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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05 나는 자유를 말하고 싶은데 (1)
  2. 2010.11.10 너랑 안 놀아

나는 자유를 말하고 싶은데, 수많은 의식 있는 사람들은 일단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연대의식이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연대의식이 아주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도 그 이야기에 동감한다. 그런데 난 개인의 자유를 말하고 싶다. 누구에게도 함부로 간섭받지 않을 자유가 너무 고프다.
 


 
 
어릴 적부터 내 눈에는 닮고 싶음의 광경보다는 보기 싫음의 풍경이 더 많았다. 존경하는 인물은 예전부터 없었고, 결국 없었고, 지금도 없다. 닮고싶다는 마음보다는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내 마인드를 지배했다. 심장이 뛰는 한은 내 머릿속에선 ‘타산지석’의 원리가 진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경계했었던 것은 ‘오지랖 넓은 사람’이었다. 개인과 개인과의 거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 혹은 그 실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을 경멸했다. 개인의 사사로운 영역, 신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간섭하고, 타자인 주제에 타인의 내면을 제 뜻대로 조작하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그것을 선의로 변호하며, 관심과 정이라고 부르며 장려한다.

 

 
 
간섭받기 싫은 나는 누구에게도 절대로 간섭하는 존재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기본적인 사교성/사회성이 현저하게 떨어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실 20세까지 객관적인 내 성격은 그 누구도 도저히 어울리기 어려운 존재였다. 꼬장꼬장한 나를 감당하고 받아주었던 사람들이 고마울 뿐.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여성과 한 자리에 마주하면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말도 더듬더듬, 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힐끗힐끗했다. 수능 끝나고 그것을 극복하는데 두 달 가량 걸렸던 것 같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개념도 전혀 없었고, ‘공감’과 ‘이해’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다. 이런 녀석이 사회학과에 오다니, 재밌는 일이다.
 


 
 
다행히 이제는 사회성과 사교성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인식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대학생이 되어 그 이전과 비교해 가장 변한 것이 있다면, 사교성에 대해 첫걸음을 내딛었고 그것을 잘 하려고 애썼다는 점인 듯하다. 그러나 유예된 학습영역이 아직도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데, 아직 제대로 연애를 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가 그 증거가 되겠지 싶다.
 


 
 
또 너무 바깥으로 샌 것 같다. 항상 이렇게 내 생각을 말하다보면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보충하려고 내 생애환경을 주저리주저리 말하게 되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사회학도이기도 하고 사회성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잘 느끼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개인의 자유, 한국사회에서 고사 직전인 진정한 자유를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인’과 ‘자유’를 강조하면서 ‘사회적 연대’를 배제하거나 그와 대립하지 않고 아우를 수 있을까?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연대, 둘 다 한국사회에 결여되어있는 아주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나는 학자가 될 능력도 의사도 없지만, 이 문제는 어쩌면 평생 내가 지고 갈(아마 한국사회를 떠나지 않을 테니) 고민이자 화두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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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안 놀아

2010.11.10 17:30 from 내 글/중문


 
이것을 실제로 시도해보는 것은 너무나도 비윤리적이므로, 사고실험으로 대체하여 한가지 가정을 해보자. 어린아이를 끊임없이 괴롭혀 스트레스를 주자. 마주칠때마다 약올리고 놀려보자. 어린아이는 참다 참다 견디지 못할 때 무슨 말을 할까. 물론 때리고 꼬집고 하는 폭력적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어디서 배웠을지 모르는 “시발 죽여버린다” 같은 말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만큼, 혹은 그런 것보다도 더 주체적인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말,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아닐까. 
 
 
 
“이제 너(선생님/아빠/아저씨)랑 안 놀아(놀 거야)”
 
 
 
 
 
일반적인 사회과학이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인간은 ㅇㅇ적 동물(존재)이다’ 라는 명제에 각 용어를 넣으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치학은 빈칸에 정치를 넣을 것이고, 법학은 법, 경제학에선 경제, 문화인류학에서는 문화, 그리고 사회학에서는 사회를 넣어 완성하겠지. 그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 사회학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기본 전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의식주 다음으로, 혹은 의식주와 맞먹을, 아니 의식주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는 인간의 기능이 인간의 사교성이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너랑 안 놀아” 라는 말은 얼마나 엄청난 선언인가. “너랑 안 놀아” 하는 어린아이의 말이 우습거나 유치하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성인이지만, 결국 심층으로 파고들면 ‘관계의 단절’, ‘버림받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에게나 크게 자리잡고 있다. 연령에 관계없이 사교활동의 일방적인 박탈은 본질적인 두려움을 부르는 코드인 것이다. 단지 어린 시절의 “너랑 안 놀아”가 청소년기엔 “야 너 나랑 아는 체 하지 마라”가 되고 성인이 되면 “우리 헤어지자” 혹은 (잔인하게도!) 그런 선언조차 하지 않는 의뭉스런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부모가 아이에게 “쟤랑 놀지마” 라고 하는 말은 또 얼마나 엄청난 말인가. 요즘은 잠도 마음대로 못 자게 하는 한심스러운 엄마도 있다.[각주:1] 그런데 “쟤랑 놀지마”라는 류의 말은 (잠의 통제를 잔인하다 생각하는 부모들까지 포함해서) 어느 누구나 거리낌없이 자녀에게 하고 있다. 무관심하게 혹은 자녀보호의 사명감에 넘쳐서 말이다.(후자가 더 위험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관점으로 보면, 내 생각에 그 말은 아이에게 있어 최소한의 영역의 자율성조차 박탈하는 무자비한 말이다.
 
 

  1. 내가 이래가지고 몬산다 동영상.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Ff3w8VDLTKw$ 공부를 시킨답시고 졸려서 쓰러지기 직전인 아이가 쉬는 것을 계속 통제하고 방해하고 있다. 아이의 어른스러운(?) 표현이 웃음을 자아내어 유명해졌지만, 그 말이 나오는 배경을 보면 씁쓸함을 피할 수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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