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1.04.21 주저주저
  2. 2011.04.20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2
  3. 2011.04.11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거라고?
  4. 2010.12.06 잉여예찬
  5. 2010.10.09 <파우스트> 감상문

주저주저

2011.04.21 05:34 from 내 글/단문

‎왕년에 해본 사람이 경험이 있어서 하면 잘한다는 말은 어떤 면에선 틀렸다.

해봤다 놓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놓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 알기 때문에 역으로 더 주저할수도 있다.

지난 2년간 내 생활을 지배한 것은,
이제는 공부에 전념해야하는데 그랬다간 쥐고 있는 많은 것을 잃을까 두렵다는 심정이었다.

갈수록 뇌가 스펀지가 되는것 같다. 허술하디 허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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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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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렸을때

그것을 찌질함으로 표현할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다.

무엇을 하며 사느냐는 중요치 않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열심히 살았노라는 말을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언제나 그런 순간이 오지 않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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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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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수 있는데 안한다'는 말은 가능한 개념일까? 이미 그렇게 안하고 있는 당신의 현재상태가 가치나 생활습관을 최적화로 맞춘 결과가 아닌가?

그것을 바꾸면 삶의 총체가 변하는 것이고
사실상 그사람은 더이상 이전의 사람이 아니게 되는것은 아닌가.

우리에게 가면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완전히 독립적으로 감출수 있는 이질적인 가면은 없다. 왕년에 가지고 있었던 가면을 다시 들춰낸다한들 그것은 이미 상당히 낡아져 있겠지.

컨버젼이라는 것은 설사 경험이 충분하고, 자질이 충만하다한들 그저 머릿속에서 생각하는대로 쉽게 이루어질 일이 절대 아니다.

과거의 다른 모습은 지금의 너보다 못한 인간이 아니라 그냥 다른 인간이었던 것이다.
허세부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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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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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예찬

2010.12.06 20:00 from 내 글/중문


한 한국인 교수[각주:1]가 미국에서 학생으로 공부하던 시절, 그의 지도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헤겔식의 역사주의에 젖어 있는지 모르겠군. 그 색깔 고치는 데만 10년 가까이 걸린다네. 근데 자네는 다행히 한 3년밖에 안 걸린 것 같군” 모든 과목에서 ‘계승’과 ‘발전’을 위한 ‘노력’이 올바른 결론으로 등장하는 한국의 교과서를 떠올린다면 허투루 나온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싶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다. 10대 때 하지 않으면 안 될 30가지, 20대 때 하지 않으면 안 될 40가지, 30대 때 하지 않으면 안 될..... 그따위 책들은 안 읽지만 실제로 고등학생 때 나는 한 달에 한번 수능 모의고사라는 관문을 넘어야 했고, 이제 대학에 와서는 일주일에 한두 개 꼴로 ‘내 글’을 써내야 한다. 사실 나는 같은 처지에 놓인 동기나 학우들에 비해 훨씬 여유를 부리는 편인데도, 종종 제대로 쉰 적은 없다는 뻔뻔한 생각을 한다. 왜 뻔뻔하냐면, 다들 내 생활을 실제로 들으면 좀 더 성실해지기를 촉구하니까. 한국인은 모름지기 부지런함이 생명이다. 과업과 약속으로 꽉꽉채운 달력을 보면서 흐뭇해해야 하니까.
 


 
 
지난주 수업을 들으러 220동을 걷던 중 멈칫하며 생각했다. ‘그래, 다시 이 시기가 온 것이구나.’ 요즘 나는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고, 가시적인 성과도 없이 계속 불만족스럽고 답답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인가 확신과 열정에 차서 굴려왔던 몇 가지 머릿속 생각들도 다 쏟아내고 났더니, 그 다음부터 만들어지는 생각들은 죄다 흐릿한 것들이다. 이제는 아예 생각하는 일조차 귀찮아지고 있다. 아마 지금 시점에 <파우스트>를 읽고 글을 써내야 했다면 그 글보다 훨씬 흐리멍텅한 글이 나왔겠지.
 

 
 
그러나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다. 다시 ‘이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이런 현상을 그리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는 이야기다. 그 당시에는 지지부진하다고 느껴왔던 그 때가, 곰곰이 지나 생각해보면 스스로가 가장 뚜렷하게 성숙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성장통이라는 것은 신체적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듯이, 머릿속에 맴도는 열병같은 답답함 속에서 우리는 한층 성장하는 것이다.
 

 
 
아무 하는 일 없어보이는 잉여생활에서 창조성이 나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여가에서 생산이 나오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하기 위해선 놀아야 한다. 그것은 ‘정체’나 ‘퇴보’가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조화로운 삶을 이루어낼 부분인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한가로운 생활을 하길 원하면서도, 막상 그러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만족하기보다는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며 후회한다. ‘오늘 하루 정말 할 일없이 보낸 것 같아’, ‘좀 더 생산적으로 알차게 보낼 수 있었는데’ 하면서. 그 죄책감은 누가 심어 놓은 것일까. 니체가 기독교의 원죄와 양심의 가책의 문제를 뒤흔들어놓듯, 이제 우리도 그러한 ‘보람찬 하루’의 도덕적 강박관념에서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1.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임 모 교수라고 한다. 본문의 이야기는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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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감상문

2010.10.09 17:30 from 책/감상문

  
언젠가 문득 이런 생각이 찾아오는 날이 있다. “나는 왜 사는 걸까?” 사람은 무엇에서든지 이유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지금까진 진지하게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에 대한 의문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물음을 던졌을 때,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꼈을 바로 그 때, 우리에게 ‘메피스토펠레스’는 찾아온 것이고 우리는 각자의 <파우스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한테나 적용되는 절대적인 삶의 목표라는 것은 존재하기 힘들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된다. 삶의 목표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기능적으로 낫겠지만, 결국 모든 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열심히 공부하려는 학생이 그 목적을 묻는 스승과의 끊임없는 문답을 하다 보니 결국은 죽기 위해 공부한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고대 그리스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파우스트의 말처럼 “우리 인생은 채색된 영상에서 파악될 뿐”(4727)인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 실은 우리 주변에는 ‘삶의 의미’를 주제로 삼는 이야기들이 이미 적지 않다. 우리는 이미 제공되는 ‘잘 다듬어진’ 삶의 가치관과 규범을 몇 개 골라 선택할 수도 있다. 경제적 부, 명예, 종교적 가치와 관련된 수많은 격언과 규칙들이 서점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 있다. 그런 것들은 인터넷에도 많이 있다. ‘효율적인 삶’을 돕는 이런 지혜와 격언의 언어는 우리에게 구체적인 행동방침을 수행할 것을 제시한다.
 
 
 
따라서 어떤 규범을 선택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의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것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가의 문제에 모든 것이 달려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규범의 언어에 자신을 맞춘 삶은 평탄하고, 잘 맞아들어갈수록 행복감을 느끼겠지만 결국은 그 근본은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일조차 죄송스러워질만큼 주어진 규범에 충실하게 사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런 삶을 피하고자 하는가. 나는 기본적으로 삶의 의미에 대해서 Struggle, 진력(盡力)과 같은 단어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삶은 끝없이 부딪히고 넘어서는 어떤 지리한 투쟁 같은 것이라는 느낌이다. 때문에 단순히 규범의 기계적 수용을 기초로 한 행복한(쾌락의) 삶은 언제 위험해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쌀눈을 떼어낸 백미가 맛이 좋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떤 상황에서 건강을 위협할 수 있듯이.

 
 
물론 부딪쳐보지 않고도 아는 것은 있다. 하지만 우리 대다수가 철학사에 길이 남을 정도의 천재가 아닌 범인(凡人)인 이상, 직접 부딪치지 않고서야 얻기 힘든 중요한 가치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때로 우리 사회는 그런 가치의 존재나 필요성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하기로 결심했을 때 파우스트처럼 되려고 찾아온 학생은, 후에 학사가 되어 메피스토펠레스와 재회한다. 작가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재미있게도 이때 파우스트는 학사와 마주하지 못한다. 만약 “경험은 물거품과 같은 것”(6758)이라 말하는 학사의 말을 파우스트가 직접 들었다면 파우스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예전에 한 친구가 내게 '너는 전신전령(혹은 전심전력)을 다해 살아가는, 약간은 무모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런 것 같다. “불가능한 것을 갈망하는 자,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7488)는 만토의 말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다가온 것은 그 때문일까. 정말로 나는 '쉽고 편안한 길의 발견'을 인생의 제일 목표로 살아가는 듯한, 그런 사람을 어떤 사람보다도 불편해 하는 것 같다.

 
 
앞서 왜 살아야 하는지, 인생이 허무한 것임을 알았을 때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고민할 때 각자의 파우스트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하였다. 인생은 원래 허무한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노력하는 것. 때로 도망치고 피하는 것이 편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길은 아님을 알고 경계하는 것. 나의 <파우스트> 이야기의 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끝없이 부딪치고 방황해야 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317)이라는 구절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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