, 애야. 뒤따라가마"

(...)

"좋아요. 아버지가 너무 구식이라 승강기를 싫어하셔서 5층까지 걸어오신다고 할게요"

아버지는 다시 웃음을 지었다. "내가 구식이라고 해라. 그거면 충분해"

(...)

"올라가는 것보다 여기 있는 편이 내게는 더 현실 같지." 그는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그는 짙어가는 어스름 속에서 발코니에 눈을 고정시킨 채 오랫동안 벤치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나왔고, 잠시 후 하인이 발코니로 나와 차양을 걷고 덧문을 닫았다.

그것이 마치 기다리던 신호이기라도 한 듯, 뉴랜드 아처는 천천히 일어나 호텔로 혼자 걷기 시작했다.




  1.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머리카락은 뱀이며 이를 본 사람은 돌로 변한다. [본문으로]
  2. 19세기 말-20세기 초의 4륜 마차의 한 종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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