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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04 2011 독서생활 어워드
  2. 2011.01.07 뉴라이트 사용후기


facebook에 있던 글 옮김.

2011년 12월 29일 글이지만 2012년 한해동안 읽은 책이 없으므로 

이것으로 동기부여 겸 대체한다.

2013년 독서생활 화이팅



2011년 독서생활 어워드. 한해의 책읽기를 되돌아보자... 올 한해는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에는 그닥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던 듯하다. 읽었다 하더라도 그닥 대중성 있거나 전문성이 있는 책이라기보단 얕고 안유명한... 취향타는 책만 골라 읽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실은 하반기에 <열린사회와 그 적들> 이나 <정체성 권력> <인간의 조건> <패배를 껴안고> 등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읽었다면 뭔가 뿌듯했을텐데...

...됐고 일단 가보자!

BEST 7

1. 뉴라이트 사용후기 - 상식인을 위한 역사전쟁 관전기 / 한윤형
- 누구나 구할수 있는 자료로 누구나 할수 있는 얘기를 했지만 , 이 사회에 딱 한권밖에 없는 불가사의한 책. 저자가 나한테 트위터로 한 말이다. 개인적

으로 이런 책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닭치고 정치 같은거 말고.

2.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 이경훈
- 서울은 어째서 도시 자체의 매력을 충분히 뿜어내지 못하고 있는가. 우리가 평소에 부족했다고 생각했던 통념이 실은 과했음을 역발상으로 과감하게 지적하는 멋진 책.

3. 문화의 패턴 / 루스 베네딕트
- <국화와 칼>로 유명한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책. 국화와 칼이 구체적인 민족지 느낌이라면 이 책은 자신이 생각하는 문화인류학이 무엇인지 밝히는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약간은 모호하게 옳은 것이라고만 남겨두었던 '문화상대주의'의 애매한 부분이 명확해지면서 '문화상대주의'란 어떤 느낌인지 감이 확 왔다. 

4. 한일 내셔널리즘의 해체 / 이건지
- 이 책은 일본어가 원본이다. 즉 지은이는 재일이다. 소수자의 입장에서 한국사회와 일본사회가 보여주는 내셔널리즘이 얼마나 일상적이며, 그것이 어떠한 폭력으로 나타나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책. 명쾌한 주장도 주장이지만 사례로 드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흥미롭고 유용하다.

5. 가면의 고백 / 미시마 유키오
- 이야 드디어 문학작품이구나? 이 소설은 저자의 자기 고백이다. 그러나 소설이다. 보통은 자기 고백은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소설은 허구다. 그러한 모순을 대놓고 인식하고 지적하듯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때의 빛이 기억난다"고 말하며 시작하는 소설. 표현이나 감성이 상당히 아름답다는 느낌. 이런 소설을 25세에 썼다는 것을 발견한 한 25세 독자의 열폭.

6. 내안의 유인원 / 프란스 드 발
- 침팬지와 보노보를 연구한 동물행동학자의 책이다. 침팬지 폴리틱스 라는 책으로도 유명한 분인데, 이 책은 그 책의 증보판 느낌으로 저자의 연구내용을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본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많이 위협받을수 있는지(인성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동물성에 가까웠다는 진실을) 밝히는 책. 시야를 넓힌다는 측면에서 인문사회계열 분들이 읽으면 좋을듯 하다.

7. 번역어 성립사정 / 야나부 아키라
- 서구의 개념어를 근대 일본인들이 번역해서 만든 조어 10개의 성립과정을 통해 근대적 개념이 어떻게 의미를 상실하거나 새로운 의미가 더해져 동아시아에서 완성되었는지를 밝히는 책. 사회, 개인, 자연, 존재, 권리, 자유, 연애 등의 조어들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는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단순히 가십거리들의 나열로 볼수도 있지만, 번역어로서의 개념어가 만들어내는 효과와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볼 거리를 준다. 

WORST 3

1. 코뮨주의 / 이진경
- 뻐큐머겅ㅗ 두번머겅ㅗ
- 이사람이 원하는 사회란 대놓고 말해서 방사성 원소를 매우 안정적인 비활성 원소로 만들자는 소리다. 역사적으로 특정한 순간에만 일어날수 있는 일을 항구적으로 추구한다. 그러니까 개소리.

2. 당신들의 대한민국 / 박노자
- 내가 너무 이 책을 늦게 읽었다고 말해줘. 한마디로 말해 논의 자체가 너무 촌스러웠다. 지금은 아무 의미 없는 책...

3.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 ....음 그래서 어쩌라고?

2010년도 이런거 할걸 왜 그생각을 못했을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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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사용후기

2011.01.07 07:10 from 책/발췌




뉴라이트 사용후기: 상식인을 위한 역사전쟁 관전기

저자
한윤형 지음
출판사
개마고원 | 2009-08-0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1세대 역사학에 던지는, 3세대 철학도의 도발적 문제제기‘역사전...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뉴라이트 사용후기, 한윤형, 2009, 개마고원
 
 
 
pp.83-84
 
상식수준에서 얘기하자면 유럽의 산업혁명 때 경제성장률이 1.1%다. 당시 경제성장률이 1.1%였는지 1.4%였는지가 논쟁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 1%대의 경제성장률을 가지고 혁명적 성장이라고 이야기들 한다. (…)
 
물론 후발주자들은 좀더 빨리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1965년에서 1990년 사이의 연평균 1인당 GNP 성장률을 보자. 앞에서 말한 세계은행의 자료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0.2%, 중동 1.8%, 라틴아메리카 1.8%, 남아시아 1.9%, 선진국들이 2.4%, 그리고 세계가 찬탄하는 저 동아시아의 기적 같은 경제성장률이 무려 4.6%였다. 어떤 자료를 찾아봐도 3%대 후반의 성장률이 별거 아니라는 얘기는 성립할 수가 없다. 더구나 한두해도 아니고 35년간의 평균성장률이 그정도라면 ‘매우 높은’ 수치라고 봐야 한다. 여기다 대고 일제 통치가 성장을 도와준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억누르고 가로막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면, 인간의 언어로는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게 된다.
 
 
 

 
 
pp.96-99
 
어쨌든 교과서 포럼의 ‘대안 교과서’에 실린 세 역사학자들의 추천의 글을 읽어보자. 이 짧은 글들이야말로 ‘대안 교과서’가 현행 교과서에 대항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관점을 명확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는 민족을 주체로 쓰인 상상의 역사였다. 이 책의 집필자들은 그 민족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 대신 자유, 인권, 자애를 본성으로 하는 보통 인간을 역사의 주체로 설정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 쓰인 한국의 근현대사가 이 책이다. 독자는 관점이 달라지만 역사가 얼마나 혁명적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실감하게 될 것이다. – 박지향,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
 
(…)
 
그래서 나는 ‘대안 교과서’를 식민지기와 건국기로 나누어서 평가한다. ‘대안 교과서’의 식민지기 기술은, 차후에 다루게 될 하나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 자체로는 존중할 만하며 기존의 교과서가 보여주지 못했던 부분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반면 대한민국 건국기에 대한 서술은, 이 책이 기존의 책과 다른 사관을 취하면서 얻게 된 장점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미화의 교과서’로 떨어지고 만다고 본다. ‘대안 교과서’는 반대자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매국노의 책이기는커녕 너무 애국심이 강해서 탈이다.
 
 
 

 
 
pp. 140-144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장면과 노기남, 김성수를 친일파로 선정하자 유감을 표명하였다. 그는 “단순히 그런 것을 보고 친일이라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너무나 가벼운 행동이며 그런 어른들에 대한 모독이다. 만일 그 잣대로 보면 저도 학병을 갔다 왔고, 창씨개명을 했고, 학교 다닐 때 신사참배도 하였으며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을 것”이라며 친일파 선정 기준을 비판하였다.
 
(…)
 
이후 김 추기경이 친일파라는 근거 없는 음해성 자료가 인터넷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이에 대해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례적인 해명자료를 통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이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히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
 
한홍구는 친일파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설정된 예 중 하나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꼽았다. 이 신문들이 ‘천황 폐하’를 찬양하는 기사를 게재한데 대해,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친 사람들에게 그것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라면서, “일제 말에 폐간당했던 두 신문이 해방 직후 복간할 때 두 신문의 친일행위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일제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지만 모두가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고, 전 국민의 80%가량이 창씨개명을 해야 했던 당시의 사람들로서는 일제잔재의 철저한 청산을 원하면서도, 현재 우리의 감각에 비해 구체적인 친일행위의 범주에 대해 상대적으로 좀더 관대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한홍구, 대한민국사 1)고 코멘트한다.
 
 
 

 
 
p. 153
 
공창제 발언은 이영훈이 아니라 송영길이 했다. 이영훈은 토론회에서 거듭 위안부 희생자들을 ‘성노예’라고 언급했는데, 위안소가 공창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그런 표현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만일 오해가 있었다면 누군가 나서서 풀어줘야 했다. 하지만 어떤 언론도 그런 작업을 하지 않았고, 진중권이나 홍기빈 등 평소에 굉장히 날카로운 논리를 보여주던 진보 진영의 비평가들도 <시사저널>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통해 사실상 ‘오마이뉴스 프레임’에 가담했다.
 
 
 

 
 
p. 183
 
비록 나는 민족주의자가 아니지만, 뉴라이트가 민족을 비판하면서 할 말이 ‘민족이란건 원래 없다’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근대 문물을 숭상하는 뉴라이트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좌파나 아나키스트나 할 수 있는 소리다. 근대적 민족 개념을 가지고 사유하는 민족주의자와, 공화국 시민임을 자랑스러워하는 탈민족주의자가 논쟁을 벌이는 사회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다.
 
 
 

 
 
pp. 201-203
 
해외에 나가 일본 지도층에게 폭탄을 던진 한국의 독립투사들은 자신이 이국에 있던 30년 동안 사람들이 전혀 다른 질서에 적응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 중일전쟁 이후의 중국인들이나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프랑스인들이 들이미는 것과 같은 잣대로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를 처단한다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걸려드는 상황에 처해 있었던 거다. (…)

조선 민중은 그들을 열광적인 환호로 맞이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식민지 조선의 비극이다. (…) 그들은 바뀐 세상에서 그렇게 분열된 의식을 지닌채 열렬히 독립운동가들을 찬양했다. 사람들은 영웅을 원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두가지 상이한,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하나의 입장이 관철된다. (…)
 
하나는 해외파 독립운동가들의 입장에서 친일파들을 모조리 숙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 다른 하나는 해외파 독립운동가들의 입장에서 볼 때 다른 지도자와 민중들은 어차피 도찐개찐의 친일파이니 해외파 독립운동가들에게 충성을 다하는 이들의 죄를 용서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
 
이러한 숙청론과 속죄론이 맞부딪혔을 때 누가 이길지는 매우 자명하다. 죄의식이 아무리 크다해도 자신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충성을 통한 속죄 속에서 ‘죄사함’ 받은 이들은 이제 다른이들을 단죄하는 데 골몰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기독교적 죄의식 속에서 건국된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식민지기 조선의 근대화가 기독교와 큰 관련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유비는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수 없다.

 


 
pp.325-326
 
교과서포럼은 친일파 청산을 논하는 이들을 비판하면서 이들이 ‘살부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한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게, 나는 한국 근현대사를 ‘고아의식’이란 차원에서 바라본다. 이것은 작고한 정치학자 전인권이 그의 대표적인 저서 <남자의 탄생>에서 사용한 말을 차용한 것이다. 전인권은 이렇게 말한다.
 
 
 
프로이트의 아이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가 세운 터전 위에 자신이 미래를 세워나가는 법을 배운다. 아이는 일상적인 전투 속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나지만, 그 패배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자신의 욕망을 우회적으로 충족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러나 홍길동과 나는 아버지를 제대로 살해하지도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에게 하직인사를 하거나, 아무도 모르게 슬쩍 제사상의 조상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부자의 갈등을 해결하려고 했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거부하고 떠났던 것은 일견 남자답고 씩씩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버지와 일상적인 전투를 회피하는 비겁한 행동일 수도 있다.
 
그 비겁함은 내가 ‘새로운 율도국’을 건설해봤자 나의 위치가 아버지로 변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결국 나는 아버지와 똑 같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비겁함이었다.
 
 
 
정치학자가 ‘한국 남자’를 이렇게 탐구하게 된 이유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탐구를 통해 한국 정치의 문제를 해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특별히 전인권은 이 구절에 다음의 주석을 달아놓는다.
 
 
 
비겁하게 아버지를 살해하는 현상은 대한민국이 민주화된 이후의 정권교체 과정에서도 계속 반복되었다. 즉, 신임 대통령이나 유력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은 마치 홍길동이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듯 전임 대통령을 전면 부정하며 새로운 유토피아를 약속했다. 그러나 그렇게 전임 대통령을 단죄한 신임 대통령이 물러날 때 보면 전임 대통령의 업적이나 장점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채, 전임 대통령과 비슷한 과오를 범한 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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