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작성일 16.5.1


대학교 다니려고 상경하고 나서 몇년 지나고 느낀게 있었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지방을 너무 모른다는 거였죠. 압구정 영등포 지명만 알고 그게 강남인지 강북인지도 몰랐던 저야, 살면서 할수없이 서울에 대해 알게 된거다 쳐도 그럴 필요도 가능성도 없는 사람에게는 낯선 지방에 대한 정보가 가치가 있을리가 없긴 했습니다. 비록 평생 서울을 가지 않을 삼남지방 토박이도 매일아침마다 뉴스로 원효대교가 막히는지 안막히는지 서울의 출근길 교통정보를 강제로 들어야만 하지만요.  


저는 이 문제의식을 하나의 문화적 혹은 사회적인 부분에서만 생각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그당시 꾸준히 궁금했던건 왜 사람들이 집값이 비싸다면서, 평생 부동산의 수혜를 받을수도 없으면서 수도권을 뜨지 않을까 였습니다. 극단적으로 독일차 한대 값이면 지방에선 아파트에서 사는데. 어쩌면 서울을 나가면 지는거라는 의식 때문은 아닐까? 같은 곱지 않은 의심을 했었죠. 시간이 지나서 인맥의 문제, 아는 사람이 서울에 있으니까 그렇겠구나 했고, 더 나중에야 수도권 밖에는 일자리가 없다는걸 알았죠. 


개인적으로 이사를 자주 다녔고, 매사 적극적이거나 사교적인 성격은 못되지만, 아니 오히려 그 반대지만 어디 딴데 가서 산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덜합니다. 대한민국 멀어봤자 비행기탈것도 아니고 버스 기차타면 금방아닙니까. 게다가 지방출신은 어차피 대학때문이라도 1번 이상 활동무대를 옮겨야하니까요. 그런점에서 서울에서 평생 나고 자란 사람은 타지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과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하다못해 인천이나 위성도시 가는것도 큰 결단이 필요해 보일때가 있더군요. 근데 그 공포가 과한걸 과하다고 감히 말할수가 없는 것이, 객관적으로도 서울이 더 나으니까요. 개개인이 놓인 상황을 제하더라도 일단 지방으로 가면 젊은이가 없고, 편의시설이 없고, 대중교통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좋은 일자리라는 혁신도시 공기업에 취업해도 많은 이들이 다시 돌아갑니다. 


근데 최근들어 이게 사회문제나 개인의 경제문제가 아니라 정치문제가 되더라는걸 느꼈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에 청년층의 투표율이 올라가면서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졌고, 그중에 제 눈에 띈게 지방에서의 몰표에 대한 혐오인식이었습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한다는 안경을 끼신 분들은 몰표라고 까고, 지역이슈에 대한 결벽증이 있는 분들은 지역이기주의라고 까고... 과정이나 근거가 문제가 아니라 결과가 문제가 되더군요. 그때도 이건 좀 그런데 싶었지만 이번 총선에서 호남가지고 터진걸 보니 문제가 좀 심각한거 같아요. 지역주의는 한국정치만의 망국병이라는 서사를 만들어낸 것은 2000년대의 특정 정치집단이었죠. 세상에 땅따먹기 안하는 선거가 없다는 진실, 미국 대선을 저보다 훨씬 많이 접하고 보셨을 분들이 그런 거짓신화를 퍼뜨리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는게 짜증이 나지만 이것과 근래 성토되는 시골의 전근대성의 발견 서사가 합쳐지니까 좀 위험해졌습니다. 


근래에 트위터에서 귀농하지마라 농촌의 실태 뭐 이런게 퍼져서 페이스북에도 옮겨온 적이 있었습니다. 현상적으로는 다 맞는 말이고, 사실 지방출신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그게 싫어서 의식적으로 지방을 뜨고 돌아가지 않는 사람도 꽤 있죠) 평소에도 얘기해오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갑자기 에베레스트를 발견한 것처럼 "놀라워진"거에요. 거기에 이번 선거 결과가 붙으니 난리가 난거죠. 농촌의 실태 그 자체에 대해 얘기하자면 결국 시골의 정이나 그런 정서는 시골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주장한게 아닙니다. 하나도 내세울게 없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는 수준이죠. 오히려 시골 출신으로 상경한 50-60대 전후세대들이 갖는 환상이 기원이죠. 지금은 본인이 서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만든 환상을 가지고 진퉁 서울 사람인 자녀들이 반박하며 성토를 하고 있는 겁니다. 


시골의 전근대성. 이건 저개발이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최저임금 문제에서 근래에 자주 나오는 얘기가 금액의 인상도 인상이지만 지방에서의 최저임금 준수 문제입니다. 지방에선 지키는 케이스가 오히려 일반적이지 않을 정도죠. 만약 이걸 가지고 준법정신이나 덜 배운 사람 취급하면 어떨까요? 지역의 구매력이 그정도로 수도권과 차이가 나 있는거죠. 그 상황에서는 그냥 미개하다고만 하고 넘어갈수는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타개하기 위해서 투자가 필요하겠네요. 행정력을 동원해야겠죠. 이런 투자는 최저임금이 아니더라도 다른 문제에서도 필요하겠죠. 그런데 그런 생각조차 지역이기주의라고 하는 겁니다. 


여튼 서글플 사이도 없이 좀 기가막히더군요. 차라리 개발격차의 역사가 한 100년 됐으면 모르겠습니다. 불과 3-40년 차이로, 지금도 수도권 사는 노인들이라고 지방 사는 노인들과 정서가 큰 차이가 나는가 생각하면 아니거든요. 그 3-40년간 근대화 도시화를 거치면서 소위 미개한 인식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밖으로 발현되지 못하는 구조를 구축했느냐 못했느냐의 차이인거죠. 이런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민도 없이 지방주민들의 지역발전의 욕망에 대해서는 인구비례와 효율성 논리로 윤리적 비난을 가하고, 낮은 단계의 근대화로 발생한 현상에 대해서는 미개하다고 열심히 성토합니다. 더 나아가선 어치피 인구재생산이 안될테니 소멸하도록 포기하는게 맞다고 생각(주장)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긴 모 당 수도권 지지자들이 "잘됐다. 호남 버리고 전국정당 가자!"는 식의 얘기가 정당의 노선이 아니라 정부정책의 방향으로 다루면 딱 그 얘기기도 하죠. 


아무튼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그런 순수한 폭력성을 지닌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머릿수도 많으니 자신있게 그 목소리를 내세우는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전주 출신인 제 지인은 끊임없이 민주당의 지금까지의 실패와 배신에 대해 얘기했지만 그건 관심없고 그냥 문재인이 부산사람이고 김종인이 국보위라 그 사람들이 싫어할 것이다로 통설 내려놓고 망상중이더군요. 잘 모르면 들어야 할텐데 오히려 자기들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고 가르치려듭니다. 화가 나더군요. 압축적 근대화와 개발격차의 역사적 맥락을 알만한 이촌향도 세대의 의식적인 망각과, 서울에서 자고 나라 열심히 젠더문제 인권문제를 말하고 있는 분들의 의도적인 외면이.  


솔직히 새누리당이 특권층을 위한 당이다 뭐다 하는데 그래도 강원 충북 영남에 기반이 있어서 이명박 이후로는 대놓고 그런 의도가 있다는 티는 안냈어요. 서울시장으로 압도적으로 대통령된 이명박조차도 형이 지역구 국회의원이라 그 색이 덜했구요. 근데 더민주가 이렇게 하향식도 아니고 상향식으로 수도권 몰빵으로 가겠다는 티를 낸다면 고민할 사람 많이 생길겁니다. 관습헌법느님 덕분에 지역균형정책의 큰그림이 좌절된 이후에 서울에 안 붙으면 지금까지 시혜성으로 주던것도 주지 않겠다는 식의 으름장이 되버리는거죠. 세대투표에서만 인구구조의 문제가 영향력을 주는게 아닙니다. 전국민의 과반수가 (지역색이 없다고 믿는)서울 사람인 시대에서 어떤 치유될수 없을 갈등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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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작성일 16.9.24




장면1  

<서울을 경험한 사람들은 왜 지방에 가서 살지 못하는가>를 주제로 페이스북에서

나 : 객관적으로 서울이 더 살기 좋은 곳이고, 자기 출신 지역 떠나라고 강요할수도 없다

상대 : 그렇다. 일자리만의 문제는 아닌것 같다. 그런 점을 지자체들이 고려해야할텐데 

나 : 지자체가 왜 그걸 고민하나 고민한다고 해결이 되는것도 아닌데. 지금도 동남권 신공항 낭비라고 반대하는거 못봤나. 단순한 효율성 논리로 지방에 자원배분하는 데에 반대하는 수도권 주민들의 목소리가 크고 다수이기 때문에 지자체에 재정 투입하는 것은 앞으로 더 가로막힐것 

상대 : 말씀하신대로 어차피 중앙에서 안할테니 지자체라도 해야한다는것. (중간에 좋은 일자리 제공에도 인구이탈이 극심한 지방 혁신도시 및 공공기관 이야기가 나옴) 인구유출의 원인이 일자리가 아니면 문화적인 측면에선 지자체가 할수 있는게 있지 않겠느냐 

나 :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영양실조 걸린 사람한테 메뉴개발하라고 하면 창조성이 발휘됩니까. 지자체는 그냥 그지역을 떠나지 않을 지방대학 및 해당연고 출신들로만 (혁신도시 공공기관 등의)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식으로 나갈수밖에 없습니다.

나 : 개인적으론 서울이 비교대상인것도 가혹합니다. 전세계에 서울만한 도시가 어딨습니까. 지방의 익명성 없고 끼리끼리 인맥문화에 스트레스 받는거 맞는데 그걸 해소하려면 외지인 유입을 늘리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지방에서 살겠다는 유인이 있어야겠죠. 신안 섬노예 같은것도 좁은 사회가 문제면 행정력 투입하거나 연륙교건설 같은게 실질적 해결방안으로 나오는거 아닙니까. 근데 지방이 문화적으로 낙후됐다고 단순히 비난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사회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지방에 갖추어야 할 사회적 기반구축이나 비용 얘기 나오면 입을 싹 닦아요" 






장면2 

<만약 수도권에 원전이 있어도 이번 지진에 대한 보도가 이런식이었을까요? 그런 의문이 드네요(영남권 거주자로 추측)> 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

상대 : 수도권하고 거긴 인구밀도가 다르죠 

나 : 동남권을 인구밀도 가지고 부족하다 할거면 막말로 이나라가 평양인민공화국이랑 뭐가 다릅니까? 

상대 : 아 동남권을 말한게 아니라 고리 월성 지역을 말한겁니다 

나 : 그렇다고 하시니 믿고 넘어갑니다만 김포나 파주 같은데에 원전 있었으면 해당 읍면 인구밀도만 세셨을 건가요? 여기서 말하는게 그런식인게 아니죠




장면3 

<해남군의 출산장려금 정책 출산율은 높아졌지만 전출로 인해 인구는 줄어 - 한경 기사> 에 대한 트위터 반응

상대 : 유출 무서워서 안된다는 논리 어디서 많이 본거 같지 않나? 사람에 투자하는거 아끼면 안된다 계속해야한다 새는 손해를 능가할 정도로 계속해야 성공하는게 사람에 대한 투자임. 우리도 그렇게 교육에 투자해서 고성장한것. 

나 : 정책 측면에서 구체적인 출산장려책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은 알겠다만 행위자 측면에서는 국가정책으로 시행한것도 아니고 지방재정 털어서 한건데 인구유출의 결과면 누가봐도 손해고 모럴해저드 사안인데 어떻게 계속하라는거냐

상대 : 모럴해저드는 거기 사용하는 단어가 아닌데? 그리고 지자체의 존속은 그 조직에게나 상위가치일뿐이다 

나 : 정책이 구체적 목표가 있을텐데 출산장려책에서 인구증가를 가지고 평가 안하면 대체 뭘로 평가해야한다는건지, 지역은 떠났지만 한국에서 살 사람한테 썼으니 괜찮다고? 그럼 한국정부는 자산 다 팔아서 세계빈국 국민들 지원해줘야겠네 

(중략)

상대 : 그리고 장기적으로 지방이 소멸하리라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결국 통폐합될텐데 투자가 다른데 새는거보다 사람을 향하는게 맞지 않느냐 

나 : 그래, 나도 회생불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근데 "니들은 어차피 이래하나 저래하나 못살아나니 어차피 서울로 떠날자들 돈이나 계속 쥐어줘라" 이게 할 말이냐? 

(그는 이에 대해 표현을 좀더 부드럽게 할수 있었겠다고 말했다. 
표현의 문제일뿐 가치체계나 발화의도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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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제에 대해 겪은 것들을 토대로 하면, 국고로 추진되는 지출규모는 대단히 높게 평가하면서(국고낭비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짐), 또 지자체의 재정수준은 대단히 건전한줄 앎. 물론 재정 낭비도 많은건 사실인데 그 본질은 못먹던시절 명절에 과식해서 설사하는 딱 그상황으로 이해하면 맞다. 그동안 <수도권, 진보>로 분류되는 분들의 이런 문제의 해결 방안에서 지자체가 변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며 핵심 해결주체가 되는거 숱하게 많이 들었다. 

나에게 이걸 지자체의 문제냐 정책의 대상이 될 사람의 문제냐 묻는다면 난 후자에도 강한 의구심이 든다. 어제겪은 세번째 사례가 진짜 기막힌데 종합하면 "이래하나 저래하나 너희 시골은 소멸할 확률이 높은데 출산장려정책은 고귀하니 중앙정부라 쓰고 수도권이라 읽을 주체에 출산장려책을 압박하기 위해선 계속 떠날 사람들에게 돈이나 쥐어주는걸 용기를 가지고 계속하라" 정도. 이게 정상 사고인가? 정상이다. 슬프게도 생각을 정리해서 모으면 이런 식으로 이어질 '논리적인' 사람이 적지 않다. 난 이런 논리나 사고방식이 극소수의 특별한 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방의 실태에 대한 무지야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문제는 또래 고학력층으로 가면 "중앙정책은 지역변수에서 가치중립적" 이라는 명제를 추호도 의심치 않고 굳게 믿는 자들이 절대다수에 가깝다. 진보정당및 그 정치세력들. 차라리 조직세가 작아서 신경을 못쓴다고 하면 모를까, 자기들이 수도권 일부지역과 공업지역에서만 그림이 나오는 이유를 계급의식의 문제니 하며 계급배반투표 따위에 몰두한 전통이 벌써 몇십년인지. 지금 인터넷상에서 등장하는 지방의 낙후된 문화, 집단주의적 문화,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을 넘어 나오는 미개-혐오 발언들이 그때 했던 착각과 전혀 관계가 없다 장담할수 있나? 하긴 진보정당만의 문제일까. 호남 털어내고 전국정당 간다고 신난 모 정당 지지자들이 설치던게 불과 몇달 전인데. 이게 시대흐름이고 내가 이상하고 모난 사람일 뿐인걸. 

지금껏 재원 마련은 알아서 하고 지자체가 해결하란 식의 "지방 문제는 지방에서 알아서 하라" 소리가 한두명이 한 소리가 아닌데 이제는 또 "지원금 받고 튀는사람 생겨도 나갈 사람에게 돈은 계속 줘야한다"는 얘기를 보게 되니 흥분안할수가 없었다. 그러게. 그동안 우리는 정부 왜 욕했나? 그저 내 노력이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했던게 아닌가? 당신이 살기 힘든 문제도 당신들 알아서 해야지, 왜 헬조선 운운하며 불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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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다른 커뮤니티에 작성했던 글을 여기 불러와본다.

그땐 그냥 한 순간의 생각이라고 치부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유효한 지점이 있다는 점은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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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저는 문제가 안생기게 예방하는게 최선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는건 당연하다고 봐야 합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건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맞는 말이 될지 모르나, 사회문제나 조직 차원에서는 오히려 신봉해선 안되는 속담 같습니다. 


개인 차원에서야 조심하고 예방해서 병 안걸리는게 최선입니다. 

하지만 집단 차원에서 세면 무조건 몇 % 이상은 병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병걸린 사람에게 윽박지르거나 도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것 같습니다.


진짜 정의로운 사회는 문제가 안생기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는 사회가 아니고 

문제가 생겼을때 그 문제가 납득할 수준으로 해결되고 바로잡을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하는 사회입니다.


예방을 강조하며 완벽을 추구하고 '문제의 발생'. '문제의 존재' 자체를 금기시하게 되면 생기는 폐해는 

문제를 문제가 아니라고 발뺌하게 만든다는데 있습니다.


문제가 터져도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거야 군조직의 사례야 말할것도 없고 

또 몇달째 흘러간 서남해안 섬노예건도 엄청난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1.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수 있느냐는 경악에 집중했을뿐 

2. 왜 이런 일이 가능한가

3. 어떻게 없애야 하나


1>>>>>>>>>>>>>>>>>>2>>>>>>>>>>>3 압도적인 비중입니다.


경주 리조트에서 부산외대 학생들이 받은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부에서 내건 것은 학교 승인 없는 학생회 주최의 외부행사 금지. 

이러면 절대 저 참사와 같은 종류의 사고는 일어나지 않겠지요. 

'독립적인 학생회 주최 행사'가 불가능하니 같은 조건 자체를 없애버리도록 했으니까요. 

(대신 학교가 승인하거나 고등학교 등 다른 종류의 단체행사에서 같은 참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으로 진심으로 '사고' 자체를 예방했다고 생각하는게 우리 사회의 방식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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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4.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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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미

2015.02.14 14:50 from 내 글/단문


여백의 미라는 말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 개념 자체가 싫다기 보다는 쓰이는 방법 때문에 싫어진 경우다. 우리 조상들은 옛부터 여백의 미를 알아서... 로 시작되는 연설은 원칙과 이상처럼 진행할수 없는 '현실적'인 고충으로 마무리된다.

이 말은 보통 서구 근대의 기본 전제인 상호배타적 분류를 거부하거나, 이말도 맞고 저말도 맞고 하는 애매한 해석을 내릴 때 나온다. 그렇게 딱딱 칼같이 끊어지는게 현실이 아니야 어린 친구! 마치 '서구 근대'의 모순을 지적한 것마냥 뿌듯한 풍부한 인생의 지혜를 과시하면서.


뭐 말은 좋다 이거야. 근데 그런 분들은 실제로는 정말 모 아니면 도여야 하는 부분, 예를 들면 돈 문제, 법 문제 같은 것들에서 굉장히 유연하시다. 반대로 주변인들이 자기 마음에 안들거나 개인의 자유, 창의성 문제로 가면 갑자기 중간영역이 사라진다.

여백 같은건 없고 자기가 설정한 범위의 밖은 다 틀린 것이 된다. 웅장하다고 생각한 것을 쓰세요 라는 초등학교 시험문제에 "엄마 뱃살"이라고 쓰면 틀린 것이 된다. 정치 사회분야에서 너는 어느나라 사람이냐? 투표 안하는 놈은 매국노 이런 말을 서슴없이 쏟아낸다.


한반도엔 여백의 미를 만들어 낸 호랑이 부모는 있어도, 그것을 개똥처럼 쓰고 있는 개자식이 있다. 회색과 개인은 나쁜 의미이면서, (근대 합리성)의 여백을 꿋꿋이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여백의 미는 개똥같은 소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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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를 넘어서고 있네요.

다른 글에도 달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이 관점의 차이가 좌우이념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걸 좌우이념으로 대립하는거 보면 자기들끼리 판 깔아놓고 다투고 있는거 같아서 굉장히 불편해요.

오히려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세대갈등의 문제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르신들이나 보수 언론에서 얘기하는 좌편향된 이들의 폄하란 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지니는 이들 중에서도 나이를 먹은, 소위 민주화 세대에만 해당된다고 봐요.

사실 이 영화는 순수한 추억팔이 영화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때마침 등장한 토토가 덕분에 평소에 생각했던 "추억팔이 행위에 대한 이중잣대"가 거슬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추억팔이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따라서 어르신들의 다수가 공감하고 눈물 흘리는 영화라는 점에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거슬리는 건 추억팔이 행위가 아닙니다. 그 추억팔이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느냐죠. 전에 다른 글에도 언급했습니다만, 전 응사열풍도 별로 좋게 안봤습니다. 꿈도 미래도 없는 지금의 20대가 브라운관으로 대한민국 리즈시절의 캠퍼스 낭만을 대리만족하는 현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봤어요.

그래서 국제시장에서 경계해야할 것은 그 시절의 고생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느냐라고 봅니다. 그 분들이 정말 힘들게 살아온 건 맞습니다. 근데 그걸 오로지 나라를 위해서, 이 사회를 위해서 했다고 포장하면 안되죠. 그 시절은 자기가 살기위해 노력한 것이 결과적으로 나라의 발전으로 이어졌던 시대였죠. 정말 지금 어르신들이 그렇게 우리 사회를 위한 이들이라면 청년문제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선 안됩니다.

그들의 노력과 수고가 공동체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전 다른 논란에는 별로 말을 섞고 싶지않고, 이 부분만 얘기하고 싶습니다. 박정희고 독재정권이고 관심 없어요. 그 수고하셨던 어르신들이 현실에서 보이는 민낯이 뭐냐는거죠. 손녀같아서 가슴 찔러보고, 대학 나와서 월 200받는 직장도 못얻냐고 하고, 애를 안낳다니 참 이기적이라고 하는 분들께서는 제발 영화관 밖에선 딴소리만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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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존중받아야 할 대상으로서의 자유인데, 한국에서 흔히 자유가 쓰일때는 존중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의 행위를 지칭하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가령, 손바닥에 땀이 잘 나는걸로 놀리는게 싫어서 "야 다른건 좋은데 그걸론 놀리지마라" 하면 "응 그래" 하고 걔만의 특별한 생각을 존중하면 그게 그친구의 자유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선 "싫어 뭐 그런거가지고 그러냐 별것도 아닌데 계속 놀릴거임" 하는 놈이 쓰는 근거가 자유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 자유가 부족하다고 하면 '깽판쟁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유가 부족하다고 하냐 더 통제되어야한다'는 열명의 선비가 있고, '나는 이런 깽판을 치고 싶은데 못하게 하는놈들이 얼마나 많냐'는 스레기들이 있다. 어느쪽이 더 싫으냐 묻는다면 둘다 짱시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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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나서 대화한 사람 중에는, 학교 선생님이 있고, 공대 랩에서 일하는 대학원생이 있고, 일반 사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는데, 일하는 문화나 일처리 할때 생기는 고충 같은게 너무나도 쉽게 이해가능한 것들이어서(마치 직책 이름과 사람만 바꾸면 모든 것이 맞을 정도로) 어쩌면 공군과 육군의 차이, 공군 안의 개별 부대와 부대의 차이보다도 더 가까운 정도의 문화차이일지도 모르겠어서 놀랬다. 


이게 좋은 의미인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포기하고 익숙해지지 않는 이상, 내가 지금 받는 의미없는 스트레스를 앞으로도 계속 받아야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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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중 가장 문제인 곳은 어디인가 

1. 촌스럽게 해외에 물건 더 팔아먹기 위해 액티브엑스 없애달라는 재계 
2. 어쩌면 그런식으로 말해야 먹히는 촌스러운 정부당국 
3. 평소엔 생각도 없다가 재계가 말하고 대통령이 드라마보다 받아주니 기사내주는 언론계 
4.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딴데갈 생각없이 그냥 여기 살기로 한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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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

2014.02.03 18:27 from 내 글/단문


한국 사람들은 "단점"에 대해 굉장히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단점이란 특정 상황에서 문제를 일으킬수 있는 개인의 성향을 말하는 것일텐데, 이것을 일단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첫번째 오류. 또 그 해결이라는것을 "전면부정" 혹은 "제거"로 생각하는 것이 두번째 오류다. 그 누구도 메시의 공중볼 장악력을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단신을 제거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할수있으면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사회 전반에 이런게 깔려 있으면서 창조성을 논하고 있다.  


가정적인 사람이 되라면서도 퇴근을 빨리 하려고 하면 단점이 되고, 건강 관리를 하라면서도 술을 안 마시는 것은 단점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퇴근을 빨리 하지 않는 것이나 술을 마시는 것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고집이 세면 그 고집을 어떤 고집으로 만들 것인지 생각하기보단 그 고집을 꺾어야만 성이 풀리고, 타인과의 거리를 두고 예의를 지키려는 사람에겐 어떻게든 오지랖을 부려서 그 범위를 침범해야만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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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te.com/view/20140125n02815

이미지에 지친 사람들은 타인의 진짜 인성, 밑바닥 성격을 들여다보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쟁이 아니며 전쟁 같아져서도 안된다. 극한의 상황에서 정신력이 좋은사람을 칭송하기전에 전시가 아닌 평시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것인가, 어떤 환경을 만들어야 많은 평범한 개인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현할수 있을지 고민해야 맞다.


<더 지니어스>나 <정글의 법칙>에서 나오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정말 그 사람의 밑바닥이며 그 모습은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것이 뭐 어쨌단 말인가? 그것 또한 인공적으로 꾸며진 '특정한' 문화적 환경 안에서의 진실일 뿐이다. (내가 루스 베네딕트를 제대로 읽었다면) 무엇은 허용되고, 무엇은 금지되는 그러한 룰이 바로 문화적 환경이며 문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칭송받는 선배가 미국에선 쓰레기가 될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 프로그램들이 조성한 특정한 환경(사회)에서의 A로, 다시 원래의 사회(한국사회)에서 살아갈 A를 평가해선 안된다.


사회(군 바깥의 표현) 부적응자가 군 부적응자가 될 가능성은 높으나, 군 부적응자가 반드시 사회 부적응자는 아니며, 군 적응자가 반드시 사회 적응자라고 할수도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그만큼 군 조직보다는 한국의 일반 사회가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수 있는 성숙한 사회라는 것을 뜻한다.


"군 생활을 잘해야 밖에서도 잘해" 극한 스트레스 내성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딱 이수준의 생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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